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직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면접통과가 남아있었다.
면접이라는 것이 딱히 '맞다, 아니다' 라는 확신 가는 답이 없기에 필기시험과는 또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면접준비를 하다 보니, 요금 공직사회에 큰 이슈인 MZ세대들의 조기 면직에 대응하여 조직 내 갈등경험과 그 해결에 대한 예상문제가 나왔다.
조직 내 갈등이라......
결혼과 출산 후 10여 년의 경력단절로 겨우 입사한 곳은 전문건설회사였다.
내가 맡은 일은 경리업무였다.
건설회사 경리업무는 관공서와 계약체결로 그에 따르는 착준공 관련 서류업무도 정확히 처리해야 해서 다른 업종 경리직에 비해 비교적 보수가 좋은 편이었다.
대표가 경단녀인 나를 무얼 믿고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정말 열심히 업무에 임했다.
전임자가 한 달 동안 인계해 주기로 하였으나, 내가 곧잘 해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2주가 지나자 훌쩍 떠나버렸다.
회사 대표는 50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내 책상을 닦으면서 그의 책상을 닦을라치면 절대 못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책상은 본인이 물티슈로 닦으면 된다고, 각자 본인 업무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디자인 담당이 탕비실 청소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공용공간이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해야 하는데, 업무특성상 대부분 현장에 나가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는 결코 '여성'인 우리에게 시키는 것이 아닌 '업무특성'을 항상 강조하곤 하였다.
대표 마인드가 이러하니 직장 동료들도 다 모난 구석 없이 원만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함께 일하던 디자인 담당이 결혼과 이사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직원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서 설계를 전공하고, 엄마밥이 먹고 싶어서 고향에 내려왔다가 입사하게 된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그녀가 업무에 익숙해질 때쯤, 나는 기존대로 탕비실 정리를 번갈아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단번에 선을 그었다.
"제가요? 왜요? 저는 그런 일 하러 온 사람 아닌데요."
다음은 나의 면접준비 답변이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조직의 분위기가 좋은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탕비실 청소를 이어갔고, 제가 커피를 마실 때 그녀의 커피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커피원두를 주문할 때 혹시 선호하는 원두가 있는지, 다른 차를 마시고 싶지는 않은지를 묻는 등 작은 배려를 이어갔습니다.
디자인 관련으로 고객이 찾아왔을 때 제가 차를 내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차츰 그녀도 변해갔습니다.
커피머신 청소를 하기도 하고,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고객응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갈등상황에서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침착함과 작은 배려가 갈등을 해결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이런 결말을 기대하였는가?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나의 배려에도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다행히 면접에서는 이 답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