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서점’ 주인장 정지혜의《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오래전 우연히 ‘슈퍼맨이 돌아왔다’란 파일럿 프로그램을 보다 너무 귀여운 아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다. 웃는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화난 모습조차 요시모토 나라가 그린 꼬마 그림처럼 귀여운 아이는 재일교포 추성훈의 딸 사랑이였다. 이후 한동안 ‘사랑이 앓이’를 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절대 보지 않는데 오직 사랑이를 보기 위해 ‘슈퍼맨이 돌아왔다’ 본방을 사수했다. 당시 사랑이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 프로그램은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을 보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잠시 잊고 사랑이가 광고하는 요거트를 열심히 사먹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를 읽으며 그때 일이 떠올랐다. 이유없이 좋아하던 마음과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한없이 무장해제되며 즐거웠던 기억이. 이것이 덕질의 전부니 내 덕질의 이력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출연 배우에게 호감을 느끼는 적도 있지만 연예 산업이 만들어낸 가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덕후’가 되는 ‘덕통사고(덕입+교통사고)’가 내게 일어날 일은 없다. 덕질의 불모지대에서 사는 내가 덕질의 활화산에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뜬 이야기를 담은《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를 좋아할 줄은 미처 몰랐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는 서른이 넘은 여자가 방탄소년단에 빠지면서 번아웃에서 탈출하여 다시 자기 생의 감각과 활기를 되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참새 시인의 인터뷰집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박참새 시인과 책의 저자 정지혜가 ‘일’에 대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인상 깊었는데, 그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이 책이 언급되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이돌을 좋아한 이야기라니 그저 팬심 가득한 책이겠거니 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는 마음을 다해 좋아했을 뿐인데, 그 좋아함으로 인해 번아웃에서 탈출하고 다시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 열성적인 ‘덕후 이야기’이자 좋아하는 것의 현실적인 쓸모를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통해 얻은 것과 덕질의 과정에서 만난 새로운 삶의 이야기, 일과 사랑에 대한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넨다. 글의 결이 그 사람과 닮아 있다면 그는 분명 따뜻하고 속깊은 사람일 것이다.
책을 쓴 이는 단 한 사람의 고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책을 처방해주는 독특한 컨셉의 ‘사적인 서점’으로 유명세를 얻은 정지혜 씨이다.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였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그것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잘할 필요도 없고 대단한 것을 이루지 않아도 좋은 무용한 즐거움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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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덕질이 그렇지요. 자신의 존재도 모르는 대상에게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 사랑을 헛되고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들이 우리의 학교였고, 우리의 꿈이었고, 행복이었고, 날개였고, 우리의 우주였고, 우리의 밤을 밝히는 빛이었고, 우리의 화양연화였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지식이나 지혜를 가진 사람보다 더 큰 걸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