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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an 23. 2024

감동적인 인생 텍스트, 마야 안젤루

_《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이 쓴 시〈On the Pulse of Morning〉를 낭송하였으며,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존경한다고 이야기한 사람이며,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25센트 주화에 새겨진 인물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야 안젤루는 영화 ‘포기와 베스’에 출연한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여성과 흑인의 인권을 위해 활동한 인권운동가이다. 16세에 미혼모가 되어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음반매장 직원, 요양보호사, 웨이트리스, 가수 겸 스트립 댄서, 전차운전사까지 어린 아들을 혼자 힘으로 기르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며 살았다.     

1969년 출간된 이 책은 흑인여성이 쓴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출간된 후 2년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마야 안젤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그녀가 세 살 때부터 미혼모가 되는 16세까지 인종차별과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딛고 성장해가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다.     

 

“남부의 흑인 여자아이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추방당한 느낌을 의식한다는 것은 목구멍을 위협하는 면도날에 슬어 있는 녹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모욕이다.”     


세 살 때 한 살 위인 오빠와 같이 손목에 ‘관계 당사자 앞’이란 수취인 꼬리표를 달고 아칸소 주 스탬프스에 도착한 장면이 소설 첫 대목에 나온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의 마침표와 함께 어린 두 남매는 할머니에게 마치 소포처럼 전달된다.     


그렇게 부모에게서 거의 버림받다시피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남매는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는데 행복했던 생활도 잠시. 어린 안젤루가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엄마의 남자친구가 살해당하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다시 남매는 미국 남부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지만 안젤루는 성폭력과 일련의 일들의 충격으로 몇 년 동안 실어증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어린 엔젤루는 책 속에서 위로받으며 천천히 상처를 극복해가며 자신의 언어와 인생을 찾아나간다.     


이야기 곳곳에 흑인으로서 차별을 경험한 일들이 굵은 못처럼 박혀 있다. 영화 ‘그린북’에서 보여주던 인종차별의 모습이 이 책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어린 안젤루가 치통으로 며칠 고생한 끝에 할머니에게 신세진 백인 치과의사가 운영하는 치과를 갔지만 흑인을 치료해줄 수 없다며 거절하는 대목에서는 인간의 양심마저 거스르는 뿌리깊은 차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경험한 일만 소설로 쓴다는 아니 에르노처럼 마야 안젤루도 자신의 삶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 썼으며, 이 책은 마야 안젤루의 자서전적 이야기 시리즈의 첫 책이다. 2014년 86세로 세상과 작별한 안젤루는 “사람들이 생전에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곧 잊혀지지만 그 사람이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수많은 인생의 파도를 넘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고 약자를 위해 활동한 마야 안젤루의 인생이야말로 우리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준다.     


1930~4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이야기는 그것이 다루는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으로 인해 현재의 우리에게 다가오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짧은 분량에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최근 소설들에 비해 묘사가 길고 이야기 진행이 느려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고,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디디온의 책읽기’ 첫 테마로 선택한 것은 ‘마야 안젤루’의 책이기 때문이다. 책 이전에 마야 안젤루의 인생 자체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하나의 감동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마야 안젤루, 니나 시몬, 세자리아 에보라. 흑인 여성으로 자기 앞에 놓인 고난을 넘어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꽃피우고 자신만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다간 이 세 명의 흑인 여성의 인생을 기억하고 싶었다.  

   

“삶이란 생존을 위한 커다란 모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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