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된 육신을 절약모드로 전환하여 간신히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눕는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기력이 쇠하여 10시를 넘기기 힘들다니. (왕년에 신명 나게 놀아대고 밤이슬을 맞으며 귀가하던 아, 그리운 청춘이여. 에비야 나는 이제 놀 힘이 없어서 놀 수가 없단다.) 신데렐라도 12시의 기적이 허락되었건만, 이 저질 체력은 애들을 재우고서야 허락되는 나의 오롯한 자유시간을 그렇게 앗아갔다.
나는 아홉수를 탔던 사람인 것 같다. 십 대의 아홉수에는 수능을 보란 듯이 말아먹었었고, 스물의 아홉수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첫 아이를 낳아 170센티-49킬로의 소녀시대 몸으로 그저 집에 칩거하며(왜 그랬니) 눈부신 좋은 날들을 그냥저냥 살았었다. (무엇이 그리 힘이 들었는지 밥 한 끼 챙겨 먹는 걸로도 힘들어 절절맸던... 육아의 늪에서 허덕이던 시절.)
꽤 봐줄만했던(믿거나 말거나) 모폴로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나의 눈부신 청춘과 바꿔버린 토끼 같은 두 녀석을 보며, '그래, 이걸로 되었다. 너희가 있으니 되었다.' 심심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전하며 눈가에 미백크림을 문질문질 덕지덕지 바른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이 눈치 없는 기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기억해달라 미친 존재감을 뿜어대고 있다. 사는 게 고단한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던 진실의 미간주름도 덩달아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더 깊어져있는 미간주름이 회복되는 시간도 늦어지니 삶이 더 퍽퍽하게만 느껴진다. (보톡스를 할 용기 없는 인간, 미간주름패치를 붙여본다. )
이거, 저거, 그거, 그거,,그거... 입 밖으로 꺼내야 하는 말들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이그저들이 약 올리듯 뇌리에서 맴돈다. 짱구를 굴리고 굴려 머릿속에 맴맴 돌던 그 단어들을 마주했을 땐 세상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기억력도 쇠했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 했던가, 아이 둘을 낳느라 두 번의 전신마취를 한 덕일까. 예정보다 일찍이 신의 선물이 배송되었고, 준비 없이 선물을 받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이 치사량이라 3시 이후에는 카페인 금지. 하루 두 잔의 커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봄처녀 마냥 설레는 밤을 보내던, 카페인에 정직한 아줌마는 하루 세, 네 잔의 커피에도 새나라의 어린이마냥 열 시를 못 버티고 꿈나라로 가버리는 저질 체력이 되어 있다. 악으로 깡으로, 어찌 되었건 버텨낼 수 있었던 시간들이 이 저질체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쳇바퀴 돌듯 하루가 시작되고 저무는 매일들 사이,
반갑지 않은 우울감이 다시 찾아왔다.
"달님아, 나는 요즘 달리면서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고, 이제 앞으로 남은 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아, 오빠는 괜찮구나. 나는 요즘 가끔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2022년 마흔이로 산 남편은 행복하다 했고, 내일모레 마흔이가 되는 나는 가끔 불행하다 했다.
6년 열애의 종지부를 결혼으로 다시 시작한 11년 차 부부의 동상이몽.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살 부비며 살고 있는 남편에게 나의 불행을 고백하곤 이내 미안해졌다.
전반적인 삶의 요소들을 되짚어 보았을 때,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내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기도 하고, 감사함을 기도하는 순간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의 불행을 알아차린다면, 혹자는 배 부른 고민이구나, 할 수도 있다. 나의 남편이 그리 말했던 것처럼. ) 그럼에도 내 전반적인 삶의 무드가 행복과 불행의 한 끗차이에서 불행 쪽으로 자꾸만 기우는 것은, 행복을 갈구하는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괜찮다고 생각해도 될 날들에 괜찮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른이 되었고,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꿈 많던 소녀는 어느새 덤덤줌마가 되어 있다.
실은 오래도록 괜찮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괜찮지 않다는 것도 모른 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의 기민함은 어쩌면 괜찮지 않음을 알았겠지만, 애써 덤덤하다는 것으로 이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던 것도 같다. 괜찮지 않더라도 달리 방도가 없으니, 나의 마음에 대해 애써 모르는 척하며, 덤덤하게-담담하게 별일 없이 살았다. (이따금씩 엄마의 감정변화를 캐치하는 다정한 내 새끼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쉽사리 입을 뗄 수 없다. 엄마니까. 내 자식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한 감정들이, 엄마에게도 있으니까.)
그렇게 내 안에 감당되지 않는 감정들과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뒤엉켜 산을 이루었다.
아홉수로 불행을 퉁치고 새로이 시작하고 싶어졌다. 더 늦기 전에.
(아홉수를 핑계 삼아서라도 떨쳐내고 싶은 이 지긋지긋한 우울감. 내 30대를 잠식했던, 우울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