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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린 Feb 11. 2023

빈 수레는 요란하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건과 함께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요란한 빈 수레' 외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요란한 빈 수레 같은 사람이다. 모든 분야에서 아직 한없이 부족하고, 그렇기에 꽤나 야단스럽다.



가벼워 덜컹거리는


아직 경험이 덜 쌓인 탓에 일을 순탄하게 처리하고 싶어도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가끔은 돌풍에 휘청거리기도, 큰 돌부리를 넘어가는 요령을 몰라 넘어지기도 한다. 안정감을 누리기에는 아직 경험과 관록이 부족하다.


어쩌면 글을 쓰는 과정도 심하게 덜컹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감정과 감상의 시발점을 찾기 위해 생각을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논리가 머릿속에서 엉켜 괴로워하기도, 쓰던 소재를 놓아버리기도 일수다.



요란히 소문내는


일을 조용히 처리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이들도 있으나, 내게는 혼자서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꽤나 어렵다. 그래서 타인의 힘을 빌려 본다. 목표를 일단 동네방네 소문내고 낯부끄러워지지 않게끔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으면 SNS에 올린다. 이런 걸 올리냐 생각할 정도로 사소한 목표도, 보여주기에 어딘가 민망할 정도의 사소한 성과도 기록해둔다. 남들에게 요란해 보일지라도 큰 소리를 쳐 놓아야 스스로 의식할 수 있기에, 제법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요란한 빈 수레는


하지만, 가만히 있는 수레는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수레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수레가 움직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결코 어느 구석에 박혀 있거나 고장 난 수레는 아닐 것이다.


또한 수레가 달그락거린다면 타인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수레는 누군가가 밀고 끌어서도 움직이기에 가는 방향이 맞는 누군가가 잠시 끌어줄 수도 있다. 길을 헤맨다면 스스로 달달 소리를 내어 누군가의 시선을 끈 다음, 현재 헤매고 있으니 방향을 잡아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겠다.





원래 모든 수레는 요란하다. 처음부터 꽉 차 있는 수레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니 말이다.


그래서 빈 수레임을 인정하고 빈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아직 한없이 가벼운 이유는 지금까지 포개어 온 것들이 작을 정도로 아주 거대한 수레이기 때문에, 용량도 포부도 크기 때문이라고 믿어본다.



빈 수레가 요란하면 어떠냐. 앞으로 가득 채우겠다는데.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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