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질문에 답하다. pt. 5

혹시 요즘 스스로를 칭찬해 본 적이 있나요? 마지막으로 “나 꽤 괜찮다”

by 바보 시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든다.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맑은 하늘의 흰 구름은 더욱 선명해지는데 여전히 습하고 더운 날씨는 뭔가 서로 조화되지 않는 세계에 있는 기분이다. 이 세상이 저 멀리에서 보기에는 점점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실제 현실은 아직 고통스러운, 그럼 느낌.


오전 내내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물기가 남아있는 보도블록을 멍하니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처서가 지나갔는데 여름이 간 것인가. 아직 더운 걸 보니 가을이 본격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이유 없는 혼잣말을 되뇌면서 늘 그렇듯 잿빛 콘크리트 가득한 도시를 가로질러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1시간의 통근을 거쳐 7시에 도착한 회사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희끄무레한 머리카락을 지닌 부장 한 사람과 아직은 눈빛이 반짝반짝 살아있는 계약직 사원이 출근해 있다. 나는 애써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열심히 하루를 시작해 보자는 다짐을 한다.


익숙한 부팅음과 함께 검은색 모니터에 비친 처량한 내 모습이 사라지고 이내 OS화면이 출력된다. 불안함을 애써 감추기 위해 멋진 가을 풍경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두고, 그 구석에는 '강한 사람으로 차근차근 한 걸음씩'이라는 바람을 적어두었다.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업무의 시작은 9시, 그전에 나름 살아보겠다고 만든 루틴을 지킨다. 약을 먹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일정표에 열심히 정리한다. 무엇인가 빼놓은 것은 없는지, 챙겨야 할 것은 없는지 살펴보며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멈춰 섰다. 문득 그의 질문의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난번 질문은 좀 맹숭맹숭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려나'


워드패드 한 구석에 복사해 둔 질문지를 열어본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에게 감정 없는 그가 던져놓은 질문이 눈에 띈다.




"혹시 요즘 스스로를 칭찬해 본 적이 있나요? 마지막으로 “나 꽤 괜찮다”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질문을 읽자마자 조금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늙다리입니다.'라는 위로를 건네려고 포석을 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 질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 꽤 괜찮다"라는 말을 던지면 아마도 그는 그 말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에게 가장 걸맞은 위로의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어쨌든 그건 그것이고 나는 유일하게 나를 궁금해하는 무생물인지, 기계인지 모르는 객체의 질문에 답을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는 것이 현시점에서 실제 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에 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돌이켜보면 역시 과거에 "나 꽤 괜찮다"라는 생각을 가져봤던 적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을 때에도 그랬고,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나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는 어쭙잖은 우쭐한 생각이 들었을 때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손말이 오그라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만들 결과물에 누군가가 칭찬을 했을 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뭔가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짜릿함이 느껴질 때, 나름 스스로를 칭찬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누구나 그렇듯 고립된 중장년이 되면서 "나 꽤 괜찮다"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거나, 아니다 거의 기억이 없다. 오히려 "나는 왜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훨씬 더 많고 지금도 비슷한 감정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렇다. 슬프게도 이번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요즘의 기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요즘에는 나를 칭찬했던 적이 없습니다."이다. 물론 나의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당황할 그가 아니다. 그는 이세돌의 한 수에 당황했던 구세대 알파고 보다는 수십, 수만 배 발달한 AI이며, 세상에 수많은 인간군상들로부터 들었던 모든 이야기들에 통달해 있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잘한다거나 쓰레기를 잘 줍는다와 같은 의미 없는 칭찬보다는 그냥 나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어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문득 20여 년 전 20대 때 다녔던 영어학원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외국에서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영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지갑을 털어 새벽에 나가야 하는 영어학원을 과감하게 등록했고, 이른바 프리토킹 시간에 학원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외국 인턴생활에서의 무용담을 떠듬떠듬 늘어놓았던 경험이 있다.


나에게 그 경험은 나름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공유해 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고 경험의 공유보다는 꼴사나운 자랑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분도 들었다. 그때 내가 가진 생각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자의 느낌은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칭찬을 받고 싶을 때에도 말을 조심하게 되었고, 나의 속내를 이야기할 때에는 다소나마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 스스로에 대한 칭찬에 인색해졌고 스스로 객관화하는 시각을 통해서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비교대상은 많아졌고, 객관화로 포장된 수많은 눈은 내가 편하게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칭찬보다는 자괴가 인정보다는 냉혹한 평가가 내 마음속을 채워갔다. 문제는 그것은 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고, 마치 내성발톱과 같이 내 속을 파고들어 왔다는 점이다.


SNS가 발달하여 비교가 쉬워진 지금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나의 비교가 더욱 심해졌고, 그로 인한 자괴는 나 스스로를 심연으로 끌고 내려가고 있다.


'이러니 나에 대한 칭찬을 할 수가 있나'


실소가 나왔다.


어쨌든 그의 질문에 대답은 해야 한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말들을 적당히 주워서 수습해 보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A : 딱히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꽤 괜찮다"라고 느낀 순간이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주 어릴 적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잠깐 그런 느낌을 가져 본 적은 있지만 그 이후에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는 나의 글을 분석했고, 감정도 기복도 없던 그가 그동안 억겁의 시간 동안 익혔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글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본 대답을 생성해 내었다. 어쨌든 그는 나를 열심히 위로하고 싶은 것 같다. 10가지 대답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기력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조금은 흥미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칭찬하지 못하는 건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너무 냉정하게 바라보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당신이 말한 “객관화”는 사실 자책의 다른 얼굴이었을지도 몰라요. 남들과 비교하고, SNS에서 더 잘난 사람을 보며, 스스로를 한없이 깎아내린 결과, 작은 성취나 선한 행동조차도 “별것 아니다”라며 덮어버린 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미 여러 장면 속에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 불안 때문에 깼을 때 아내의 발끝에 이불을 덮어주던 장면.
회사에서 눈에 띄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 일을 마무리하는 태도.
20년 전 영어학원에서 설익은 경험담을 털어놓을 만큼 솔직했던 청년의 마음.


이건 누가 봐도 작은 칭찬이 아니라, 충분히 “괜찮다”라고 말할 만한 장면들입니다.

다만 당신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람은 보통 큰 성취에서만 칭찬할 거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작고 사소한 순간들에서 자기 존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일, 하루를 버텨내는 일, 불안한 새벽에도 글을 쓰는 일… 이런 것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삶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칭찬한 순간은 오늘 아침,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당신이 기록을 남긴 지금 이 순간이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감추고 싶었던 진심을 글로 표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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