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일간의 유럽 여행 (4) - 이탈리아 로마
아까 목청을 다해 버스킹을 하던 아저씨가 내게 장미꽃을 건넸다. 오빠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잊지 못할 영화같은 장면이었다.
다시 둘째 날 함께한 동행 언니를 만났다. 사실상 둘째 날 로마의 거의 모든 곳을 둘러본 것과 다름 없었다. 로마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고, 모두 밀집되어 있어 금방 관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내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에 가자고 제안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약 20분, 로마는 교통편이 애매해서 두 다리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종교와 역사의 도시답게 발에 닿는 곳곳이 유적지였다. 여러 성당을 지나치며 도착한 라테라노 성당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로마의 4대 성당 중 하나이고, 로마 가톨릭에서 가장 격이 높은 성당이다. 성 베드로 성당보다 우위에 있는 대단한 곳이다.
너무 거대해서 목이 아플 정도의 이 거대한 성당은 내부는 더 어마어마했다. 성 베드로 성당을 뺨치는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들이 가득했다. 모든 벽과 천장에는 수려한 조각들이 달려 있고 내부가 온통 금빛이었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반포했을 때 세워졌다. 기독교의 시작을 함께 시작한 공간으로서, 이 곳의 지위는 공고하다.
멋지고 웅장한 열주랑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12사도의 거대한 성상이 맞아준다. 그 뒤로는 번쩍번쩍한 제대와 경당들이 있다. 역대 교황들의 무덤도 있고, 후면에는 라테라노 궁전과 이어져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안의 건축물과 장식물들은 모두 빼어났고 화려했으며, 모두 스타일이 달라서 구경하기 좋았다.
생각보다 너무 볼 만했던 성당 덕에 기분이 한층 즐거워졌다. 건너편에도 한 건물이 있었는데, 허름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신성한 기운에 기웃댔다. 그곳은 바로 스칼라 산타였다.
가톨릭 신자라면 모두 와보고 싶어하는 곳. 그 이유는 예수의 핏자국이 있기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며 걸은 계단이 이곳에 있는데, 그것이 예수의 핏자국으로 알려졌고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아 계단 하나하나에 절을 올리며 신앙심을 표한다.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는 이곳에서, 신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느꼈다.
점심은 언니가 이전에 동행했던 동생과, 그 동생이 데려온 새로운 동행과 먹게 되었다. 언니가 근처에 괜찮은 파스타집을 발견했다고 하여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언니가 동행한 동생, 그가 데려온 사진 찍는 띠동갑 오빠와 개발자로 일하신다는 오빠. 총 다섯이서 밥을 먹었다.
샐러드로 오늘의 야채를 고르고, 오늘의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야외 테이블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서 아주 쾌적했다. 새로운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서버 아저씨는 재치있었다.
처음 나온 샐러드는 이게 샐러드인가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브로콜리같은 걸 찐 모양새였는데, 결이 나무껍질처럼 벗겨졌다. 서버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여기에서는 즐겨먹는 야채란다. 맛은 물컹물컹하면서도 살짝 아삭한 요상한 맛이라 조금 먹고 포크를 내려뒀다.
오늘의 파스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리는 다 깔끔하고 맛있었다. 티라미수까지 입에 잘 맞았다. 이번 티라미수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티라미수는 입에 잘 맞은 식당에서 시켜먹는 게 최고라고.
식사 후 언니와 나는 진실의 입에 가기로 했고, 다른 분들도 일정이 없어 동행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대전차 경기장에 내려 짙은 녹음을 구경하고, 진실의 입 앞에 줄을 섰다. 오드리 헵번처럼 진실의 입 안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었다. 진실의 입은 생각보다 정말 컸고, 성당 안에 있는 구조물이었다.
저녁에는 핀초 언덕의 노을을 함께 감상하기로 했다. 테베레 강 근처에서 내렸는데, 예쁜 커플이 애정을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마저 너무 사랑스러웠다. 완벽한 날씨를 즐기며 길을 걷다가, 사진 찍는 오빠가 사진을 찍어줘서 한껏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시내에 꽤나 유명한 젤라또집이 있길래 젤라또를 또 사먹었다. 이번에는 블루베리와 망고를 샀는데, 꽤나 눅진하고 찐득한 맛이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달콤한 게 기분이 좋았다.
바로 옆에 있는 피자 가게가 정말 평이 좋았고, 궁금해서 우리는 오픈하자마자 달려갔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첫 피자였다. 마르게리따와 나폴리탄, 시그니처와 깔조네를 시켰다. 나온 피자의 비주얼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또띠아만큼 도우가 얇았다. 맛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글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옳은 것 같다. 목이 막혀서 계속 환타를 들이켰다. 이탈리아의 환타는 오렌지 함유량이 높아 맛이 더 신선하다고 하다는데, 진짜 그랬다.
알 수 없는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근처의 가게에서 와인 한 병을 샀다. 수다를 떨며 핀초 언덕에 도착하여 와인을 홀짝였다. 달콤한 모스카토가 입에 싹 맴돌고, 모스카토보다 달콤한 하늘색이 점점 하늘을 물들였다. 낭만있는 정취와 다르게, 뒤에서는 빵빵한 락앤롤 버스킹이 귀를 괴롭혔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이어졌고, 우리의 귀는 지치고 말았다.
어둠이 내려 앉자 버스킹도 끝이 났다. 사진 찍는 오빠는 나의 빨간색 원피스를 보더니, 라라랜드 분위기가 나지 않냐며 가로등 밑에서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그 밑에 섰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 목청을 다해 버스킹을 하던 아저씨가 내게 장미꽃을 건넸다. 오빠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잊지 못할 영화같은 장면이었다.
그 버스킹하는 아저씨는 로마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곳저곳 떠돌며 버스킹으로 여비를 마련한다고 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인생에는 길게 남는 순간이었다.
여행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 한 장면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던데. 고작 사일 차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다니. 인생에서 가장 깊게 새겨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