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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석 May 06. 2024

광교산

광교산은 넓은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아침 버스를 타고 상광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필 것도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산행으로 가슴이 뻐근해지고 이내 등줄기에 온기가 불면서 등산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지난주 눈이 많이 내린 후 일요일 산행을 거슬러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우선 절터를 올라 약수터에서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은 중년층 남녀들의 다채로운 등산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서로 양보하며 줄서있는 그들만의 질서가 흐믓하다. 패트병 8개에 약수를 받아가는 이가 있어도 기다림이 편안하다. 

많은 양의 물을 받기 위해 함께 보내는 휴식시간이 줄을 선 모든 이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좀 늦어면 어쩔 것인가. 빨리 간다고 해서 감독관이 체크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광교산이 좋고 산행이 즐겁고 등산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그러는 중에도 줄 뒤에 선 ‘작은 병 들고온 청년’에게 패트병 2개짜리가 순서를 양보해 주고 시청에서 준비해 둔 현대식 표주박(스텐레스)에 물을 떠서 처음 본 나에게 주는 내 또래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심장의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다시 산행은 시작된다. 흔히 말하는 ‘통신대’와 경기방송안테나를 지난다. 통신대 안테나는 경기방송의 3배는 되겠다. 거미줄처럼 복잡하면서 일정한 질서를 쌓아 올린 철탑은 광교산 정상 부근에서 적당한 키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무슨 전파를 저리도 많이 보내야 하는지 굵은 전선 여러 가닥이 담쟁이 덩굴처럼 하늘을 향해 서있는 통신대 탑을 타고 오른다.

대략 생각해 보니 지금 가는 길은 일반인들의 등산코스를 거스르고 있다. 오는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대로 올라가는 나그네를 나무라지 않는다. 

주변의 나무들도 반대하는 눈치가 없는 것 같다. 서로 양보하면서 체력을 조절하면서 광교산 나무 수 만큼이나 다양한 걸음걸이로 산행은 계속된다.

등반객들의 차림새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요즘 코미디 프로 대사중에 ‘ 뭐 대단한 사람 나왔다고 이러시나!’로 잘나가는 ‘재무이사’가 있다. 방청객들의 환호에 답하는 겸양지심이겠지만 실제로는 방송에서 뜨고 있는 ‘카피’다. 

사실 광교산 등반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진데 그 차림을 보면 지리산을 무박3일로 종주한다든지 어떤이는 남극탐험이라도 갈 정도의 차림이다. 하지만 더러는 서풍 방향은 눈길이고 남쪽방향은 진흙탕인 광교산 산행길을 가볍게 평가하는 이도 있다. 거의 결혼식 참석하는 양복콤비에 구두를 신었으니 말이다.

산행길 간식 중에는 오이가 최고다. 수분을 섭취하는데 좋고 체력에도 보탬이 된다. 그리고 간편하게 가지고 갈 수 있고 적당히 쪼개면 산행친구와 작은 정을 나누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모든 산행이 그러하겠지만 동료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가족단위 등반도 좋을 것이다. 가끔은 애완견을 데리고 가는데 진흙탕을 지나다 보니 애완견은 흙투성이다. 

그 강아지는 아마도 앞에 보이는 길만을 생각하며 주인을 따라갈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형제봉인지 토끼재인지 통신대인지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오직 주인이 가니 주인의 뒷모습과 냄새를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다.

동료가 있는 산행만큼 좋은 것은 단독 등산이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아무 때나 쉴 수 있고 조금 무리해서 가쁜 호흡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화상대가 없는 만큼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형제봉을 지나니 하산길이다. 경기대 쪽에서 지루하게 올라왔던 길을 반대로 내려가는 길은 등산을 마무리하는 길이다. 산을 오르는 근육과 내려가는 근육이 다르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러한지 처음에는 내려 가는데 익숙하지 않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가 잡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청에서 마련해준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잠시 쉬는 것도 광교산 산행의 색다른 맛이다. 그리고 4시간 정도의 산행 후 도착한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또다시 바쁘게 사는 우리의 이웃을 만나는 속세로의 진입순간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무단횡단하고 경쟁도 아닌 등산을 오는 자동차의 크랙션 소리는 왜그리 잦은지.

그래도 다음 주 일요일에 시간을 내서 한번 더 광교산에 오고 싶다. 아직도 끊지 못한 담배만큼 끈질기게 광교산이 매주 나를 불러주기를 기대한다. 2004. 2. 1 오후 <바보 이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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