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조그만 교실로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by 전지적 아아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 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썩 모두를 먹어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해

좀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매일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족해)이젠 족해(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수 있어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2001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같은 담장 안에 바로 옆 건물로 등교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레진 않았다. 똑같은 등굣길이었고,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등교 시간이 50분 앞당겨졌다는 것. 7시 30분까지 학교를 오란다.

「교실 이데아」 가사가 귀에 꽂힌 이유는 바로 이 사실성이 아닐까 한다. 이르면 7시까지, 보통 7시 30분까지 고등학교의 등교는 모두 끝이 난다. 나는 그리고 언제나 7시 32분에 학교에 도착했고, 매일 교문에서 등교 지도를 하시던 선생님들께 그 선생님들께서 선호하시는 벌을 받고 교실로 들어가, 담임 선생님께 또 혼났다. 그럴 때마다 이 노래의 가장 첫 부분이 머리에 맴돌았다.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나는 10대에 ‘정말 왜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정한 시간에 맞춰서 어디다 써먹을지도 모르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20년 정도가 지는 지금. 나는 그 해답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내가 의문을 제기하던 것을 별 설득력 없는 말로 포장해 가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과연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내 말을 듣고 설득이 되었을까? 정말 학교 공부는 이해가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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