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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의 가깝지만 먼 관계

연락하면 마음이 상하고 안 하면 죄책감이 드는 관계

by B 비

나는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셨고, 집 앞을 지나던 점쟁이 할머니가 늘 “장군이 태어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부모님은 나를 아들로 확신했고, 그 시절엔 성별을 미리 알 수 없던 덕분에 나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남자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죄책감과 쓸쓸함을 안고 자라야 했다. 아빠는 내가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남동생이 태어날 때는 병원이 떠내려가라 환호했다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걸, 누군가는 너무 쉽게 가지는구나.’ 내 노력으로 원하는 걸 가진다면 나를 원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내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씁쓸하게 생각했다.


첫째 언니는 첫째이기에 막내 동생은 남자아이이기에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는 거 같은데 나는 그들보다 두 배를 해도 인정받고 사랑받는 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첫째 언니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없자 부모님은 언니를 예술고등학교에 보낸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도 내가 만약 인문계 시험에 합격해 들어간다면 나를 더 인정해 줄까? 란 생각에 무던히 노력해 입학했지만 내 합격의 기쁨보다는 아빠의 외도가 들통나 추운 겨울 밖에서 두 분이서 싸우다 엄마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고 엄마의 수술과 입원 그리고 퇴원까지 그해 겨울은 유독 더 춥고 외롭고 시렸다.


늘 생각했다 얼른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어야겠다 그리고 성공해서 보란 듯이 살아 가리라 내가 내 부모보다 더 성공하리라. 그래서 간호대학에 입학해 졸업장이 나오기도 전에 취업했고 쉬지 않고 일했다. 간호사의 그 태움의 기간도 너 가나를 한번 태워봐라 내가 태워지나 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고 견뎌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 35살이 되었고 결혼도 했는데 이제 좀 살만하고 살다 보니 마음의 병이 났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부모는 내 인생에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다. 내가 간호사가 된 것도 다 본인들 덕이라며 생일, 명절 때때로 효도를 요구해 왔다. 너희들 키우느라 여행을 못 갔으니 해외여행을 보내줘라 생일 축하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는 말로 효도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 연락하면 그 말을 듣는데 가슴에 세 시큼한 무언가 올라와 어깨부터 심장까지 무엇인가 꾹 누르며 태우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연락을 안 하면 부모를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죄책감이 들었다.


15년간 그 심장이 타들어가는 뭔지 모를 고통을 이겨내며 효도라는 걸 했다. 정말 그토록 원하시던 해외여행도 그리고 이모들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모은 돈으로 보내드리고 누구보다 잘하려고 노력했다. 큰언니는 나에게 착한 아이병 걸린 거 아니냐며 그렇게 하면 나랑 남동생은 뭐가 되냐며 볼맨 소리를 던졌다. 옳은 말이었다 이건 내가 부모에게 더 사랑받고자 나를 쥐어짜며 해낸 일이었다.


그렇게 비고 타버린 심장을 가자고 나는 심리상담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다.

“남에게서 인정을 원하면 끝이 없어요. 당신을 가장 사랑하고, 기쁠 때든 힘들 때든 늘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는 선 듯 답하지 못했다. "없는 거 같은데요."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늘 지켜봐 주는 이를 가지지 못한 것만 같았다. 선생님이 어려운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지금도 함께 있어요. 바로 본인이요. 본인이 원하는 사랑과 인정을 스스로 줄 수 있는데, 왜 남에게서만 받으려 하나요? 더 좋은 걸 가졌는데. 오늘부터 우리 본인을 더 사랑하고 듣고 싶은 말을 하루에 하나씩 해주는 겁니다. 이제부터 내가 나의 부모가 되어주는 거예요."


그렇게 나는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되어 괜찮아, 나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라는 말을 해주며 내 안에서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변화는 시작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나를 먼저 이해하는데 시간을 쓰자는 생각과 부모님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며 조절하며 지내고 있다.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자식새끼 소용없다고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실걸 알지만 이 거리를 두는 일은 나의 인성과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건강한 나를 위한 보호막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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