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 돈카츠 앞에 선 단독자

by 전지적 아아

갑자기 그런 날이 있다. 엄청 무언가가 먹고 싶어져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날. 그럼 그날은 그 음식을 반드시 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며칠 동안 생각난 음식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괴롭고 스트레스가 마구 쌓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먹고 나면 또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는 것이다. 진짜 그전에 어떤 이유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건 싹 다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내 앵겔 지수는 낮아진 적이 없다. 너무 높아서 문제지.


그 음식이 며칠 전에는 돈카츠였다. 일본식 돈카츠.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혀서 튀기는 음식인, 포크커틀릿이 정식 이름이지만 이제는 각 나라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요리법이나 즐기는 법이 달라진 바로 그 음식.


백종원 씨는 방송에서 본인은 경양식 돈가스가 자기 취향이라고 했다. 그 돈가스는 사실 나에게는 대단히 특별한 추억을 가진 음식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 이상한 위치에 경양식 돈가스 집이 있었다. 위치가 목욕탕 건물 지하에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있는 찜질방 안에 있는 가게 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들어가면 90년대 초반 경양식 집이라 불리는 그런 분위기의 가게였다. 가게 이름은 레스토랑이었는데 취급하는 메뉴는 단 세 개.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오므라이스였다. 그 가게는 우리 집에 특별한 날이거나, 생일이거나, 엄마랑 아빠가 싸웠거나 했을 때 엄마가 우리 형제를 데리고 가던 집이었다. 그리고 항상 가면 우리는 항상 돈가스 세 개를 시켜서 먹었다. 아마 오므라이스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오는 가게였고, 함박스테이크가 돈가스에 비해 1,000원 더 비싸서(그때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 시가로는 거의 체감상 4~5,000원 더 비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돈가스만 먹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함박스테이크가 먹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집은 아니어서 돈가스도 감지덕지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IMF 이후에는 그 집을, 아니 외식을 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그래서 사실 내 돈가스 취향은 백종원 씨와 대척점에 있는 일본식 돈카츠이다. 두툼한 고기와 바삭을 넘어선 빠삭한 옷을 입힌, 살짝 눌렀을 때 육즙이 살짝 흘러나오는 그런 돈카츠 말이다.(그래서 돈카츠 옷이 빠삭해야 한다. 넘치는 육즙을 이겨낼 정도로 말이다.) 그게 너무 먹고 싶은 날이었다. 퇴근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서서 엄청 고민했다. 퇴근길에 일본식 돈카츠를 먹으려면 동성로 인근으로 가는 게 가장 좋았다. 거기 가는 버스 730을 탈 것인가? 아니면 이성적 인간으로 본능을 억누른 채 지하철역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401을 탈 것인가? 엄청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고민의 끝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730이 무려 8분이나 먼저 온다는 안내 표지를 보고 돈카츠를 먹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네이버 지도를 켜고 그동안 저장했던 가보고 싶은 음식점 중 돈카츠 집을 추려보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네이버 평점 5점 만점에 4.6 정도를 기록하고 있는, 데이트 코스로 많이 추천하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데이트 코스로 많이 추천된다는 게 좀 꺼려졌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걸 어떻게 해. 가야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민할 새도 없이 지도에서 안내하는 파란 선을 따라 가게로 이동하고 있었다. 배도 적당히 고팠고, 스트레스도 적당히 받았으며, 학교 급식 메뉴를 제외하고 고기를 먹은 지도 꽤 되었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입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돈카츠를 튀기는 기름 냄새를 상상으로 맡으면서 내적 아우성을 엄청 쳤지만 표정은 굉장히 근엄하고 진지하게, 약간 화가 났나 싶을 정도의 표정을 유지하면서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사람은 늘 운명 같은 만남이 갑자기 뜬금없이 올 때가 있다. 길 가다가 이상형을 갑자기 만나서 설레기도 하고, 전 여친을 만나서 우울의 끝을 달릴 때도 있다. 원래 가기로 마음먹은 식당으로 가다가 상상으로만 맡던 기름 냄새를 실제 코로 맡아버렸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까 돈카츠 집이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가게 안을 슬쩍 봤는데 혼자 온 남자 손님 두 명이 앉아서 메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문구. 데이트 코스 추천. 가려고 한 가게에 가면 수많은 커플 사이에 홀로 외롭게 앉아서 우아함을 유지한 채 돈카츠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180도 턴을 했고, 곧바로 오다가 우연히 만난 돈카츠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살짝 분위기가 브레이크 타임 느낌이 와서 당황했다. 분명히 손님이 있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도 그 손님들이 가게 주인 지인 같고, 지인들이 그냥 밥 한 끼 먹으러 온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점원의 친절한 자리 안내에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가게에 앉아서 메뉴를 봤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일본식 돈카츠 집에서 항상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등심과 안심이다.


등심과 안심 중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등심은 가게별로 맛이 안정적이다. 경양식 돈가스에서도 쓰는 부위이고 살짝 씹는 맛이 있으면서 고기 자체가 기름이 별로 없는 부위라서 튀겼을 때 느끼한 맛이 덜한 편이다. 게다가 중식의 탕수육으로도 튀긴 등심은 많이 접하기 때문에 약간 익숙하기도 하다. 반면 안심은 가게별로 맛의 차이가 좀 나는 편이다. 안심은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주는 부위라서 한입 가득 넣어도 등심에 비해 씹는 게 덜 부담스럽다. 육즙이 많은 편이라 돈카츠 옷의 바삭한 식감을 살짝 즐기고 나면 입에서 까슬한 느낌을 덜어주는 편이라 식감도 좋다. 단점이라면 한 점 한 점 크기가 베어 물어 먹기 조금 불편하고, 잘못 조리하면 퍽퍽하고 느끼해져서 갑자기 떡볶이 국물이나 김치가 생각난다. 아, 일식이니까 단무지도 필요해진다.


고민은 조금 오래되었다. 처음 오는 집에서 도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안정적인 맛을 선택할 것인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촉촉한 안심의 이미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마 전날 자기 전에 틀어놓은 요리 콘텐츠 유튜브 때문일 것이다. 자면서 머리에 강렬하게 남은 것 같다. 주문은 안심 카츠로 하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 주문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5시 40분 즈음이었다. 번화가에서 편하게 밥을 먹으려면 평소 집에서 먹는 시간보다 빨리 먹거나 늦게 먹어야 한다.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손에 손 잡은 커플들이. 그전까지 남자 셋이 각기 다른 테이블에서 각자의 메뉴를 시켜서 느긋하게 먹는 장소에서 갑자기 커플들의 성지로 음식점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최근에 혼밥을 즐겨하다 보니까 혼자 먹는 것에는 크게 거리낌이 없어졌다. 문제는 모든 테이블이 커플이면 좀 불편하다. 주변에서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이 나오는 순간 표정이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나에게는 역린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미 주문하고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걸. 내가 주문한 안심 카츠는 이미 기름 솥 안으로 들어간 지 꽤 되었을 것이다. 견뎌야지. 나 혼자 스트레스 받고 나 혼자 견디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1도 관심 없는데 말이다.


서로의 볼을 꼬집고, 화장실 간다고 같이 따라가서 앞에서 지켜주고, 뭐 먹을지 서로 추천해주면서 꽁냥거리는 커플들의 모습을 배 아파하면서 관찰하다 보니 안심 카츠가 나왔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운명 같은 만남은 뜬금없이 온다. 안심 카츠의 외관이 내가 먹고 싶어서 떠올린 이미지와 너무 비슷했다. 튀김옷은 빠삭했고, 육즙은 누르지 않아도 이미 가득해서 촉촉해 보였다. 살짝 분홍빛이 돌게 익기도 적당히 익어서 누가 봐도 부드럽게 보였다. 게다가 일본식답게 담음새도 꽤 정갈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상적인 안심 카츠와의 만남이라서 당황했다. 하마터면 가게에서 탄성을 지를 뻔했다. 마치 음식 만화 주인공처럼 말이다. 정말 이상형을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것처럼 두근거렸다. 진짜 돈카츠 앞에서 두근거린 건 부산 해운대에서 간 돈카츠 맛집 이후로 처음이었다.


우산 안심 카츠 한 덩이를 밥 위에 올리고 와사비를 살짝 바른다. 그리고 소스에 찍어서 한 입에 가득 넣고 씹기 시작하는데 첫인상에서 상상했던 그 맛 그대로였다. 정말 맛있었다. 고기는 촉촉했고, 부드러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통 돈카츠를 먹다 보면 중간 즈음에 느끼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데 이 집에서는 그런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변 상큼한 곁들임 음식을 가장 덜 먹은 돈카츠였다. 샐러드도 고소한 소스가 아니라 상큼한 소스로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개인적으로 와사비를 정말 좋아하는데 첫 서브가 조금만 되어서 그 점은 아쉬웠다. 특히 음식점에서 더 달라고 하는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더 아쉬움이 컸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일식이 양을 많이 서브하기보다 간을 세게 해서 만족감을 주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아니기도 하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가격도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집보다 3,000원 정도 더 쌌는데 내가 생각하는 요즘 물가 대비 가장 합리적인 안심 카츠 가격이 아니었나 싶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면서 가게 상호를 확인하고 바로 네이버 지도에 등록을 해두었다. 퇴근길에 한 번씩 가는 중식당과 함께 일본식 돈카츠 집을 찾아서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그리고 가장 뿌듯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여러 커플 사이에서도 내가 음식에 집중하고, 음식을 즐겼다는 점이다. 어릴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이었다. 왠지 밥 같이 먹을 친구 하나 없는 이상한 사람 같이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고 성격도 좀 괴팍하고 살짝 이상한 면도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잘 남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이런 정도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기는 하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지금 내 주변에서 나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혼자 밥 먹는 걸 참 못한다. 그런데 그게 나뿐만이 아니다. 요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많은 한국 사람들은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을 참 어려워한다. 오죽하면 혼밥 레벨을 정해놓은 짤이 몇 년 전에 밈처럼 유행했을까? 왜 그런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사실 혼자 밥 먹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콘텐츠가 있을 정도로 혼자 먹는 건 음식에 또 다른 면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안심 카츠를 혼자 먹으러 가지 않았다면 이미 가겠다고 마음먹은 장소로 가야 했을 것이다. 나 혼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장소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연하게 마음에 드는 돈카츠 집을 발견하게 된 것도 혼자 먹으러 갔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음식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음식에 집중한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불가에서는 “그릇을 보면 비워라”라고 한다. 물론 이 그릇은 음식이 아니라 업을 담은 그릇이지만 어쨌든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으면 비워야 한다. 그 본질적인 행위에 가장 가까워지려면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어떤 행위의 근본, 본질에 접근하는 일종의 수행의 방법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본질에서 벗어나 겉치레가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어느 정도 수준일 때는 예절이나 격식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너무 많아지면 허례허식으로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된다. 허례허식에 빠지지 않고 본질에 다가서려면 다른 어떤 개입 없이 오직 혼자 그 존재 앞에 서서 그 존재를 관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 섞이면 나는 그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기 전에 주변 사람들의 시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람들 만날 때도 주변 사람들 소문을 들어보면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나랑 잘 안 맞는 그런 경우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는 한 번쯤은 혼자 가서 그 음식의 본질 앞에 한 번 서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뿐만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모든 존재들의 본질을 보고 싶다면 혼자 맨몸으로 그 존재와 대면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그날 안심 카츠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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