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을 해야 해 / 그리워할 시간이 없어

(윤종신 with 하동균, 「워커홀릭」)

by 전지적 아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않지만, 나 혼자 인생 드라마라고 생각하며 생각나면 돌려보는 드라마가 "미생"이다. 원작 만화도 좋아했고, 드라마 버전의 이야기도 좋았다. 특유의 차가운 톤으로 가득한 화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직장 속 인간 군상들의 모습. 시청률이나 평소 드라마 작법에 따르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담백한 이야기. 좋은 드라마였고, 인기도 참 많아서 외전 격 이야기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드라마에 참 많은 명대사가 있고, 명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신규 사원 PT 장면이나 중고차 사업 PT 장면을 많이 꼽는다. 그러나 나에게 이 드라마 가장 명장면은 병원 입원실에서 나눈 선 차장과 오 차장의 대화다.


선 차장과 오 차장 씬에서 오 차장이 "내가 힐링이 좀 필요해서 그래, 힐링. 생각할 것도 좀 있고."라면서 서류를 뒤적이는데, 이 장면을 처음 본 순간, '어, 저건데?'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잘 몰랐던, 직장생활을 하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본 느낌이랄까. 그리고 몇 년 뒤 월간 윤종신을 듣다가 기시감이 드는 노래를 들었는데, 그것이 "워커홀릭"이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그 틈으로 온갖 상념이 튀어 나온다. 상념이니 당연히 좋을리가 없다. 과거의 후회와 부정적 추억이 한 보따리다. 이런 상념의 가장 큰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은 힘들어지고, 빠져나오는 길은 잃으며,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 번 집중하기는 어렵지만, 집중을 시작하면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하나씩 일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을 다 해내지 못해 자괴감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상념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낫다. 뭐라도 실천하고,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니까 주변에서 일중독자(워커홀릭)로 본다. 그렇게 바쁘게 일만 하냐고.

예전에 일만 하면서 사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다들 바쁜데 나만 유난 떠는 것 같아 부정하며 바쁘지 않다고 했던 시기가 있었다. 젊어 고생 사서도 한다고, 그런 젊은 날 누구나 해야 하는 고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바쁜 티 팍팍 낸다. 실제 조금만 방심하면 일을 놓칠 정도로 많은 일을 하려 하고 있고, 하고 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캘린더 앱을 안 쓰면 기억을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확실히 바쁘게 살면 다른 잡다한 생각이나 우울한 마음이 덜 느껴져서 좋긴 하다. 그런데 이게 건강한 것인지 묻는다면,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인생에 큰 변화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살 것 같다. 가끔 다른 방법으로 정신의 건강을 신경 쓰는 정도로 이 삶을 유지할 계획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정신적 피로가 심하기 때문에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요즘 학년 부장으로 학년실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퇴근하세요. 지금부터 나가면 교문에서 정시 퇴근입니다."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안 가는 게 포인트. (이 구역에 혼자 있고 싶으니 어서 다들 가버리세요!)

얼마 전까지 상념이 돋는 일을 겪었다. 그래서 마음의 틈이 생겼고, 온갖 부정적 기운이 몸을 감쌌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랄까. 혼자 속으로 온갖 감정을 흘려보내는, 떠올리는 생각을 다시 저 멀리 보내는 일이 좀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며 결심했다. "이제 일을 해야 해. 그리워할 시간이 없어."

과거회귀주의자가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 방법은 그것을 떠올릴 틈이 없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내 캘린더는 자꾸 여백이 없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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