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골드스미스 <문예비창작>
여러분은 필사를 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엄마가 성경책을 펼쳐놓고 줄 쳐진 노트에 정갈하게 글자를 옮겨 적는 모습을 자주 보며 자랐습니다. 틀린 글자를 지우기 위해 펜모양의 수정액을 쓰다가 수정테이프를 쓰면서 좋아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게 필사는 일종의 '기도'처럼 보였습니다. 반듯하게 앉아서 입으로 중얼중얼하는 모습은 촛불을 켜고 묵주를 돌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눈을 감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빼면요. 매우 조용하고 경건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성경을 필사했던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쇄술이 없었던 시절 수도사에게 성경을 베끼는 것은 꽤나 노동이었던 듯합니다. 필사를 한 종이 귀퉁이에 너무 졸립다든지 그만하고 싶다든지 하는 속마음이 적혀 있었거든요. 그런 게 이런 푸념을 제외하고도 필사한 성경이 원본과 100%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사이먼 모리스라는 예술가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라는 책 한 권을 10개월에 걸쳐서 타이핑으로 필사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죠. 이토록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처음이라고요. 책을 베껴 쓰면서, 읽기만 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나 해석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올랐다면서 책이 꼭 자신에게 새겨지는 것과 같았다고 합니다.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읽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는 모양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주로 하는 훑어 읽기랑은 분명 다를 거란 생각은 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사이먼 모리스가 조금 이상한 말을 합니다? 책을 원래대로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면서, 자꾸만 자기 마음대로 조사를 쓰고 단어를 빼고 바꾸게 되어서 힘들었다고요. 여러분,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모방이 아닌 또 다른 창작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케네스 골드스미스의 책 <문예비창작>에서는 베껴쓰기도 창작으로 봅니다. 왜냐면 똑같은 텍스트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창작행위로 전환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소변기가 미술관에 전시되면서 작품이 된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마르셸 뒤샹의 <샘>입니다. 소변기를 우리가 사용하는 맥락에서 똑 떼어내, 다른 데 가져다 놓으니까 수많은 다른 해석들이 생겨나는데요. 어디 미술계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요? 음악계도 심지어 과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글에서는, 특히 문학에선 주기적으로 도용이나 표절, 날조 추문이 일고 저작권 시비가 일어나는 경우가 유독 많습니다. (관련된 재미있는 소설 '옐로페이스/R.F.쿠앙' 추천드려요.)
만약 지금 필사할 책을 한 권 정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고르실 건가요? 아 책 한 권은 도저히 힘들 것 같으니 내용 중에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필사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이러한 모종의 선택들이 바로 '나'라는 사람의 개성과 고유성을 표현하는 창작이고 창의성이라는 것이죠.
좀 더 나아가보죠.
저자는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논문을 제출하게 하는데요. 조건이 있습니다. 절대로 직접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을 자기 것처럼 자기 이름을 써내라는 겁니다.(사실 이게 우리가 해왔던 리포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이 수업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지 짐작이 가시지 않나요?
그런데, 특이한 건 자기가 쓰지도 않은 논문으로 발표를 해야 합니다? 다른 학생들의 질문도 받고 말이죠. 발표자는 당연히 이게 무슨 내용인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답을 할 수가 없는데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발표자를 포함해 모두가 온라인 검색이 가능하게 해 둡니다. 그러니 발표자는 모르던 것도 검색해서 답변을 할 수 있게 돼요. 이런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진행한 뒤 저자에게는 학생들의 항의가 들어옵니다. 아니, 베끼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왜 제가 뭔가 바뀐 거죠? 제가 '창의적'이 되었다고요... 하고 말입니다.
자, 이제 필사가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열심히 타이핑을 해보았습니다. 역시 저도 <길 위에서>를 필사했던 사이먼과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머리에서 소용돌이치고, 다른 생각들이 겹쳐지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것 또한 놓치지 않고 괄호를 쳐 두고 그 안에 적어두었습니다. 필사를 안 하고 눈으로만 읽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읽기'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다양한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는 것도 읽는 거고, 비평을 쓰기 위해 소설을 이 잡듯 읽는 것도 읽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필사는 아주아주 느리게 읽기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옮길 때마다 문장을 생각하게 되니, 눈으로 볼 때보다 족히 몇 십배의 시간이 더 걸립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건 분명해요. 더 깊은 몰입과 집중, 그리고 내 안에 다른 지식들과의 연결, 통합, 저장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런 적 있으실 거예요. 눈으로 읽으면서 딴생각할 수 있죠? 입으로 읽으면서도 당최 무슨 내용인지 듣는 사람은 아는데 나는 모르겠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사도 역시 그렇습니다. 타이핑을 하면서도 집중력을 잃고 손만 또각또각 움직이게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필사가 적은 노력으로 집중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긴 합니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제 경험상 그랬습니다.
그럼 다시, 너무 느린 필사의 속도로 언제 이 많은 책을 다 읽나 싶죠. 아주 무서운 이야기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저나 여러분은 세상에 존재하는 책 99.99999%를 못 읽습니다. 비극적이죠? 그러니까 우리 권 수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 보자고요. 그럼 책은 반드시 응답(?)을 줍니다.
오늘의 엉뚱한 독서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아! 한 가지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 필사가 돈이 좀 듭니다. 왜냐면 타이핑할 키보드 욕심이 끝도 없이 생기거든요...
그럼 전 이만 조약돌이 구르는 것 같은 예쁜 소리를 내는 키보드를 고르러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더 핵심에서 벗어난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