이해 못한 아버지에 대해, 〈애수의 소야곡〉
‘애수의 소야곡’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고, 내가 좋아하는 시이다. 남인수의 노래 ‘애수의 소야곡’은 가사가 매력적이다. ‘봄날은 간다’ 노래가사를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잔한 정서가 묻어있는 ‘애수의 소야곡’의 가사가 나는 더 좋다. 특히 2절에 나오는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못생긴 미련이라니! 마음을 나누어도 좋을 벗 두어 명 앞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불러야 하는 노래지 않은가.
오래전 세계사에서 출간된 진이정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에 실린 시들은 어두웠지만 좋았다. 오래전 읽었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으니 그렇게 어둡지는 않은데 왜 그의 시들이 어둡게 기억되었을까. 시인이 너무 일찍 죽어서일까. 30년이 지나 낡은 시집을 다시 꺼내 읽다가 예전에는 무심히 넘겼던 시 ‘애수의 소야곡’이 마음을 잡아당겼다.
노래제목과 시 제목이 똑같은데, 노래 '애수의 소야곡'이 사랑에 대한 애수인데 반해 시〈애수의 소야곡〉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다루고 있다. ‘애수의 소야곡’은 시에서 화자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이다. 아버지가 좋아한 노래제목을 시의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구절 1_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이 말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와 자식은 서로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자주 나오지 않는가. 한때 중국대륙을 휩쓸었던 드라마 ‘랑야방’에서 세자로 책봉된 아들은 왕인 아버지의 미움을 사 사약을 받는다. 사약을 먹기 전 그는 한탄하며, 아버지는 아들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가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구절 2_“나부턴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화자는 자기 세계를 권위로 강요하는 아버지가 싫다. 자기와 다른 아들의 세계도,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는 아들의 세계를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싫다. 아버지를 보며 나는 결심한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다.
시구절 3_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오기에 /나는 두렵다”
그러나 나 역시 점점 나이를 먹고 살아가면서 아버지처럼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나는 아버지와 닮아가기에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데, 그것이 싫다. 나는 아버지의 구세대적인 낡은 사고가 싫고,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나를 아버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다는 것은 나도 내가 싫었던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기에, 나는 두렵다.
아버지를 이해할 것도 같다던 화자는 아버지와 같이 되어간다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넘어 시의 마지막에서 아버지를 끝내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남인수와 송창식의 불화는 아비와 자식의 불화이자 몰이해를 의미한다. 둘은 화해하지 못했다. ‘화해시키려 한다’는 말은 화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버지. 아버지의 꿈.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쟁 같은 현실에서 ‘꿈’이 들어설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꿈도 결국은 아버지의 꿈처럼 물거품이 되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던 시절 나는 그만큼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은 내가 아버지처럼 된 순간이다. 나는 순수를 잃고 꿈도 잃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성복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실린 〈그해 가을〉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에 “아버지, 아버지.....***,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구절이 나온다. ***로 표기한 부분은 욕이다. 스무 살 시절 누군가 술자리에서 읊은 이 구절은 우리의 반항을 대리하고 있었다. 스무살의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나이였기에 조금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혹자는 여기서 ‘아버지’는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고,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것은 ‘아버지’의 말이라는 시인의 말도 있지만, 나는 처음 이 구절을 접했던 그 순간의 놀라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나에게 이 구절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다.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허락받지 않고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내던져놓은 사람(원인제공자)에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시 ‘애수의 소야곡’은 그래서 슬프다.
***
애수의 소야곡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남인수와 고복수의 팬이던 아버지는
내 사춘기의 송창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은 밤,
나는 또 누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부턴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즐기려고 애써 왔다
허나 당신을 이해할 것만 같은
밤이 자주 찾아오기에
나는 두렵다
나는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이해한다, 라고 똑 떨어지게 말할 날이
백발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추억이던 왜정 때의 카페와 나의 카페는
그 철자만이 일치할 뿐,
그러나 그런 중첩마저, 요즘의 내겐 소중히 여겨진다
아버지의 카바레와 나의 재즈 바는
그 무대만이 함께 휘황할 뿐
그러나 나는 사교춤을 출 줄 알았던
당신의 바람기마저도 존중하게 되었다
어쩌다 알게 되었지만, <바>라는 건 딱딱한 막대기일 따름,
난 그 막대기 너머, 저어 피안으로 가기를 꿈꾸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당신의 꿈을 알지 못한다
우린 색소폰의 흐느적임과 장밋빛 무대만을 공유할 뿐,
나는 그의 꿈을 끝내 넘겨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어
꿈이 빠져버린 그의 애창곡이나 듣고 있을 뿐,
허나 난 온몸으로 아, 아버지를 이해할 것만 같아
남인수와 송창식을 서둘러 화해시킬 길을 찾는다
아니 억지로, 억지로 화해시키려 한다
가부장의 달빛만 괴기한, 이 이승의 쓸쓸한 밤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게 왜 이리 두려운 일인지
잃어버린 그의 꿈이 왜 이리 버거운 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