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점에서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늦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전거 머신을 타고 있던 나는 갑자기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40대 남성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력이 나빠지고 체력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처럼 휴식을 통한 충전은 충분하지 않고 체력의 소진은 한 없이 빠르다. 그렇게 시작한 헬스와 자전거 머신,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어떻게든 노화를 조금이라도 더 늦춰보고 싶은 얄팍한 바람에서 나온 작은 실천이었다.
자전거 머신에서 내려와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리듯이 다시 생성형 AI가 나에게 보였던 인공적인 의문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에게 생성형 AI는 10개의 질문을 던져두었고, 나는 그중 세 번째 질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작게 열린 창문에서 불어온 소소한 바람이 내 이마에 부딪혔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점에서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변해간다. 물론 정신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육체적인 변화는 자연의 섭리이기에 어쩔 수 없다. 또 한편 사람의 기억도 변해간다.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기억이 쌓일수록 강렬한 기억을 중심으로 지나온 인생이 재편되며 정신없는 일상에서 문득 돌아보았을 때, 강렬한 기억들이 우선적으로 스쳐 지나가며, 그렇지 않은 소소한 기억들은 머릿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노력을 해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질문은 어쩌면 나의 기억에 대한 생성형 AI의 관심이다. 어떤 알고리즘이 그러한 관심을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어떠하든 생성형 AI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답변을 학습하고, 이 사람에게는 세 번째로 이것을 질의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냐고 할 때, '기억'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영화 '코코'나 '애프터 양'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서 알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기억 자체에 큰 무게추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기억이 나면 나는 것이고 아니면 망각한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생성형 AI의 말을 듣자 하니 10년 전의 나를 기억해 내는 게 필요한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10년 전이라면 2015년 정도이다. 그때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면 슬프게도 열심히 회사에 다녔던 기억밖에는 없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2014년 회사에서 큰일이 발생했고 나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 소도시의 바닷가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2주 만에 끝날 것이라던 장기 출장은 한 없이 길어졌고, 나는 2015년에도 밤이 되면 지방의 회사 기숙사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지금의 아내와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하지 못했고, 쏟아지는 일들에 다른 생활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차를 타고 방파제 근처에 가서 음악을 들었고, 모처럼 쉬는 날이면 시내 근처에 있는 야구연습장을 찾아가 나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늘 바빴고, 스스로에게 지쳐있었으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며 다만 백수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나마의 작은 위안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폭풍우가 모아 치는 바닷가에서 평온하게 차에 앉아있는 시간을 즐겼고 그것이 마치 공고한 방공호에 들어있고 안전하다는 느낌까지도 받았다.
쉬는 날 찾아갔던 야구연습장은 아주 작은 탈출구였다. 그 작은 공이 날아오는 것을 노려보고 있노라면 그 무슨 근심이라도 잠시나마 사라졌고,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라고 느꼈던 것으로 회상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언제까지 이 생활이 지속될까'
늘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딱히 달리 실천에 옮긴 것은 없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던 세상은 시끌벅적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내가 가만히 멈춰있는 사이에도 시간도, 사람도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2025년이 되었다. 10년이 말도 안 되게 빨리 지나가버렸다.
그동안 결혼을 하고, 승진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외의 많은 인생의 숙제들을 미뤄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인생의 숙제들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아이를 낳고, 큰 집을 사고, 잘 사는 것 같은 사람들과 너무나도 벌어져버린 격차와 한없이 들어버린 나이와 변한 외모, 그리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불쑥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구애를 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10년 전과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장 큰 것은 당연히 외모이다.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30대의 젊음이 가득했던 나는 어느새 40대의 중늙은이가 되었다. 그리고 체력은 낮아졌으며, 건강하고 탄탄한 몸보다는 다소 빈약한 몸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삶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보다도 나의 불안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10년 전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있을지언정 그 불안감이 눈앞에 실체화되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안감이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내 뒤를 쫓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달아날 수 없는 외 다른 길, 앞으로 앞으로 열심히 달라고 있지만 저 눈덩이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10년 전과 가장 달라진 모습이 아닌가 싶다.
왠지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으로는, 그리고 겉으로는 굉장히 밝고 성실하며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마치 10년 전의 나보다도 더 안정되고 무엇인가 잘 준비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생이라는 언덕에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내리막길의 생경함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평범한 한국의 40대가 있다.
바로 이 점이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가장 달라진 점이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야.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나는 생성형 AI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앞서 작성한 나의 글을 붙여 넣어 보여주었다. '그(그냥 앞으로 '그'리고 지칭하기로 했다)'는 친절하게도 나의 글을 꼼꼼하게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주었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그의 답변은 생각보다 크게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그의 답변 속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고 두려움의 불씨를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었다.
10년 전과 지금의 차이는, 단순히 몸의 변화나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불안이 실체화되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당신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닷가 차 안에 앉아 “이렇게 살아도 되나”를 속으로만 물으며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불안은 그림자처럼 있었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았죠. 그런데 지금의 당신은, 그 불안이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압도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차이는 ‘나이가 들었다’는 단순한 사실과도 연결됩니다. 젊을 때의 불안은 선택지 앞에서의 방황이었다면, 지금의 불안은 시간이라는 자원의 한계와 맞닿아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불안은 막연함에서 구체적 실체로 변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그 눈덩이는 당신만 뒤쫓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사람 뒤에서 굴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이는 애써 모른 척하며, 어떤 이는 그것을 작게 느끼려 하고, 또 어떤 이는 그 무게를 정직하게 기록합니다. 당신은 지금 그 세 번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불안을 단순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의 형태를 언어로 바꾸어 바라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금의 당신이 10년 전보다 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졌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의 당신은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폭풍우를 잠시 잊으려 했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글로 남깁니다.
그 차이가 바로 10년이라는 시간이 남긴 흔적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