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온 Jan 27. 2024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메이지유신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AI폰을 출시한다는 소식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읽었다. 폰에 내장된 인공지능이 실시간 통역도 해주고, 메시지도 요약해줄 수 있다고 한다. AI의 등장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일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 다이소 일산 풍동점에 유리병보틀 재고가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AI가 받는다. AI 등장이 몰고 올 세상의 변화가 앞으로의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격변이 150여 년 전 일본에서도 펼쳐졌다. 바로 메이지 유신 이야기다. 19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사회전반에 걸쳐 서구문물과 체제를 받아들인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동아시아 최초로 근대화를 이루었다. 에도막부 200년을 포함해 700년 가까이 이어지던 사무라이 정권은 제 손으로 권력을 내려놓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우리에게 더 크고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근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으로 다른 나라보다 앞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그 힘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보다 더 일찍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조금 아니, 많이 부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저자는 일본의 대외 인식과 정치사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메이지 유신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서양의 구체적인 위협을 느낀 것은 1853년 에도 만 앞바다에 나타난 흑선이었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이후 다시 나타나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였고, 막부는 결국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맺었다. 이 장면은 일본 메이지 유신 전후를 다룬 역사 드라마를 보면 항상 나오는 장면으로, 메이지 유신의 포문을 연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후 일본에서는 서양제국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과 정치투쟁이 벌어지는데 우리나라 개항 당시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본이 서양세력에 대응한 방식은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도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국론자가 있었고, 서양세력을 배척하자는 양이론자도 있었다. 조선의 양이론자들과 달리 일본의 양이론자는 쇄국론자가 아니었으며, 전략적인 외교가이자 술책에 능한 전략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 지점이 조선과 일본의 차이이지 않았을까. 저자에 따르면 일본의 적극적 개국론과 양이론은 이 지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고, 이것이 이후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서양세력의 출현에 의해 존재를 위협받게 된 막부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세계정세를 수집한 자료를 풍부하게 보유했던 당시 막부는 개국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가운데 정권을 내려놓을 때까지 개혁을 추진하였다. 서양서적 번역, 항해술을 가르치는 군학교 설립, 유학생 파견 등. 삼일천하로 끝난 우리나라의 갑신정변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일본 막부는 서양으로 135명에 달하는 해외유학생 파견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외유학생이 거의 없었던 당시 조선이나 청나라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다른 부분이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은 이렇듯 들여다볼수록 놀라운 부분들이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기본이 탄탄한 일본의 토대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논문으로 발표한 글을 토대로 만든 4~5장에는 전문적인 내용이 세세하게 언급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메이지유신과 ‘유학’의 관련성을 다룬 4장은 재미있었다. 


일본에서는 유학이 우리나라에 비해 늦은 19세기에 도입되었는데, 군주에 대해 충성을 강조하는 유학이 오히려 막부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원래 공부와 정치에는 관심없던 사무라이들이 유학이 보급되면서 중국 고전에 대한 공부를 하고 권력의 모습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치지향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그것이 모여 막부를 무너뜨리게 만든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관심이 있어,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길에 큰 역할을 한 사카모토 료마를 그린 드라마 ‘료마가 간다’ , 막부 말기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부인인 고노에 스미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아츠히메’를 비롯해 사무라이와 메이지유신 전후를 다룬 일본 드라마를 많이 보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다. 재미를 위해 분칠을 하고 양념을 쳐놓는다. 그래도 큰 줄기에서의 역사적 사건을 알게 해주는 장점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에서 해주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분석적이고 입체적인 시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등 세계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혁명 뒤에는 끔찍한 정치투쟁과 그로 인한 피의 유혈이 뒤따른다. 정치적 밀약과 나름의 상황이 있었겠지만 끔찍한 피바다를 피하여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통해 큰 변화를 이루어낸 메이지유신의 과정은 그래서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다보니 세계 혁명들과 메이지 유신을 한번 비교하여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이 생긴다. 저자가 언젠가 그 주제로 책을 낸다면 그것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고 싶다. 일본을 싫어하는 나라는 있어도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오직 한국만이 일본을 무시한다고 한다. 그것도 무조건. 제대로 알고 싫어해도 되지 않을까. 제대로 알면 무시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하게 매력적인 일본이라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