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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석 Sep 26. 2023

훈장택배 아닌 경배를

요즘 공직사회에서 퇴임식을 보기 어렵고 동시에 훈장을 전수하는 행사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관장은 바빠 훈장 전수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부단체장은 기관장의 눈치 보느라 퇴직 간부의 훈장을 전하는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명퇴하고 한두 달,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인사발령으로 그 부서의 서무담당, 주무팀장, 과장이 바뀌고 국장급 인사는 더 자주 발표되므로 막상 훈장을 받으러 근무한 기관이나 부서에 가기에도 쑥스럽다는 것이 퇴직 공무원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퇴직 공무원의 훈장 전수식 참석을 기피하는 것이 먼저인가,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 참석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과 같다.



헌법 제80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했다. 소중한 훈장은 퇴직후 6개월, 1년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니 훈장이 명예가 아니라 서무 담당자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직자로 일한 분들이 헌법정신대로 예우를 다하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훈장을 받도록 몇 가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행정안전부 담당 부서에서는 퇴직 후 한 달 내에 훈장을 전할 수 있는 비법을 개발해 주기 바란다. 지자체 인력을 지원받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라도 조속히 상훈작업을 마무리해 주기 바란다.



둘째, 각 기관에서는 훈장이 기관에 도착하면 88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밝혀줄 성화를 밤새 지켰듯이 해당 기관장실 중앙 테이블에 진열했다가 대통령을 대신해 기관장(도지사, 시장, 군수)이 손수 전달해 주기 바란다. 혹시 기관장이 바쁘면 부단체장에게 전하도록 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중간 간부인 실장과 국장은 이번에 우리 부서에서 훈장을 받는 선배가 있는가 파악해 인근에서 가장 큰 건물, 벽면이 높고 넓은 짜장면 집을 예약하고 가격이 좀 나가는 ‘탕수육, 팔보채, 유산슬’ 세 가지 요리를 주문한 후 다시 한 번 전달식을 열어 줬으면 한다. 벽에는 ‘홍길동 부이사관 훈장’이라 써 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공직 선배 중에 훈장 이야기만 나오면 동네 훈장님처럼 잔소리를 하는 분이 있다. 택배 훈장 전달에 연유한 목마름일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살려준 선비를 살리기 위해 연약한 머리로 철종을 때려 구렁이를 물리친 까마귀처럼 평생 공무원으로 일해온 선배들의 지혜를 다시 받아 쓸 요량으로라도 ‘훈장 택배’가 아니라 ‘훈장 경배’를 강력하게 부탁한다.



더 이상 퇴직 공무원이 얼굴도 모르는 초임 공무원, 서무 담당자의 손에 들려져 아파트 문 앞으로 배달된 훈장이 든 박스를 택배처럼 받는 서글픔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든 공무원이 남은 공직에서의 세월을 보낸 후에는 반드시 명퇴,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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