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오래전 일본어를 배우면서 언어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본 드라마를 보다 일본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되었다. ‘심야식당’ ‘긴급취조실’ ‘가족의 형태’ ‘가족은 괴로워’ ‘파트너’ 등등 다양한 주제의 웰 메이드 드라마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꽤 오랜 기간 그렇게 일본 드라마를 섭렵하면서도 역사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잘 모르는 남의 나라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NHK에서 방영했던 ‘료마전’을 지난가을 보면서 일본 역사드라마에 재미를 붙였다. ‘료마전’을 보게 된 것은 《위험한 일본책》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의 뒷부분에서 저자가 추천했기 때문이다. 대개 일본드라마가 20회를 넘지 않는데 비해 45회로 이루어진 ‘료마전’은 긴 호흡의 드라마였다.
처음 보는 일본 역사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게 된 것은 ‘용의자 X의 헌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세 번째 살인’에 나오는 보조개가 있는 잘생긴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료마’ 역을 매력적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일본 상황에 대해 여러모로 알게 되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인지라 재미를 위해 허구를 집어넣으면서 ‘국뽕’의 냄새가 나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었다.
‘료마전’을 계기로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역사드라마와 사무라이들이 등장하는 일본 영화를 보면서 사무라이 사회를 약간 이해하게 되었고 일본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난 책이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가 쓴 일본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드라마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실제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 있었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아주 쉽게 쓰인 책이다. 일본 메이지 유신을 이루어낸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마치 등 네 명의 인물을 통해 메이지시대 전후의 일본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역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카모토 료마를 다룬 분량이 가장 많다.
시바 료타로의 베스트셀러 ‘료마가 간다’를 계기로 일본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역사적 인물의 하나가 된 사카모토 료마. 하급 사무라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카모토 료마는 자유로운 기질과 오픈된 마인드, 명석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진을 보면 당시 사무라이들의 머리스타일과는 달리 곱슬머리를 묶은 모습이라든가, 사무라이 복장에 부츠를 신은 모습이 파격적이다(료마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부츠를 신은 사람이라고 한다).
각각 개성이 다른 4명의 인물 이야기는 그대로 일본 근대사의 이야기가 된다. 그 4인이 일본을 완전히 새롭게 바꾼 메이지유신에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이지만, 책을 읽어보니 메이지유신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료마보다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마치가 메이지시대 한 역할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사카모토 료마가 더 사랑받는 것에는 안타까운 요절과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역사상 유명인물에 대하여 저자가 말한 것을 한번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위인’은 역사과정을 통해 후세에 몇 단계에 걸쳐 만들어지고 형성된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의 무공으로 당시에도 꽤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그 이름값은 정조, 고종, 일제,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차근차근 형성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대항하여 한국사의 틀을 만들려고 했던 조선학 운동의 담당자들이 이순신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현창(현창_ 분명하게 나타냄)했다. ‘네이션 빌딩’에 매진했던 박정희에게도 이순신은 좋은 대상이었다. 한국 민족주의의 핵심요소인 반일주의에 그만한 좋은 소재는 없었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김유신이 민족통일의 화신이 된 것도 비슷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상 유명인물이란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한 이유로 현창된 것이 쌓여 우리 앞에 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105페이지)
일본은 알면 알수록 놀랍고, 이상한 나라이다.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 성립 이래 700여 년간 일본을 지배한 사무라이를 알지 못하고서, 오늘의 일본을 만든 메이지유신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이라는 나라,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관계로 얽혀 있는 일본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