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내가 왜 짠하게 느끼는가
보는 내내 마음 아파하면서
'저것은 현실고증이 너무 잘 됐다'
그래서 너무 고자극이라, 한 번에 몰아볼 수 없다.
그렇게 공감하면서 봤다.
그런데 마지막 회까지 보고 며칠이 지난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김부장은 기득권인 것이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부모님 도움 없이 스스로 서울에 자가도 마련할 수 있고
임원까지 바라볼 정도로 고속승진을 해왔다면
그는 이 사회가 줄 수 있는 웬만한 혜택은 다 누린 셈이다.
그런 그가 나빴던 운과,
자신의 도덕관과 양심에 따라 내린 결정때문에
소셜포지션이 한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했다. "짠하다." "불쌍하다..."
그런데 문득
"아니 도대체 누가 누구를 불쌍해하고 있는거지?" 싶었던거다.
학생운동하던 김부장의 세대는 이후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치운동까지 섭렵했다.
운동으로 얻은 도덕적 정당성을 ‘기득권 유지 기술’로 전환한 거의 유일한 세대다.
그들은 이 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통째로 삼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다.
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그런데 이제는 ‘기득권의 얼굴’이 낡은 정치인이나 재벌 회장이 아니라
퇴근 후 술 한 잔 하며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강요하는 김부장님의 얼굴로 바뀐 것이다.
결국 그는 도덕과 양심 사이에서 버텼지만,
그 선택이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그의 추락은 ‘드라마틱’했지만,
그가 추락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많이 씁쓸했다.
뒷맛이 개우치 않은 며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