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건너오면서 주는 상처들
커피를 무의식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있을 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 무릎이 아프다며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그 일과 관련된 전화겠거니 짐작하며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너가 엄마한테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며? 엄마한테서 들었어.”
엄마와의 통화 중에 나왔던 말은 과장이 더해져, 내가 직접 언니에 대해 말한 것처럼 전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의 말로 하지 않고, 늘 누군가의 말인 것처럼 전달하곤 한다. 미움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방식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또 멀어지는 경험도 해봤지만, 중간에서 말을 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관계를 좋게 끝낸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가장 편하고 의지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가 그랬대?”라는 말로 시작하면 분명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사자에게 직접 할게. 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누가 그랬는데’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꼈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자식들끼리 오해만 쌓이고, 결국 서로 안 보게 될 수도 있어. 그게 엄마가 원하는 거야?”
엄마는 자신은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그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불편했고, 꺼림칙했다.
‘앞으로는 엄마와 예전처럼 편하게 말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자라오면서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너희 언니가 그러는데, 너 성적으로는 어느 대학도 못 간대.”
그런 말을 전할 때, 엄마는 그 말이 내게 어떤 상처로 남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말을 전하는 엄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와 통화하고 싶은 내 마음이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기준을 마음속에 세워보려 한다.
형제자매에 대한 평가는 듣지도, 하지도 않겠다는 것. 누군가의 말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이야기에는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겠다는 것. 나는 전달되는 말을 듣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기로 했다.
엄마와의 대화에서도 깊은 감정이나 고민은 꺼내지 않으려 한다. 그런 이야기는 나를 안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는 일상의 안부와 가벼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제는 그렇게 믿어보려 한다.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이 관계를 끊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나를 지키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방식이 꼭 희생이나 인내일 필요는 없다는 것도. 그래서 이제는 ‘이러면 내가 불효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으려 한다. 이것은 멀어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