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과 메신저

by 엘레강스박

고등학생 아들은 귀가하면 무엇을 하는지 방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는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해서 들여다보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가 달라는 의사표시만 할 뿐이다.

아들의 친구를 길에서 만나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반 친구가 여학생을 소개해 주어서, 아직 만난 적이 없는 그들은 온라인상 메신저로 연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교시절에 한참 펜팔에 빠져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학생이지만, 밤늦도록 쓴 감성 가득한 편지를 보내면 그의 공감이나 사상이 담긴 글이 실려 돌아오곤 했다.

지금의 이메일처럼 수신확인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메시지에 숫자 '1'이 찍혀있어 읽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반드시 답장할 필요는 없었다.

등기우편으로 보낼 사안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받지 못했다고 하면 그만일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편지에 답장을 충실히 하였다.

편지를 쓰려면 팬시점에 가서 수많은 편지지 중 하나를 고르고 그립감 좋은 펜도 골랐다.

보통은 늦은 밤 시간에 라디오를 켜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예쁜 글씨로 편지지를 채웠다.

다음 날 읽어보면 유치함에 낯 뜨거워 보낼지 말지 망설여지는 문장이나 내용도 많았다.

따라서 우표가 붙여져 빨간 우체통에 들어간 그 편지는, 발신자의 시간과 정성과 망설임이 들어간 하나의 공들인 작품이었다.

수신자는 그러한 과정을 알았기에 서로의 편지에 예의 바른 답장을 멈추지 않았다.


제법 오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도착한 그의 편지에는 만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글로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로도 즐거움이 충분해서 그 일이 반갑지는 않았다.

사실, 편지 오가는 주소 외에는 서로의 집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황이라 그 말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망설임 끝에 모일 모시에 시내 어는 상가 앞에서 보자는 그의 편지대로 그 장소를 찾아갔다.

마침 점심때였고 그를 따라 상가에 있는 중국집으로 갔다.

짜장면을 주문했다.

그가 탕수육도 시킨 것 같다.

나는 시골인 우리 집에서 버스를 두 번 타고 한참을 가야 해서 멀미가 난 상태였다.

그래서 잘 먹지는 못하였다.

그도 멀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음식을 입에 놓고 한참을 우물거리며 힘들게 씹는 듯하였다.

내 침묵이 어색했는지 그는 편지에서 했던 내용의 말을 또 하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 다시 조용한 식사가 진행되었다.

음식을 절반 이상 남기고 쌉싸름한 이름 모를 차를 들이킨 우리는 중국집을 나왔다.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서운할 것도 없었다.

그와 나는 편지 속에서 각자의 마음에 드는 허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있었고,

그 허상과 감정을 교류해 왔던 것이다.

그 중국집에서의 만남으로 허상이 사라진 것이고, 더 이상 감정을 주고받을 허상이 없으니 주고받을 편지도 없어진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30년 전 펜팔에 빠저 있던 20세기 엄마와

지금 메신저에 빠져있는 21세기 아들이 아웅다웅하면서 산다.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사과를 먹는 중에도 아들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또 온라인 여자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양이다.

결국 과일을 다 먹지도 않고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들도 예전의 나처럼 허상 하나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마디 하려고 일어서는 나를 남편이 붙잡는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휴대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울린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엄마, 이것 마시고 힘내요.'

앱테크 포인트를 써서 구매한 비타민음료 쿠폰도 함께 보내왔다.

마시기도 전에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그래,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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