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나요? 치자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향기가 어떠한지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다. 치자꽃이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늠한 색은 노란색이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식물이었다. 실상 순백의 하얀 도톰한 꽃잎에 강렬한 자두 향이 난다. 치자꽃은 그러하다.
여름 방학인 것 같은데 몇 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언니와 내가 할아버지 집에 내려가 있었다. 비가 왔었는지 수량이 풍부해진 개울과 도랑 중간쯤 되는 모래가 고운 물가에서 떠내려가기를 하며 우리만의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여름 길, 너무나 달콤한 냄새를 맡았는데 바로 자두나무 여럿이 심긴 동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집 뒤편 동산이 누군가의 별장이 있었는데 화려한 깃털을 펼쳐 대는 공작새가 집을 지키는 집이었다. 그 집 뒤로 이런 자두 밭이 있는 줄이야. 함부로 따서 먹어볼 수도 없고 담장 너머의 열매들이라 그저 짙은 달콤함을 흠향했다. 그래도 좋았다.
아빠가 다리를 다치셨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것이다. 동네 친목회를 하고 동생을 태우고 현이언니네 아저씨를 태우고 돌아오던 길에 동생은 붕 날았지만 멀쩡했고 아저씨는 머리를 다쳤고 아빠는 다리가 부러졌다. 아저씨가 머리 수술을 받는 마당에 아빠의 골절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아빠는 집에서 불편한 다리 위에 밀가루 치자떡을 붙였다.
말린 치자 열매를 우려내어 그 싯누런 물에 밀가루와 식초를 넣고 반죽해서 부어 오른 다리에 붙이면 누런 치자떡은 무슨 작용인지 시퍼렇게 변했다. 아픈 다리의 독소를 뽑아내듯 속 시원하게 푸른색으로 변했다. 방안 가득했던 시큼한 냄새, 우울한 냄새 그러나 누런색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모습은 소망을 갖게 했다. 다 괜찮아질 거야..
아빠는 사고가 나기 전 보다 더 묵직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고 이른 아침 늦은 밤으로 나를 실어 날랐다.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고등학교 등교를 위해 외진 길을 지나 한참 떨어져 있던 버스 정류장에 태워주고 11시가 다 되어 돌아오는 나를 위해 마중을 나왔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빠 점퍼 속에 내가 덮어쓸 또 다른 점퍼를 꺼내 주셨다. 아빠의 온기를 머금은 점퍼를 뒤집어쓰고 아빠 등에 딱 붙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간다.
아빠 냄새, 시큼한 땀냄새, 따뜻한 냄새, 삼십 년도 지났는데 아빠 냄새가 기억된다. 예배를 드리며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설교를 들으며 아침부터 싸움을 거는 내 아이 때문에 속 시끄러웠는데 아빠 냄새가 나에게 말한다. 내가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인지. 자식이라고 공짜로 받은 사랑이기에 내가 내 아이에게 그대로 줄 수밖에 없도록 성난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아빠가 떠난 지 6년이 지났는데 여기 있다. 존재가 언제까지나 나에게 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아기엄마가 되어 친정에 갔을 때 엄마 아빠가 키우던 화분에 치자꽃이 있었다. 나에게 결국 치자꽃의 극락을 알게 해 준 것도 치자떡을 만들었던 내 부모이다. 몇 번이고 희한해서 확인하듯 맡고 또 맡았다. “엄마 이게 치자꽃이라고? 자두향이 나는데?” 친정에 들르는 여름의 즐거움은 아빠가 심은 자두나무의 특별한 달콤함, 초가을은 머루 포도의 짙은 향에 취기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좁은 마당에 아빠는 알뜰히 살구를 심고 자두를 심고 포도를 길렀다. 동산 위 별장 부럽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왕숙천 그 동네가 왕숙지구가 되어 최근에 사라졌다. 그 한참 전에 자두나무가 아직도 열매를 매달 때 엄마 아빠는 그 집을 팔고 홍수에서 안전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도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나는 자두 꽃이 피는 걸 확인했고 돌보는 손길 없이 열매 맺는 걸 확인했고 초록 자두들이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아하며 따먹어 주길, 생각보다 맛이 훌륭해서 깜짝 놀라 주길 바랐다.
이해인 수녀의 “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라는 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렐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