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산책」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어느 봄날 강가를 걷고 있을 때
그날따라 듣는 음악도
내 맘처럼 흘러나오고
따듯한 바람에 둥실 맘이 떠갈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조금씩 젖어 갔네
누군가 볼까 잠시 멈춰 섰네
아름다운 것일수록
그만큼 슬픈 거라고
어쩌면 그때 우리는
아름다움의 끝을 피운 걸까
울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눈부신 날에
불러도 되는 것일까
고이 간직했던 그 이름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노란 빛깔 낙엽 가득한
어느 가을 공원을 걷고 있을 때
그날따라 듣는 음악도
내 맘처럼 흘러나오고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간질일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조금씩 젖어 갔네
누군가 볼까 잠시 멈춰 섰네
울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볕 좋은 날에
불러도 되는 것일까
애써 잊고 있던 그 이름
난 얼마나 걸었을까
어딜 향해 걷는 걸까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마냥 빙빙 돌고 있을까
함께 걷자고 했잖아
나란히 걷자 했잖아
이토록 날이 좋은데
여전히 난 홀로 걷는다
한때 함께 걷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인생에 꽤 많았으니 사람'들'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어떤 사람은 나를 버리고 떠났고, 어떤 사람은 내가 버리고 떠났다. 이별이 깔끔했던 적도 있었고, 분노에 가득찬 적도 있었다. 물론 가장 많았던 것은 비겁했던 적이다. 지금 내가 이 상태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달라졌을까. 대답은 아니오. 나는 그렇게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비겁한 사람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비겁하지 않을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만 나이로도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된다. 맞는 말 같다. 어지간한 세상 일로 놀라지 않는다. 물론 12월 3일에는 어지간하지 않은 일로 놀라긴 했지만, 2024년 들어서 그것 빼고는 크게 놀라지 않은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세상 일에 멀미를 느끼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세상이 심심해졌다. 승차감 좋은 세단을 탔는데, 오프로드의 덜컹거리는 맛을 그리워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행복했던 때의 나.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 감정선의 끄트머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심하다가도 애처롭다가도 어이가 없다. 그 감정선을 걷어찬 녀석이 누군데. 그걸 그리워하고 앉아 있는지.
그 과거의 감정선을 불러오는 노래가 꽤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플리를 잘못 재생하는 순간, 알고리즘 감옥에 갖혀 하루종일 과거 시간 속에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그 플리의 끝에는 꽤 높은 확률로 김동률을 검색한다.
김동률의 존재는 고등학교 때 알게 되었다. 딱 3집 발매 직전, 친구가 추천해줬다. 그때는 전람회 대표곡과 2집 타이틀곡을 많이 들었다. 기억의 습작, 유서, 새, 졸업, 취중진담, 희망, 2년만에, 벽, 한여름밤의 꿈, 그녀를 만나요, 그땐 그랬지, 거위의 꿈. 여기에 박효신, 토이(아... 내 소년 시절...), 윤종신, 야다, 이적, 패닉, 김진표, 노바소닉, 그리고 약간의 신해철... 그리고 얼마 뒤 김동률 3집은 초대박을 내게 된다. 타이틀곡은 그 유명한
https://youtu.be/1oGHSDyDEqA?si=CjtJj8vMJ1a9JW99
그 고등학교 시절 때도 그랬지만, 김동률의 노래는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희망적이든, 절망적이든, 비관적이든, 부끄럽든. 신기한 것은 특정 인물을 떠올린다기보다는 그때의 '나'를 좀 더 생각하게 되는 느낌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때의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주로 했으며,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등을 말이다. 그래, 아주 정확하게는 지나간 사랑이 아니라 '청춘'을 떠올리게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오지 않는, 멀리 가버린, 지나가야 밝고 빛나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그 청춘.
노래는 정말 산책을 하고 있는 호흡이다. 땅은 힘차게 꾹꾹 딛는데, 마음은, 생각은 옛이야기로 휘리릭 가볍게 날라가 버린 느낌이다. 산책하면서 듣던 노래 중에 갑자기 가슴에 확 들어오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러면 더 깊숙하게 과거로 생각이 흘러간다. 그러면 꼭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감정에 살짝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살짝 맺힌다. 얼른 누가 볼까 훔치는데, 갑자기 깨닫는다. 아, 이 눈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때가 생각나서 난 눈물이라고. 아름다운 시절의 끝을 맛 본 느낌.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이름을 상기한다. 잊었던 이름도, 잊을 뻔한 이름도, 잊고 싶었던 이름도. 그렇게 봇물 터지듯 그리움이 흘러나오면 갑자기 외쳐 묻고 싶어진다. 함께 하자고, 미래를 약속했던 너는 잘 지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아직 너희들의 시간 속을 혼자 걷고 있다고. 그렇지만 모두 부질 없다. 혼자 걷는 산책이고, 그들은 각자의 길을 잘 걷고 있을 것이다. 아니, 나와 멀어져 더 좋은 꽃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렇게 빛나는 옆사람에게 그 빛을 알아봐주지도 못하고, 더 빛나게도 못해주고, 그저 나와 함께 어두워지게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산책을 하며 마음은 차분해지며 객관적인지 비관적인지 모를 합리화를 하며 나는 혼자 걷는 것에 익숙해지려 한다.
어느 책방에서 책 모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그 책방의 책방지기가 "과거의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데,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들렸을까 고민이 됐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 혼자 걷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빛나는 옆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마음에서 그냥 떠나보내버린 것은 아닐까. 혼자 걸어야 하니까.
산책을 끝내고 집에 와서 다시 노래를 듣는다. 뭘 들을까 고민하다가 노래를 한 곡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