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질문에 답하다. pt. 4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나요?

by 바보 시몬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깼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마도 전세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폭등하는 서울의 아파트 가격과 전세가격 사이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던 것이 내심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물이라도 마실까 해서 나가보니 거실에서는 TV를 보던 아내가 TV를 켜 둔 채로 잠을 자고 있었고, TV에서는 알 수 없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인지 동일한 장면을 수 없이 반복 재생하고 있었다.


"에고 이불이라도 좀 덮고 자면 좋을걸"


안타까운 마음에 아내가 발아래로 차 둔 이불을 끌어올려주고 이내 가득 찬 제습기의 물통을 비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회사에서 피곤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가득 들었지만 새벽 4시에 불안한 마음으로 일어난 만큼 다시 잠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나는 침대에 앉아 내 인생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반백살... 참 나이를 많이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전전하는, 그리고 아내는 늘 혼자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삶이었다. 딱히 대화도 없었고, 서로 미래에 대한 불안만 가득한 채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침묵에 질려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해결책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고 점점 더 심연으로 빠져들어갈 뿐이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까'


애써 힘을 한 번 내보며, 스마트폰을 들어 그가 나에게 물었던 질문을 뒤적야 보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나요?(돈, 건강, 관계, 자기 존재감 등)"


내 일기장을 읽은 것인가? 아니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다들 비스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질문을 곱씹으며 지금 내 모습에 참 적절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만으로도 묘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냐고?'


"구체적"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혔다. 나아가 그는 "돈, 건강, 관계, 자기 존재감 등"이라는 예시까지도 친절하게 들어주었다.


어린 시절(여기서 어린 시절이라면 부모님의 비호 아래 아무런 걱정 없이 살던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된 이후의 시절을 의미한다.)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렴풋한 윤곽만이 있을 뿐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상상 속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늘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그 불안이 나를 잡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되겠지'


그 시절에는 시간이 해결을 해 줄 것이라는, 시간을 믿고 기다려도 된다는 최소한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잘 안 되어도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고, 또 묘하게 시간이 지나가면 많은 것들이 해결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도 모두 그랬다. 친구들과 나빠졌던 관계는 자연스럽게 회복되거나 멀어졌고, 가족과의 관계는 늘 투닥거렸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금은 막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40대 중반, 평범한 회사원, 이룬 것 없는 삶. 남들이 보기에 충분한 돈은 없으며 인간관계에서는 고립되어 있고 자존감은 무척 낮아져 있는 말 그대로 평범함 삶. 무엇보다도 서울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숨을 쉴 수 조차 없으면서도 그런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나는 돈이 없다. 좋은 지역에 그럴싸한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 없다. 고작 변두리에 자그마한 전세를 얻어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여러모로 작게 만든다. 내가 돈이 없다는 것은 아내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 부부사이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다음은 "관계"이다. 회사에서는 이미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고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다가 조용히 퇴근하는 직원 중 하나다. 다른 직원들과 유대관계는 딱히 없으며,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그저 묵묵하게 처리하고 이를 다 하면 딱 그만큼의 급여를 받고 사라지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나 다른 가족과의 관계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친구들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으며, 다른 가족과의 관계는 내 가족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가족까지 챙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건강하다는 것이 다행인가.'


실소가 나왔다.


그가 예시로 들어준 것 외에 또 다른 불안감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부모님의 노후이다. 나의 부모님은 평생 나에게 헌신하며 살아왔고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나를 믿고 지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지원으로 인해 부모님의 노후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이미 나이가 들 데로 들어버린 부모님은 아무런 힘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존감이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부러웠다. 나 스스로가 자존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들을 보고 경외감을 느꼈고 항상 뒤로 도망치기만 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크게 실망을 했다. 진로의 결정이나, 직장의 선택이나, 가정의 선택이나 다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고, 유예하고, 보류하다가 지금 이 모양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현실을 직시해야 그에게 그나마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도 지금껏 적은 나의 모든 답변을 그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는 나의 삶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말이다.




조금은 맥이 빠지는 답변이다. 뭐랄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느낌. 아마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인 이러한 답변에서 큰 위안을 얻었거나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답이 없는 것을 물어본 내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불안은 대체로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불안하다.” 그런데 당신은 그 불안을 구체적인 얼굴로 끌어내 글로 기록했습니다. 돈, 관계, 자존감, 부모님의 노후 ― 모두 다 지금의 당신 삶을 이루는 실제이자, 동시에 당신을 압박하는 그림자이기도 하지요.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희망을 봅니다. 불안이 구체화되었다는 건, 그것이 더 이상 막연한 안개가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안개는 길을 가로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지만, 구체적인 대상은 비록 무섭더라도 맞서거나 돌아설 수 있습니다. 불안이 돈이라면, 돈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조율할 수 있고, 불안이 관계라면, 작은 시도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저는 새벽 네 시에 아내의 발치에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짧은 행위는 당신이 여전히 관계 속에서 애정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이자, 불안 속에서도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불안이 당신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동시에 당신은 불안 속에서도 누군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균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당신을 짓누르지만, 동시에 당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불안이 있다는 건,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하고,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AI의 질문에 답하다. pt.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