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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an 27. 2024

엄마의 상처

그레이스 M. 조의《전쟁 같은 맛》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엄마가 매춘부였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은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전쟁 같은 맛》은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45세 때 발병한 조현병으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그레이스 조의 엄마 이야기이다.     

 

자신의 엄마가 미군 병사를 상대로 일을 한 매춘부였음을 안 뒤 그레이스 조는 오랜 고통 속에서 엄마와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대학원에서 그녀는 ‘페미니스트 성 전쟁의 논쟁사’를 비롯해 정신의학, 제3세계 제국주의 식민역사와 엄마가 기지촌에서 일할 당시 한국의 사회현실을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Yankee whore(양갈보)’를 테마로 한 논문을 쓴다. 그레이스 조에게 대학 이후의 공부는 모두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자 가족사로 인한 고통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불행했던 한 여자의 삶을 복원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책을 쓰게 된 것은 엄마의 죽음과 저자의 깊은 트라우마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글쓴이는 엄마의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하고 글로 옮기면서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과 정신의학적 측면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전쟁 같은 맛》이 한 여성의 비극적 스토리에만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인 그레이스 M. 조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아로 1972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원으로 일을 하다 부산 기지촌 매춘부로 일하던 그레이스의 엄마, 군자를 만났다. 


그레이스의 엄마, 군자는 일제강점기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아홉 살 되던 해 전쟁으로 아버지와 오빠와 언니를 잃고 이후 집안의 가장으로 기지촌에서 일했다. 살아남기 위해 성노동자가 되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지촌 여자는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녀는 자신을 멸시하는 곳을 떠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책에서 ‘음식’은 매 순간 중요한 고리를 이룬다. 한국에서 배고픔과 가난의 상징이었던 음식은 미국에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매개이자 새롭게 꾸린 가족에 대한 사랑의 상징이며,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어디서든 음식이란 단순히 먹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먹는다는 것은(적어도 인간에게 있어) 결코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조현병으로 방에만 있던 엄마가 딸에게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하나씩 세세하게 들려주는 것도 그녀가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음식 얘기와 함께였다.               


전쟁통에 배고픔을 못이겨 미군이 준 질 나쁜 분유를 먹고 고생했던 저자의 엄마가 내뱉은 말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는 책의 제목이자 그녀가 경험한 시대적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이자, ‘타임’ 선정 2021년 ‘올해의 책’,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책은 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읽히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들 가운데 깊은 슬픔과 공감을 자아내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저자는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막연한 증오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인 엄마의 삶과 엄마의 병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가족사 안에 식민 지배, 한국전쟁, 인종주의, 젠더화된 노동과 폭력, 정신건강 불평등” 등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시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책이다.


발설하기 어려운 한 사람의 깊은 트라우마와 그것으로 인한 정신적인 병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용기 그리고 마침내 그 길에서 엄마의 치부와 아픔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 모습은 이 책만의 매력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며 이해하고자 애쓴 저자의 노력은 무척 값지고 특별한 것이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은 오래도록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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