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폭로한 감정의 무자비한 진실
《조커》에서 아서가 사회복지사에게 던진 질문이 있다.
"당신은 제 이야기를 듣고 있나요?"
이 질문이 무서운 이유는,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는 7년 동안 아서를 만났다. 형식적으로는 듣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네, 네" 하며 반응했다. 그런데 아서의 질문 한 마디로 모든 게 무너진다.
이건 완벽한 함정 질문이다. "듣고 있다"고 답하면 거짓말이 되고, "안 듣고 있다"고 답하면 직무유기가 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극악한 일도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업무처럼 수행할 때 일어난다.
하지만 놓치면 안 되는 게 있다. 아서도 똑같이 평범하게 악하다는 것.
그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무기로 삼아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나는 아픈 사람이니까 이래도 돼"라는 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절대적 면죄부로 사용하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을 보면 더 복잡하다.
박동훈의 어머니가 이지안에게 보여주는 다정함: "얘야, 많이 먹어. 너무 말랐다." "집에서는 뭘 해 먹니?" "라면이요." "라면만? 그럼 안 되지. 우리가 밥 좀 챙겨줄게."
분명 따뜻한 말인데 이지안은 왜 불편해 보일까?
어머니의 무자비함: 이지안을 '불쌍한 아이'라는 틀에 가두고, 그 틀에 맞는 반응(고마워하기, 의존하기)을 기대한다.
이지안의 무자비함: 침묵으로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아무 말 안 하면 죄책감 느낄 거야"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 엄마가 하는 말: "엄마 아빠가 이사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있는 거 알지? 그러니까 우리 라일리가 좀 더 밝게 있어주면 안 될까?"
엄마의 무자비함: 자신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떠넘기면서도 "너를 위해서"라고 포장한다.
라일리의 무자비함: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괜찮다"고 거짓말한다. 진짜 감정을 숨기고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
이것도 일종의 조작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걸 강요한다:
"슬픔은 나쁘고 기쁨은 좋다"
"화내면 안 되고 참아야 한다"
"고마워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렇게 규정한다:
"어른들은 다 이기적이야"
"진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어른들은 다 똑같아"
결국 누구도 상대방을 복잡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냥 단순한 역할로 규정해버린다.
정서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다.
어른들의 무자비함:
자기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면서도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기
아이의 현재 감정보다 미래의 성공을 우선시하기
사랑한다면서 조건을 붙이기
아이들의 무자비함:
자기 감정을 절대적 진실로 내세우며 타인을 통제하려 하기
"상처받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기
어른들의 선의를 의심하면서도 그 선의에 기대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정서가 무자비하다고 해서 사랑이 가짜는 아니다. 다만 그 사랑 안에는 불완전함과 이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을 뿐이다.
아서의 질문 "당신은 제 이야기를 듣고 있나요?"는 결국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우리도 때로는 듣지 않으면서 듣는 척하고, 때로는 들어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정서의 무자비함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선의와 악의를 넘나들며,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도 작동하는 감정의 이기적이고 복잡한 속성 말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무자비하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들어주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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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른들의 감정 CSI 수사대 〉
아이 말을 듣지 않고 '분석'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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