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의《뛰는 사람》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자연의 소리’와 ‘후기’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 기나긴 마라톤을 끝내고 결승점을 지났을 때 느낄 법한 만족감과 좋은 것을 만난 뒤의 기쁨이 선물처럼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멋진 책의 후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더 기쁜 것은 책을 끝까지 읽고 책장을 덮기까지 읽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꼼꼼하고 성실한 학자답게 촘촘하게 들려주는 생명체의 생태시스템 이야기가 어떤 곳에서는 다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며 그것을 기록했는지 알 수 있다. 숲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깊게 들여다보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으로 달리기에 대해 열정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다.
곤충생리학과 동물행동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며 정확한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평생 달리기를 해온 마라토너로, 몬트리올 US오픈 100마일 신기록과 울트라 마라톤 US오픈 신기록을 보유한 베테랑 마라토너이다.
이제 여든이 넘은 베른트 하인리히는 데이비드 소로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 메인주 숲속 통나무 집에 살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노화에 대한 관찰과 기록, 글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숲은 그에게 고향이고, 수많은 곤충과 새와 짐승은 그의 친구이자 연구대상이다. 평생 그의 곁에 있었던 박가시나방, 꿀벌, 뒤엉벌, 나비, 꽃등에, 춤파리, 쇠똥구리, 잠자리, 자나방, 까마귀, 큰까마귀, 딱따구리, 붓꽃, 미국밤나무, 청설모를 관찰하여 그는 생명의 놀라운 메커니즘을 밝혀주는 다수의 논문을 썼다.
《뛰는 사람》은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사람의 삶을 이루는 두 가지 축, 즉 자연에 대한 관찰과 달리기를 통해 노화와 생명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자연과 달리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그것을 통해 얻은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곤충과 새와 짐승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달리는 인간의 몸의 변화를 통해 생명체의 생존전략과 그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는 이 책은 관찰이 그저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서 독자는 저자가 관찰을 통해 얻은 깊이 있는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사소한 사건이 꾸준히 쌓여 마침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연의 운영 방식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사건들은 시간의 끝까지 퍼져나가 막다른 길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간을 창조해 평가하고 또 새롭게 길을 열어 과거에 한 번도 점하거나 생각지 못한 가능성을 드러낸다. 매일이 재앙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애벌레들을 반려동물처럼 기르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고 말하는 타고난 생물학자인 저자는 이제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노화에 이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 길 끝에서 까마귀, 올빼미, 야생 거위, 큰까마귀를 벗으로 삼고 아메리카너구리, 스컹크, 개들과 함께 살았던 베른트 하인리하는 인생의 결승선까지 가는 길에 아직도 미지의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자신의 열정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하나의 여정이며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너무 앞서서 일일이 계획하다 보면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하거나 좌절하기 쉽다는 사실을 배웠다. 돌이켜 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던 상황이 예상치 못한 절호의 기회로 마법처럼 연결되기도 했다. 물론 피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시간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한 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