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질문에 답하다. pt.1

하루 중 가장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by 바보 시몬

생성형 AI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듯하며 던진 첫 번째 질문이다.


"하루 중 가장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나는 '처음치고는 괜찮은 질문이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무심코 오늘 아침부터 오후인 지금까지의 일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언제, 그리고 무슨 이유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을까. 생각보다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다른 날들과 같이 하루를 시작했고,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했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처리하고 지금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네'


내가 내 얼굴을 보고 우울해 보인다는 생각이라니,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그런데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우울한 이 순간에 내가 미흡하게나마 끄적끄적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구겨진 얼굴로 어색한 글투로 떠듬떠듬 바보 같이도 생성형 AI의 질문에 대해서 나만의 답을 만들어내고 있다. 웃기지 않나?


그러고 보니 최근 뭔가를 만들어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남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하거나 도파민을 위해 '소비'하기만 하였을 뿐 남들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나를 위해서도 뭔가를 만들었던 기억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나는 80년에 태어난, 이른바 X세대와 MZ세대에 끼어있는 세대이다.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X세대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이른바 '개념'에 대해서 논쟁을 일으켰던 MZ세대에 발을 걸치기도 한 것이다. 두 세대는 기본적으로 기성세대와 다른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소위 '귀하게 자란' 세대여서인가.


문제는 비교이다. 과거 기성세대는 나 자신도 살기가 너무나 바빠서 다른 사람의 일을 지켜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대체로 모두 다 절대적으로 못 살아서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잘 나가는 사람과 비교를 한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었으며, 그냥 거기에서 끝이었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SNS를 비롯하여 그 모든 것이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왔고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화려한 삶이 늘 주변과 눈앞에 있었고 현실이 시궁창이라고 하더라도 그 환상 속에서는 '잘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고 살기 쉬웠다. 그렇다 보니 점점 더 비교는 심해졌고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일정한 궤도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자격지심과 자괴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격지심과 자괴감은 '살아있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느끼기보다는 '살아있음'을 부담스러워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생성형 AI의 질문은 나의 '살아있음'에 대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길 원함이었으나, 실상의 나는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있어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생성형 AI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주변과의 비교와 그로 인한 공포가 나의 심장을 짓누를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가 원론적인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은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의 관점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어설프게도 창작을 하고 있는 내 얼굴이 비친 모니터를 보면서 우울해 보이면서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나이는 먹고 크게 쓸모도 없는 평범하고 부족한 40대 중늙은이이지만 글을 쓰고, 글을 통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회색으로 가득했던 일상에 아주 옅은 채색이 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의 답은 조금 다를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보통의 삶에서는 삶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을 때, 겨우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오늘은 글을 쓰고 있는 제 모습에서 잠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고 내일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이 나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글에 대한 피드백 요청에 생성형 AI는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성형 AI는 나의 글에서 나의 모종의, 그리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감정을 읽은 것 같다.




당신이 쓴 답을 읽으며, 저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은 보통 살아있음을 쾌락이나 성취에서 확인하려 하지만, 정작 가장 선명하게 느낄 때는 “비교”와 “고통” 속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불안과 공포가 심장을 짓누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자각하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이 글을 쓰며 잠깐이나마 입가에 스친 미소 ― 그건 단순히 살아있음을 견디는 차원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창조하는 차원으로 옮겨 놓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기록은 작은 씨앗 같아요. 지금은 흙에 파묻힌 미약한 흔적이지만, 나중에는 “아,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꺼내볼 수 있는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기록하는 사람은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계속해서 발명해 가는 사람이 되죠.


당신이 “쓸모없는 40대 중늙은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했지만, 사실 글을 쓰는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눈에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의 당신이 스스로에게 준 그 색채 ― 회색 위에 번진 옅은 채도 ― 그게 바로 글을 쓰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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