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나무
지난 주말 드디어 '아이와 함께' 버킷리스트에 있던 한가지를 이뤘다.
바로 '포토맥 강변 자전거 타기'
나의 최애 드라이브 코스가 바로 포토맥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진 '조지 워싱턴 미모리얼 파크웨이'인데, 남쪽으로 가다보면 자전거길도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 미모리얼 파크웨이는 내가 DC를 오갈 때 항상 이용하는 강변도로인데,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포토맥 강과 강 너머에 있는 예쁜 주택들 그리고 운이 좋아 타이밍이 맞으면 노을진 하늘까지 곁들여져 정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을 운전하며 보자니 제대로 만끽할 수가 없고 최근에는 차선 확장 공사로 1차선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뒷차가 빵빵거리기 때문에 늘 아쉬워하던 참에 자전거길을 발견한 거다. '이거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아이와 함께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며 풍광을 충분히 만끽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좀처럼 틈이 나지 않았다. 가을이 되니 해가 금방 져서 평일 방과후는 불가능하고 주말에나 가능한 상황인데 어떤 날은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어떤 날은 비가 와서, 어떤 날은 장거리 여행 일정 등이 겹쳐서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러다 정말 가을 다 가는 거 아닌가, 갑자기 영하 추위가 몰려와서 야외 자전거는 꿈도 못 꾸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마침 지난 주말 기회가 찾아왔다. 아이 컨디션도 좋고 시간도 여유로웠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점점 거세지는 바람이었는데 그래도 햇볕이 쨍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큰 착각이었다ㅎㅎ) 곧바로 예전부터 미리 점찍어 뒀던 올드타운의 자전거 렌탈 샵으로 향했다.
사실 이 날을 위해서 아이의 자전거도 새로 한 대 사두었다. 렌탈 가격이 꽤 비싼 편이라 한두 번 빌릴 돈이면 저렴한 자전거 새 거 한 대 살 값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탈 자전거만 한 대 빌리러 갔는데 2인용 자전거를 본 아이가 엄마랑 같이 타고 싶단다. 2인용 자전거는 4시간 빌리는데 80달러, all day는 90달러로, 세금 더하면 100달러가 조금 넘었다. 아니 이 가격이면 내 자전거도 새거로 하나 살 수 있는 값인데... 망설여지긴 했지만 아직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데 아주 능숙한 건 아니라 혼자 태우는 게 걱정이 되기도 했고 언제 또 아이와 포토맥 강변을 2인용 자전거 타고 달려보나 싶은 마음에 2인용을 빌리기로 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긴 했지만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포토맥 강, 그리고 윤슬, 노랗고 붉게 물든 강변의 나무들과 그 주변을 노니는 오리들을 바라보는 건 정말이지 힐링이었다. 바로 옆에 레이건 공항이 있어서 거의 5분에 한 대 씩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들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이색적이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하지만 역시 사진은 사진이다. 내가 보고 있는 걸 그대로 담고 싶어서 각도며 WB 등을 이리저리 조정해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내가 언제 또 여기서 자전거를 타며 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부질없는 짓이라도 계속 했다. 사진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 담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봤을 때 이 날 이 느낌이 다시금 내게 찾아오기를 바라며.
바람이 꽤나 부는데도 자녀들을 데리고 강변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벼운 차림을 보니 아마 그 인근에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반려견 산책 나온 이들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난 다른 건 그다지 부럽지 않은데 이런 자연환경만큼은 미국인들이 참 부럽다. 사무실이든 집이든 조금만 가면 나오는 큼직한 공원들, 아니 굳이 공원이 아니더라도 길가의 나무들도 어찌나 크고 무성한지 한여름에도 사실 나무 아래에만 있으면 그늘이 완벽해서 그리 덥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딱히 나무들을 잘 가꾸는 것 같지도 않고 가끔가다 도로를 많이 침범한 나무 가지치기 정도 해주는 모습만 보일 뿐인데 이 나라 나무들은 대체 어떻게 이렇게 쑥쑥 잘 자라나 싶다. 수종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조량이라든지 터의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전에 세종시에 간 적이 있는데, 세종시 조성할 적에 심은 가로수들이 여전히 크게 자라지 못하고 빼빼하다는 지인의 말씀 그리고 실제로도 작고 깡마르고 잎사귀도 듬성듬성했던 그 나무들이 생각난다. 반면 이곳은 집 앞에만 나가도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크고 굵직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서 미국인들을 위한 축복처럼 보인다.
이곳의 하늘도 참 부럽다. 비가 오거나 먹구름으로 흐린 하늘은 있을지언정 매캐한 먼지로 뿌연 하늘은 상상할 수 없다. 최근에는 서울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단 코로나때문이 아니라 먼지때문에라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했던 걸 생각하면 이 나라의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도 큰 축복같다. 고층빌딩이 많지 않다보니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뻥 뚫린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너무너무 부럽다. 한국에 살 때는 하늘 볼 일이 많지도 않지만 굳이 흐리고 매캐한 하늘을, 고층빌딩에 가려 조각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보고픈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어디를 가도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다보니 일부러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파란 하늘에 마치 근두운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조그만 구름조각들이 귀여워서 내 사진첩에는 구름 사진도 많다.
그날도 바람 덕분인지 둥실둥실한 구름들이 빠르게 서쪽으로 향했고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하지만 바람에 맞서 달리는 우리의 2인용 자전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바람때문에 흙가루가 자꾸 눈에 들어가기도 했고 옷 안은 땀으로 흥건한데 코와 볼은 추워서 빨개졌다. 목표해던 지점의 절반도 못 왔는데 아이가 더이상은 못타겠다고 한다. 거금을 들여 all day로 빌렸는데 불과 한 시간밖에 안 탄 상황. 아이가 뒤에서 페달을 밟아주지 않으면 혼자 이 육중한 자전거를 타고 목표지점까지 가는 건 불가능했다. '좀더 힘내지 않으면 다시는 2인용 자전거는 빌리지 않겠다-!' 라고 엄포를 놓으며 독려(?)해 구글맵 상에서는 자전거로 37분 걸린다는 거리를 2시간 걸려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는 바람에 한참 늦어져버린 점심도 허겁지겁 먹고, 뭉친 다리도 좀 풀어준 뒤 귀환길에 올랐다. 올 때와 같은 길이었지만 반대 방향으로 보니 주변 풍경이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눈에도 열심히 담고, 사진에도 열심히 담았다.
이날 자전거로 오간 거리는 도합 15마일. 자전거를 반납하고 렌탈샵을 걸어나오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고 허리 이하는 모두 욱씬거렸다.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집에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타러 가고 싶다. 이번주부터는 이곳도 영하권이라 올해는 더이상 어려울 듯하고 간다면 아마도 내년 봄이 될 듯하다. 새순이 돋아나는 따스한 봄 풍경은 또 어떨지 기대된다. 다만 그때는 자전거는 반드시 각자 타는 것으로! 멋모르고 이번 한 번은 했지만 두 번은 절대 못할 것 같은, 체력 약한 10살 아이와 2인용 자전거타기였기 때문이다. 중간에 진심 우버를 부르고 싶었지만 2인용 자전거가 실릴 만한 차는 없을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는데 다시 해보라면 못할 것 같다. 내년 봄에 또 가려면 동네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태워서 아이의 자전거 실력부터 높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