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하의 시〈침착하게 사랑하기〉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침착하게 사랑하기〉는 폭력에 대한 주제를 독창적으로 시에 담고 있다. 시도 인상적이었고 당선소감 또한 매우 인상적이어서 ‘차도하’란 이름이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그 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22년 무렵인데, 그로부터 1년 지난 어느날 차도하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보면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 있지만 이십대 죽음을 꿈꾸는 것은 젊음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시인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부고 기사는 참으로 안타까웠다.〈침착하게 사랑하기〉라는 독특한 발상의 시도 그러하였고,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글의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에세이집을 읽은 독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산문집에 보면 ‘침착하게 사랑하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의 친구가 만약 신이 소원을 물으면 자신은 주머니에서 계속 오만원 지폐가 나오게 해달라고 빌겠다는 말에, 차도하는 자신의 대답은 ‘침착하게 사랑하기’라고 적어놓았다.
‘시인의 불행한 삶’도 시의 일부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형도의 뛰어난 시들은 그의 불행과 떨어질 수 없으며, 불행이 시의 일부가 되었다. 재능과 불행이 만나 뛰어난 예술이 탄생한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니나 시몬이 그렇고 쿠사마 야요이가 그렇다. 자신의 불행을 연료로 꽃피울 수 있었던 그의 미래의 시들이 못내 아쉬운 독자로 그가 남긴 시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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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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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나지 않아 바닥에 붙어있을 땐 나를 저주하는 사물들과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싸우는 상상을 한다. 이 생각을 할 땐 늘 나를 저주하는 진영이 우세한 형상인데, 사실 승패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기운을 내면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이기니까. 그럼 기운을 내어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이렇게 겨우 힘을 내어 살면 무엇이 되는 걸까. 무엇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아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비웃음 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죽기엔 아깝다. 글을 잘 쓰니까. 글을 잘 써서 발표도 하고 책도 내고 어린 내가 그걸 읽고 오래 간직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누가 이걸 하나하나 뜯어보며 아니라고, 그게 죽지 못할 이유는 못 된다고 따져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 거니까.
시 당선 소감을 써야 하는데 죽느냐 사느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겐 이게 비슷한 이야기인가보다. 사실, 시는 그냥 뜯어 쓰는 마스킹 테이프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든 쓸 거라는 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도 싶지만 나는 이름을 안 믿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수업 듣고, 책과 술, 밥을 사주고, 바다에, 놀이공원에 놀러가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내 옷, 내 양말, 노래 취향에 영향을 끼친 분들 감사합니다. 내가 힘들 때 쪽지를 전해준 친구 고맙습니다. 요즘은 어떻냐고 넌지시 물어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내 시를 꼼꼼히 읽고 어떤 부분이 좋은지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말해준 사람들 고맙습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중년 여성에게도 감사합니다.
잘 살고 잘 쓰겠습니다. 다 쓰고 나니 둘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둘 다 잘해내고 싶습니다.
* 차도하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소감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