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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석 Sep 24. 2023

공무원의 고향

누구에게나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다. 무한한 가능성과 마음대로 되는 것만 같았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있어 고향은 어머니와 같다.



                  [동두천시 소요산의 자재암. 전철이 연결되는 소요산 관광지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


경기도의 어느 곳에 나의 고향이 있고 조상의 묘가 있어 1년에 몇 번은 다녀온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와 직장을 다니면서 점차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생활에 바쁘고 가정을 꾸려나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오솔길과 너댓명이 모여야 용기를 내어 모험 삼아 올랐던 고향 뒷산의 당집, 칡줄기가 유난히 무성했던 그 시절 눈에 보이는 산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가슴펴고 야호를 외쳤던 기억들을 망각하곤 한다.


공무원은 대부분 공직을 시작한 기관에서 장기간 근무하게 되지만 때로는 자치단체를 바꾸어 일하기도 한다. 공무원으로서는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2년 동안 경기도 북부지역의 등산코스로 유명한 소요산이 있는 동두천시청에서 근무했다. 공직생활에 3번째 고향이었다. 그리고 떠나온지 2년이 조금 지났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가보고 싶어진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근황이 궁금하다. 요즘이면 어느 지역보다 풍성한 신록이 우거졌을 것이다. 2년간 살았던 집도 눈에 밟히고 일했던 사무실의 모습도 선하게 보인다. 근무 두 번째 해에 폭우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일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재도구를 말리던 하천 둑이며, 일주일을 버티다가 결국 못쓰게 된 장롱을 버리며 안타까워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색바랜 장롱이 값이 비싸서 안타까워 하셨을까. 부피 줄인다고 집게차로 들어올려 부수고 그래도 안되면 게 왕발 같은 집게로 와지끈 부수어 버려야만 했나. 머리 하얀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가신 후에 작업을 했으면 했다.


하루가 멀다고 오전 오후로 만나 뵙던 동네 어른들도 그립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온화한 미소를 띠시며 살아가시던 그분들은 어린 시절 고향의 어른과 같다.


떠나온 후 가끔 오전 11시반 경이면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수제비 시켰으니 건너오시오!’하시는 어른들의 곁말이 그립다. 거리가 250리 길이니 쉽게 갈 수도 없고 차를 타고 달려도 수제비가 불어서 먹을 수 없으니 말이다. 요즘 젊은 층에게는 ’조크‘나 ’게그‘에 해당되는 말이지만 넉넉한 마음에서나 할 수 있는 ’재담‘이 아니겠는가.


조선시대에는 상피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일가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이 같은 곳에 서 벼슬하는 것을 피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이 관계된 송사나 시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는가 보다. 그러나 지방청 공무원에겐 이런 제도가 필요 없다. 지정된 부서, 발령받은 기관에서 법과 제도에 따라 일하면 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처음 발령받아 근무지로 갈 때는 몸만 간다. 흔히 송별식장에서 몸은 비록 우리 부서를 떠나지만 마음만은 두고 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번 직장에 두었던 마음도 새로 옮긴 직장으로 옮아오기 때문에 개인차는 있을 것이지만 몇 개월 이내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일하게 된다.


공무원이 하는 일에 지름길은 없다. 王道(왕도)도 없고 공무원들 쓰는 말로 正答(정답)도 없다. 다양한 경험과 사례, 보다 더 시민의 편에 서는 행정처리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러부서, 기관에서 경험을 쌓아가는 일은 공무원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고 조직발전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고향을 만들러 가는 것이다. 일하는 곳이 나의 직장이요 떠나오면 고향으로 가슴속에 자리잡는 것이다. 공무원 생활 30년중 3년은 10%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2년을 근무하면 7%다. 더구나 공직생활의 중반기이니 더더욱 무게가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곳이며 마음의 평온을 가장 빨리 가져다주는 녹차와도 같은 존재다. 근무하는 부서마다 다시 가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공무원의 고향’으로 만드는 일이야 말로 전보다 힘들어졌다는 공직생활을 보람되게 하고 자신과 조직의 발전에 도움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공무원의 고향도 늘 그 시절 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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