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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km, 기다림이 길이 된 시간

파주 심학산 둘레길 6.8km, 멈춘 자리에서 피어난 발걸음

6.8km, 두 달의 고요가 남긴 선물


미국 한 달 살이를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 허리 통증은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 떠났지만,

낯선 도시를 걷는 건 늘 고통과 함께였다.

돌아와서도 무리한 일정이 이어졌고,

결국 허리와 다리 통증은 더 심해졌다.

나는 두 달 동안 집에 칩거하며,

거실 한쪽에서 근육 강화 운동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오랫동안 멈춰 있던 나에게

심학산 둘레길 6.8km는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선언’ 같았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나와의 대화


6.8km, 빠르면 한 시간 반,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이 걸리는 길.

숲길을 따라 발을 내딛자,

잊고 있던 내 몸의 리듬이 서서히 돌아왔다.


“다시 걸을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토록 벅찬 기쁨으로 다가올 줄이야.

아픔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지난날의 마음이

한 걸음, 또 한 걸음마다 조금씩 펴져 나갔다.



약천사에서 들려온 위로


길을 걷다 마주한 약천사.

풍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내 안의 고통도 함께 흔들려 흩어지는 듯했다.


기다림 끝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절집은 말없이 미소를 건네는 듯했다.

“고생했지, 이제는 괜찮아.”

그 짧은 순간, 나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품이 있다는 걸 느꼈다.



바위 위의 소나무, 그리고 저녁노을


수투바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는

끝내 버텨낸 지난날의 나와 닮아 있었다.

흔들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던 시간들.


낙조전망대에 올랐을 때,

붉게 물드는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마음속에 선명히 새겨졌다.

“오늘의 걸음은 내일의 용기가 된다.”



6.8km가 남긴 선물


숲길 끝자락,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내 몸과 마음에 잔잔한 평화를 내려주었다.


오늘의 6.8km는 단순한 거리가 아니었다.

두 달간의 기다림,

아픔을 견디며 되찾은 회복,

그리고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마무리


걷는다는 건 결국 나를 다독이는 일.

숲은 조용히 내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네가 다시 걷고 있으니까.”


두 달 동안 멈춰 있던 발걸음이 오늘은 다시 길을 밟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아팠던 시간을 흘려보내고,

기다림 속에서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았다.


오늘 걸은 6.8km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내가 견뎌낸 시간의 무게이고,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길이었다.


숲길에 스며든 햇살처럼,

이제 내 마음에도 따뜻한 빛이 깃든다.

언젠가 또다시 흔들리더라도

오늘의 걸음을 떠올리며,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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