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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석 Sep 29. 2023

늦은성묘 좋은만남

설에 가지 못한 성묘를 뒤늦게 다녀왔다. 흩어져 사는 집안 어른들과 일찍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늦은 성묘에 지각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출발하느라 행장꾸리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쌍둥이 남매중 아들은 어제저녁에는 가겠노라 호언을 하였으나 늦잠에 취해 포기 직전까지 갔다가 아빠의 성화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제부터 엄마의 응원 아닌 응원으로 동참 의사가 약했던 딸아이는 아들이 가기로 했다고 하자 잠을 털어내고는 스피디하게 준비를 한다.


딸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아들과 똑같이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바지만 입는다. 어쩌다 여자아이들이 많이 입는 옷을 사면 엄마와 실갱이를 하곤 한다. 바로 이점이 강점으로 활용된다. 쌍둥이지만 1분 누나인 관계로 아들이 간다고 하자 일어선 것이다.


세 식구는 베란다에서 아이들을 배웅하는 아내의 인사를 받고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렸다. 30년을 오가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를 연발하는 길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를 처음 구경 올 때 비포장 길을 달리는 붉은색 버스를 타고 관절 마디마디를 뒤흔들며 지나던 길인데 이제는 포장이 잘 되어서 30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전에는 1시간 반은 걸리던 길이다. 신작로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시간은 족히 걸렸기 때문이다.


동네를 들어서니 어렸을 때 살면서 본 것보다 아주 작아진 앞산과 동네 언덕이 반겨주는 듯 마는 듯 늘 그곳에 있었고 마구잡이 개발로 허리가 잘려나간 산은 붉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그 옆 산도 고속도로가 달려 지나가고 있었다.


선산에 도착하니 조상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곳에 계셨다.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 1년을 조상들은 이틀로 사실 것이다. 설에 한번, 추석에 한번 후손들과 짧은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좀 시간이 있는 후손에게는 3일로 사실 것이다. 벌초하러 오는 날이 하루 더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께 성묘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말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만큼도 살지 못하셨지만 나에게 있어 그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특히 어린 시절 슬하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은 지금 사회생활에서도 자주 활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운명이겠지만 아버님이 내 나이 20세까지만 함께 하셨다면 지금쯤 나는 무슨 직종에 종사하고 있을까.


이번 성묘에서 달라진 것은 아이들의 생각이었다. 지난해에는 산소 속에서 할아버지가 주무신다고 하더니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산소를 명함 뒷면에 그려가며 설명하자 이해하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조상님 묘소에 쌓인 낙엽을 긁어내고 나니 참으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분들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얼굴 모르는 조상을 소개하고 성묘를 하는데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안녕히 게세요!”하면서 신식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성묘를 하면서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생각조차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좁은 개천에 샘물이 흐르는데 그 둑에 버들강아지가 봄을 머금고 있었다. 몇 줄기 꺾어서 물병에 담아 아이들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버지 흉내를 내서 말했다. 이틀만 지나면 봄이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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