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순간은, 곧 나의 춤이었다.
올해 키아프 전시장에서, 나는 한동안 갤러리 위(Gallery We) 부스 앞을 떠나지 못했다.
김선영 조각가의 작품들은 단순히 가방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자의 몸과 삶,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흔드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은빛 표면은 차갑지만, 안쪽에서 밀어 오르는 곡선은 따뜻한 체온처럼 느껴졌다.
〈임신한 그녀〉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생명을 품은 자궁의 은유였다.
그 앞에서 나는 알았다. 여성의 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기억과 시간, 사랑과 생명을 담아내는 가장 큰 Vessel이라는 것을.
그리고 문득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 작품 위로 겹쳐졌다.
“생명은 언제나 한 여인의 뱃속에서 시작된다.”
작품 속 팽창된 곡선은 바로 그 근원적인 진실을 시각화하고 있었다.
눈부신 금속의 표면은 강렬하게 빛났지만, 그 빛 뒤에는 욕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욕망하는 그녀〉는 우리로 하여금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을 욕망하는가?”
그 순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이 귓가에 메아리쳤다.
“우리는 모두 욕망의 노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비밀이다.”
〈욕망하는 그녀〉는 욕망을 꾸짖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안의 욕망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여준다.
유리 케이스 속 브론즈 가방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왜 우리는 이 형태를 욕망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
〈The Original Birkin〉은 명품의 권위를 해체하고, 욕망을 성찰의 장치로 바꿔놓는다.
이때 떠오른 것은 소로(Thoreau)의 문장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들보다, 그것을 갈망하는 방식으로 더 많이 규정된다.”
브론즈로 재탄생한 가방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안의 욕망과 그 욕망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레진으로 빚어진 조각은 손끝으로 건드리자 천천히 흔들리며, 전시장 안에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잠시 후 조용히 중심을 찾아 다시 서는 순간, 그 안에서 심장 박동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춤추는 그녀〉는 말없이 알려준다.
흔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게 하는 리듬이라는 것을.
그때, 칼릴 지브란의 문장이 떠올랐다.
“삶은 춤과 같고, 우리는 그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났다.”
그 말처럼, 흔들림은 곧 춤이 되었고, 춤은 결국 나의 삶과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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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다.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세워야 하고, 무게를 짊어진 채로도 춤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딸이라서 감내해야 했던 서러움, 여자라서 닫혀 있던 문들, 큰며느리라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불합리한 기대.
그 모든 순간마다 나는 흔들렸지만, 끝내 다시 일어섰다.
흔들림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세워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흔들리며 춤춘다. 그것이 여자로 산다는 것, 곧 나로 살아내는 방식이기에.
김선영의 조각 앞에 서면,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는 가방이라는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생명과 기억, 욕망과 균형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은 물질의 표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 보인다.
나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내 삶과 마주한다.
흔들리는 존재일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끝내 춤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Vessel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김선영 작가의 작품세계를 동경한다.
그의 조각처럼, 내 삶 또한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서게 하는 그릇이 되기를 소망하며.
〈춤추는 그녀〉 앞에서 나는 가만히 서 있는 관람객이 아니었다.
손끝으로 작품을 흔드는 순간, 비로소 작품과 내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했다.
흔들림은 나의 흔들림이 되었고, 다시 일어서는 균형은 내 삶의 회복과 겹쳐졌다.
니체가 말했듯, “우리는 춤추듯 살아야 한다.”
〈춤추는 그녀〉 앞에서 나는 그 문장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흔들림은 멈추지 않는 삶의 리듬이었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은 곧 나의 춤이었다.
김선영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렇게 내 삶과 이어졌다.
〈임신한 그녀〉에서의 생명,
〈욕망하는 그녀〉에서의 욕망,
〈The Original Birkin〉에서의 성찰,
〈춤추는 그녀〉에서의 회복과 균형.
그 모든 조각은 곧 우리의 이야기였고
나는 작품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