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생활과 윤리 과목을 좋아했다.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인데,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재미있게 읽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과학 잔혹사>라는 제목을 보고 생활과 윤리를 공부하던 때처럼 설렜던 건 아마도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먼저 이 책의 큰 특징은 저자에 있다. 저자 샘 킨은 물리학을 전공하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에 따라 영문학을 추가로 전공했다. 이후 도서관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래서인지 책이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528쪽에 달하는 두꺼운 도서였으나, 샘 킨의 이야기는 마치 '꼬꼬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범죄자의 심리, 범죄가 과학과 의학에 미친 영향, 범죄로 얻어진 과학/의학적 성과의 처분 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과학 잔혹사>에 대한 흥미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의 일부를 소개한다.
니콜라 테슬라는 전기공학의 천재이자 에디슨의 경쟁자였다. (전기차 브랜드의 이름으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다. 테슬라는 바로 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직류' 전기로 승승장구하던 에디슨은 '교류'라는 새로운 전류를 들고나온 테슬라를 아니꼬워한다.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만큼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나온 것이 아닌가.
일명 '네거티브' 전략을 위해 에디슨은 '교류'를 무섭고 위험하고 악랄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에 동물들에게 '교류' 전기 고문을 가하고, 사형을 위한 전기의자도 '교류'로 지정한다. 에디슨은 본인의 잇속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위인으로 칭송받던 이의 이면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에디슨의 이야기 외에도 자기 정당화, 지나친 자부심과 자존심 등 범죄의 동기가 되는 다양한 이유와 이야기가 나온다. 한심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져 있어 매 장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시신 도굴과 살인은 해부학을 위한 재료(당시 범죄자들의 시선에서는 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를 공급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영국은 해부를 금지했는데, 이는 해부를 위한 시신 부족을 야기했다. 정부는 시신 도굴을 암묵적으로 용인했고, 시신을 도굴해 해부학자들에게 넘기는 행위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시신 도굴을 위해 무덤을 팠는데 이미 비어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의 해부학자 로버트 녹스는 윌리엄 헤어와 윌리엄 버크로부터 시신을 받았다. 헤어와 버크는 돈이 필요했기에, 녹스는 해부를 위한 신체가 필요했기에, 그들은 비윤리적인 거래를 시작했다. 헤어와 버크는 돈을 벌기 위해 살인을 했다. 처음에는 죽기 직전의 노인을 '위한다는' 합리화에 살인을 시작했고, 이후에는 살인을 위해 타깃에게 접근하는 등 점차 과감하게 살인을 저질렀다.
녹스는 해부학자였기에 시체가 살인의 피해자였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인을 방조하며 살인에 기여했다. 사람을 연구하기 위해 살인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모순적이었다. 인류를 재료로 과학과 의학의 성장에 기여하는 모순적인 이야기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윤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체온증의 사람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담요로 몸을 꽁꽁 감싸 서서히 따뜻해지게 해야 할까, 아니면 뜨거운 물에 담가야 할까? 정답은 후자이다. 그리고 이 답은 나치의 생체실험을 통해 얻어졌다. 그렇다면 나치의 비윤리적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는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폐기해야 할까?
일부는 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곧 피해자의 희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행위라고 본다. 일부는 데이터를 사용하는 행위가 곧 잔학 행위를 눈감아주는 행위라고 본다. 형사 재판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증거를 채택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 잔혹사>를 따라가다 보면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학자들은 왜 범죄를 저질렀을까? 비윤리적으로 얻어져 현재까지 사용되는 데이터는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지성일까, 혹은 인성일까? 과학의 이면은 끊임없이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정의란 무엇인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 윤리와 지식에 관한 도서를 즐기거나 <풀어파일러>,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등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즐긴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과학과 의학 성장의 이면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샘 킨의 <과학 잔혹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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