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by 엘레강스박

집에는 아무도 없다.

일요일인데도 휴일 없는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셨고, 마당에 있던 동생들은 놀러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시골집 장녀인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방청소와 설거지도 끝냈겠다, 실내화도 빨아놓았겠다, 이 고요한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그리곤 항상 피곤에 찌들어 있는 엄마가 찬장 깊숙이 숨겨둔 믹스커피를 꺼냈다.

막상 커피를 마시려고 하니, '애들이 마시면 머리 나빠진다, 심정 벌렁거려 병난다'라고 하던 엄마는 말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그러나 고자질할 동생들 없는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재빨리 커피를 타서 라디오를 가지러 안방으로 향했다.

기분 좋은 가을 햇살이 부엌과 연결된 방문 앞에도 들어와 있었다.

한껏 고조된 기분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방문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그 흥을 깨는 밉상을 발견했다.

옹실이가 눈감고 가르랑거리며 온몸으로 가을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안방 문턱 위에서.


옹실이는 어둑한 어느 저녁에 집 앞 골목에서 쓰레기를 뒤지다가 엄마의 눈에 띄어 우리 집으로 온 고양이다.

저 도도한 자태의 고양이를 엄마는 어떻게 꾀어내어 데리고 왔는지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어쨌거나 황금빛 고운 털의 그녀가 온 이후로 집에 종종 출몰하던 쥐를 볼일이 없어졌다.

그 때문인지 엄마는 딸인 나보다 옹실이를 더 예뻐하는 듯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엄마에게 듣는 말이라고는 핀잔과 잔소리가 다였던 터라 차라리 내가 고양이였으면 싶을 때도 있었다.

"야, 방정맞게 왜 여기 있어!"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그녀를 발로 찼다.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문턱을 밟고 있으면 엄마는 재수 없다고 꾸지람하셨다.

문턱을 밟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에게도 적용되는 우리 집 규율이었다.

유일하게 그 규율에서 자유로운 것은 옹실이였는데, 그녀가 문턱에 올라도 엄마는 말없이 안아서 다른 곳에 내려놓을 뿐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얄미운 옹실이는 갑작스러운 내 발차기 공격에 쏜살같이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꼴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늘은 말갛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강수지 언니의 노랫소리도 참 말갛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분주한 듯했고, 나는 나대로 내일 있을 영어단어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옹실이 못 봤나?"

엄마는 푹 삶은 생선 대가리가 담긴 옹실이의 밥그릇을 들고 있었다.

"텃밭에서 낮잠 자고 있겠죠."

"없던데?"

"그럼 또 주인집 마루 밑에서 엎어져 자고 있겠지."


깜빡 졸았던 것일까, 밖에서 나는 큰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이고야, 이 예쁜 것을 아까워서 우짜노."

어지간해서는 속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엄마가 쓰레받기를 든 채 울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는 숨이 멎을 듯 놀랐다.

쓰레받기 위에는 돌처럼 굳어 사체로 돌아온 옹실이가 있었던 것이다.

눈도 감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앞발을 치켜든 그 모습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는지 짐작이 갔다.

"내가 고양이 키운다고 쥐약 안 놔도 된다 했는데......"

내 말대로 엄마는 주인집 마루 밑에서 옹실이를 발견할 수 있었고,

주인집 할머니가 놓아둔 쥐약 섞은 음식을 먹고 저렇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한숨을 쉬던 엄마는 저녁식사 준비도 뒤로 미룬 채 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옹실이를 뒷산에 묻어주려는 것이다.

동생들도 뒤따라갔으나 나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옹실이를 발로 차서 내쫓지만 않았어도 우리와 한참을 더 살 것이라는 죄책감에 도저히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어둑한 어느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왔던 옹실이는 어둑한 저녁에 그렇게 집을 떠났다.


이미 삼십 년도 넘은 일이지만, 나는 그 어떤 고양이에게도 다가가지 못한다.

옹실이에 대한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고양이를 볼 때마다 고개 들기 때문이다.

끝내지 못한 일이 마음속 불편함으로 남아,

쉽사리 잊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도 그날 엄마를 따라가 옹실이를 보내주는 그 의식에 참석했더라면,

그래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그 시간을 마무리지어 끝냈더라면,

이 기억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이기적인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고양이를 볼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죄책감을 이 글을 끝으로 내려놓았으면 한다.

고양이를 양껏 사랑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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