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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an 27. 2024

‘차이’에 대한 문화인류학자의 시선

《한의원의 인류학》

지난 6월 초 광화문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자신이 쓴 책을 건넸다. 몇 년 전 한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책이 출간되어 최근 재쇄를 찍었다고 했다. 좋은 소식이었다. 요즘처럼 책이 안 팔리는 시기에,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책의 초판이 소진되었다는 것은 그 책이 꼭 필요한 책이라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받은 책을 이리저리 다른 일에 치여 미루다 최근에서야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책을 쓴 이를 생각해보았다.

     

책을 쓴 이를 만난 것은 대학 동아리를 통해서였다. 화학과를 다니던 동기가 어인 연유로 문과대생이 많은 문학 동아리에 오게 되었는지 자세히 물어볼 생각도 못하고 그냥 같이 어울려 술집을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자기 자신의 마음 하나 담을 그릇도 못 되어 덜커덩거리며 이십대를 보내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참으로 중심이 잡혀있고 진중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를 이제와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시절 지나치게 젊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잘 감추지도 못하였던 나이, 무엇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나이였다.     


몇 년 전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난 동기는 세월을 지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지만 경상도 억양이 묻어 있는 말투로 천천히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편안한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만나지 못하는 사이 그의 삶의 마디는 크게 바뀌어 있었다. 회사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했고 다시 돌아와 국내 대학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는 늘 글과 사람 사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글을 쓴 이와 닮아 있고, 글을 쓴 이의 존재의 연장이다. 허투루 쓴 문장이 하나도 없고, 신의 있고 깊이 있게 자신이 천착하는 주제를 다루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글을 쓴 이를 닮았다. 어떠한 것에 대해 함부로 독단하지 않고 천천히 깊게 들여다본다.《한의원의 인류학》은 문화인류학자로서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글을 쓴 이가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의 방식과 시선에 크게 매료되었다.     


《한의원의 인류학》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바로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에서 연원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세계관은 병의 이름, 병의 진단, 병의 치료와 진료실 안에서의 대화의 풍경까지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데, 글을 쓴 이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차이의 현장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세세히 글로 풀어놓았다. 메를르 퐁티나 들뢰즈 등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부분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큰 틀에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글을 쓴 이가 친절하고 촘촘하게 관찰하고 공부한 것을 풀어놓은 까닭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생각해보았다. 가끔 몸에 문제가 생길 때면 들르는 병원과 한의원에 대해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들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원의 인류학》은 문화인류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통해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차이’를 알고, ‘차이’의 뿌리를 알면 우리는 ‘차이’를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다름’이 ‘틀린 것’이라고 강압적으로 목소리 높여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차이’를 생각해보는 것이 당장 나의 삶에 어떤 이득을 불러오는 게 아니지만, ‘차이’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차이’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차이’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너그러움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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