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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Sep 01. 2023

너를 만지고 너를 기억하다

손숙의 ‘토카타’를 보고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이, 이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60년 연극인생을 이어온 배우의 무대는 각별하였다. 배우 손숙의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으로 마련된 창작극 ‘토카타’. 연극에 관해서 문외한이지만 대배우의 과장없이 깊은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글을 들어가기 전에 인용한 위 대사는 연극 ‘토카타’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라고 생각하여 첫 머리에 넣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슬프고도 가혹한 진실을 세심하게 짚어주는 대배우의 연기는 버리고 갈 것 없어 편안한 사람의 마음처럼 깊게 울렸다.   

  

‘토카타’는 이탈리아어로 ‘만지다, 접촉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토카타’는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와 같은 말이다. ‘접촉’이 곧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는 ‘접촉’이 포함된다. 나의 생의 바운더리에서 특별하게 의미를 갖는 ‘관계’에는 ‘접촉’이 포함된다. 우리는 그 무엇(사람이나 개, 고양이)을 만지며 그 대상에 대해 알게 되고, 만지는 대상에 대해 깊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깊은 감정은 깊은 상실을 불러온다. 연극 ‘토카타’는 키우던 개와 남편을 떠나보낸 늙은 여인의 이야기이다.


“무언가 없어진다는 건 이렇게 더디고 긴 일인가 봐요. 깨끗이 치웠다고, 깨끗이 지우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면 거기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어요.”     


죽음을 다룬 빼어난 연극이 또 있다. 바로 ‘염쟁이 유씨’란 연극이다. 수유너머 남산에서 일본어 공부 모임에 참가하던 시절 회원 한 분이 ‘염쟁이 유씨’ 연극을 꼭 보아야 한다며 우리를  연극공연장으로 데려갔다. 당시 이 연극은 입소문이 나며 성황리에 공연 중이었는데 연극을 보고 나서 그분이 이 연극을 꼭 보아야 했다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되어 마음이 울컥했었다.      


뒤늦게 일본어공부 모임에 합류해 공부를 하며 친밀감이 생길 무렵 어느 날 그분이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책을 건네주던 그분의 글썽이던 눈빛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꽃다운 이십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들. 아들이 살아있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아들이 남긴 글과 사진을 모아 만든 책.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부족함 없이 노년을 보내는 것 같았는데, 그 뒤에 남모르게 숨겨두었던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연극 ‘염쟁이 유씨’는 아들의 시신을 염하는 염쟁이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시신을 염하던 염쟁이가 자신의 아들의 염을 하게 되며 들려주는 기막힌 이야기는 매우 강렬하여 잊혀지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염쟁이 유씨’를 다시 보고 싶다.     


연극 ‘토카타’가 끝나고 배우들을 소개하는 시간, 벤치에 앉아 뒷모습만 잠깐 보여주던 배우가 나오자 다들 놀랐다. 윤석화였기 때문이다. 며칠전 기사에서 그녀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가 난 터였다. 아주 오래전 윤석화가 혼자 만들어갔던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약간 쉰 듯한 목소리는 편안해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무언가를 던져주는 것만 같았다. 배우 윤석화의 여러 일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오늘의 그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다. 아픈 와중에도 존경하는 선배 공연을 위해 카메오로 출연해 갈라지고 쉬고 작아진 목소리로 선배의 공연을 축하하는 윤석화를. “누구나 나답게 살고 나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러려면 병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암 빼고는 건강하다”는 의연한 농담을 기억하고 싶다.     


죽음이 무엇인지 우리는 끝내 알지 못하는 상태서 죽지만, 죽기 전까지는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삶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죽음은 삶의 맨 끝에 넘어가는 마지막 페이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또렷하게 알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토카타’ 그리고 만지고 만져짐으로 인해 깊어진 애착에 대한 기억이다. 수많은 상실을 경험하고 마지막에는 ‘자신’마저 상실하는 일이다.

    

연극 ‘토카타’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나를 안아주렴. 어루만져주렴. 나를 들어올려주렴. 중력도 없이, 무게도 없이, 가볍게 날아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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