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간의 유럽 여행 (3) -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투어]
인간의 창조물 앞에서 압도당한 적이 있는가. 처음이었다 이런 경험은. 최후의 심판을 보고도 인간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어났을 때는 이른 시간임에도 밖이 이미 밝았다. 유럽의 낮은 징그러울 정도로 길다. 오늘은 바티칸 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나도 몰랐는데 익스프레스로 투어를 예약했더라. 과거의 나에게 감사해하며 집을 나섰다.
8시 40분 집합. 지하철을 타고 가면 멀지 않은 바티칸. 익스프레스 티켓 덕에 새벽같은 웨이팅은 피할 수 있었다. 우리의 줄은 금방 줄어들었고 다행히 지치지 않은 채로 입장했다. 주위의 기다란 줄에는 한국인 투어가 즐비했다.
받은 티켓에는 아테네 학당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아카이브의 원조 격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시대의 철학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한대 모인 것을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교황님의 최애 그림이어서 아테네 학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티칸 투어의 시작은 바티칸 미술관이다. 첫 시작부터 흥미가 떨어졌다. 종교 예술, 특히 르네상스 이전의 암흑기 시절 미술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도망치는 정신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론 이 지루한 시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만은(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그래도 덕분에 조로라는 화가를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은 뚜렷한 특징이 있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라파엘로의 그림이 등장하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라파엘로의 풍성한 색채는 멀리서봐도 존재감이 상당했다. 라파엘로의 아버지도 화가이셨는데, 그 부자는 안개가 자욱한 마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의 그림은 색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색채를 잘 쓰는 화가 친구에게 보냈고, 덕분에 라파엘로는 원색을 오묘하게 잘 쓰는 화가가 되었다. 그의 붉은색과 파란색은 절묘해서 보고 있으면 황홀해지는 기분이 든다.
멋진 라파엘로의 그림을 지나쳐 다양한 시대의 그림들을 보다가 흥미가 떨어질 때 즈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맛보는 야외의 햇살.
이탈리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천장이 없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된다. 금연구역이 철저한 나라는 이 세상에 우리나라와 일본 뿐일 것이다. 이런 신성한 공간에서도 담배 연기는 자욱하다.
테라스에서 거대한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을 바라보며 두근두근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미술관 밑에 있는 매점에서 초코 크로아상과 마끼아또를 먹으면서 야외의 정취를 한껏 느꼈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아상을 어디에서 사먹어도 다 맛있다. 옆 테이블 할아버지의 오렌지색 컨버스가 무척이나 힙했다.
솔방울 정원을 지나 조각 섹션으로 이동했다. 이른 시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미어터졌다. 좁은 회랑에 사람이 꽉 들어차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라오콘 군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티칸의 3대 조각 중 하나인 이 라오콘 군상은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한 번 쯤은 보았을 것이다. 예언자 라오콘은 트로이의 목마를 보고 불길함을 느껴 이 목마가 트로이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았고, 아테네를 지지하던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뱀에 의해 죽고 만다. 라오콘 군상은 바다뱀에게 붙잡혀 서서히 죽음으로 다가가는 라오콘 부자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겁에 질린 표정과 경직된 근육은 아주 생생하고 노골적이라 헬레니즘 미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라오콘 군상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이게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섬세한 근육 조각을 보면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오콘 군상에는 미켈란젤로와 얽힌 아주 재미난 얘기가 있다. 라오콘 군상이 발견되었을 시기, 조각상의 라오콘의 오른쪽 팔이 없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제각각 원래의 형상을 유추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현재의 팔 모습, 그러니까 구부러진 팔의 모습을 제시했으나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조각에 평생을 바친 미켈란젤로는 근육의 형태 상 이 모양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최후의 심판에서도 예수의 팔을 이렇게 그렸다는 야담도 전해진다.
어느 날, 해변에서 떠내려온 팔 조각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이 팔이 대체 어느 조각에서 떨어진 것일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미켈란젤로의 주장을 생각해낸 사람들이 라오콘 군상에 가져가 맞추어 보았더니 맞았다. 미켈란젤로가 옳았던 것이다.
실내로 들어가 사람들로 꽉 찬 복도를 지났다. 바닥에 당시 제일 귀했던 청금색으로 장식된 타일도 구경하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조각상도 보았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라오콘과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와 함께 바티칸의 3대 조각으로 꼽히는 토르소를 보았다.
창문으로 틈틈이 로마의 전경을 구경하면서 이동하다가 벽화의 방에 다달랐다. 무심코 들어간 어떤 방에서 한 그림을 마주하고, 육성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우와. 바로 티켓 위에 그려진 이 그림. 아테네 학당이었다.
사실 아테네 학당이 벽화였던 것은 몰랐다. 방의 왼쪽 벽에 거대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보자마자 감동의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이 눈에 고였다. 위대하고 멋진 그림 앞에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림의 중심에서 손가락을 위로 가르키며 이데아를 논하는 플라톤과 현실을 탐구하고 자연을 연구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아래로 한 아리스토텔레스. 그 외에 플라톤의 스승이자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삼각형으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 등 다양한 학자들이 한 데 모여 있다. 그림에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화가 본인도 숨어 있다. 아주 재치있는 그림이다.
복도의 양 옆에 걸린 라파엘로의 테피스트리와 마지막의 피카소, 마티스 그림까지 보면 바티칸 미술관에서의 여정은 끝이 난다. 다음의 장소는 숨을 크게 내쉬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가장 떨리는 곳이니까. 바로 시스티나 대성당이다.
시스티나 대성당은 촬영이 금지된다. 오직 두 눈으로 이 위대한 것을 담아야 한다. 빠르게 뛰는 심장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작디작은 성당에 들어섰다. 성당의 남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최후의 심판.
인간의 창조물 앞에서 압도당한 적이 있는가. 처음이었다 이런 경험은. 최후의 심판을 보고도 인간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압도당한다는 건 흔하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너무 대단해서 실감이 나지 않고 어안이 벙벙하다. 맞아, 정말로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느낌이 뭔지 확연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목이 아파도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천장을 보아야 한자. 미켈란젤로는 이 천장화에도 어마어마한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하나 숨어있다. 하나님과 손가락을 맞대어 생명을 가지게 된 아담. 천지창조의 순간이 이 천장에 담겨 있다.
천지 창조는 사실 이 천장화 시리즈 중 한 편일 뿐이다. 미켈란젤로의 손길로 가득한 이 시스티나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어디선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 천재 화가의 위대함을 비로소 느낀다. 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그림은 처음이다. 그는 정말 ‘천재’ 이다.
아침부터의 고된 투어 덕에 마지막 장소인 성 베드로 성당에 이동할 때 즈음에는 진이 다 빠졌다. 밖에서 짧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성당 앞에서 해산했다. 성당 안에서 같은 방을 쓰는 언니를 만나 함께 구경했다.
성 베드로 성당은 교황의 성당답게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 안에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수많은 조각들과 장식들은 아주 디테일했고 세심했다. 모든 것들이 사이즈가 대단했고 정교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앞에 섰다. 성 베드로 성당의 꽃, 피에타.
사실 피에타 앞에 서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너무 멀리 있었다. 조각상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아크릴 판 때문에 감동이 이곳까지 전해지지는 못했다. 아쉬웠다. 듣기로는 얼마 전에 피에타에 테러가 일어날 뻔 해서 취해진 조치라는데, 친구가 엄청난 울림을 받고 왔다고 하여 나 역시 기대했건만. 나 자신에게도 꽤나 실망을 했다.
성 베드로 성당 앞에 있는 성 베드로 광장은 베드로의 열쇠 모양이다. 바티칸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그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하여 올라가고 싶었는데, 길을 잘못드는 바람에 출구로 나와버렸다. 아쉬웠지만 너무 기진맥진한 상태라 미련이 크지는 않았다. 너무 지쳐서 곧 쓰러져도 무방한 상태였다.
바티칸 앞에는 로마 3대 젤라또라고 불리는 올드 브릿지가 있다. 나는 딸기, 바나나, 피스타치오 맛을 골랐다.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직원 청년은 능숙하게 딸기~? 하고 되받아쳤다. 딸기맛은 어제의 지올리띠보다 풍부하고 새콤했다. 이탈리아의 특별한 피스타치오는 입안에서 고소함이 퍼졌고, 바나나는 숙성이 잘 된 바나나를 얼려 한 입 베어 무는 느낌이었다. 달콤한 젤라또가 집에까지 갈 에너지를 보충해주었다.
언니와 헤어지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졌고, 방전된 것 마냥 까무룩 잠이 들었다. 실로 고된 하루였다.
저녁 즈음 다시 일어나 시내로 향했다. 능숙하게 버스에서 내려 산탄젤로 성에 도착한다. 원래 동행을 만나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뒤늦게 받았다. 약 1 시간을 바깥에 서 있어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피곤함이 몰려와 결국 약속을 취소했다. 조금만 이른 답장이 있었다면 이 정도로 지치진 않았을텐데, 내 몸과 정신은 관대하게 배려해 줄 만큼의 에너지가 없었다.
뒤돌아 나보나 광장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떤 중동인에게 ‘니하오’ 소리를 들었다. 잔뜩 심신이 지친 상태에 불쾌한 일까지 겪으니 설움이 터졌다. 길 위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 한국은 밤 시간이었고 토로할 상대가 많이 없었다. 아직 자지 않는 친구가 나를 위로해줬고, 먼저 유럽여행을 다녀온 경험으로 내게 근처의 식당 한 곳을 추천해주었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국인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해산물 파스타 가게였다. 해산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맛있다는 후기가 있던 라자냐와 오늘의 꿀꿀한 기분을 풀기 위해 티라미수까지 시켰다. 길을 지나다니면서 사람들이 홀짝이는 오렌지색 음료가 궁금했는데, 그게 아페롤 스프리츠라는 술이라는 걸 알고 그것도 주문했다.
서버는 정말 친절했다. 친절함을 넘어 굉장히 스윗한 애티튜드를 가진 이였다. 라자냐는 풍미가 진했고, 입맛에 딱 맞았다. 입에서 녹는 라자냐처럼 설움도 단숨에 녹았다. 생각보다 도수가 높은 아페롤 스프리츠는 딱 기분 좋을 정도였다. 환타같은 오렌지향이 있지만 그보다 깊고 진했다. 최고의 음료였다.
곧이어 티라미수가 나왔다. 한 숟갈 뜨자마자 눈이 동그래졌다. 입에서 살살 녹았고, 마스카포네 크림이 정말 부드러웠다. 티라미수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달콤했다. 티라미수의 달콤함처럼 행복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였다. 너무 행복한 얼굴로 티라미수를 비우고, 서버가 그릇을 치우면서 서비스로 달콤한 술 한 잔을 주었다.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로 독했지만 정말 달고 맛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적당한 취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갓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문 앞에서 버스킹 연주를 하고 있었다. 설렘이 가득한 소리였다. 문득 너무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이 뭐 별 건가. 나도 모르게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그들의 악기케이스에 넣었다. 몸이 가벼운 기분이었다.
살랑거리는 발걸음으로 나보나 광장을 걷고, 기념품샵을 둘러보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둠이 내릴 즈음 광장을 벗어나 길가의 젤라또집에서 복분자맛 젤라또를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베리류였는데, 씁쓰름하면서도 밀도가 높은 게 아주 매력적이었다.
감정은 순간이다. 슬프다고 그 슬픔이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니다. 그 빈 틈은 또 다른 행복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음악을 듣고, 달콤한 디저트를 밀어넣으면서. 슬픔이 뭐 별 건가. 행복도 별 거가 아닌데. 입에서 녹아버리는 젤라또 같은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