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를 다녀온 소감을 글로 적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날의 일기장에는 상가에서 본 고인의 모습이나 자녀, 가족, 친지, 그리고 조문오신 분들의 면면을 기억나는대로 기록하고 소감을 첨언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상가에는 조문오신 분들이 가득하고 입구와 빈소를 채우고 있는 대형 조화를 보면서 1개당 10만원이 넘을 것인데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면서 나 자신의 경우에는 몇개가 올 수 있을까 생각해본 바도 여러번입니다.
상가에 진열된 조화를 보면서 늘 돌아보게 되는 바는 같은 날 저승에 들어간 부자 할아버지와 가난한 집 16살 딸 이야기입니다. 저승에 가보니 어린나이에 요절한 딸의 방에는 쌀이 한가득인데 노인의 방에는 짚한단과 돼지죽 한그릇뿐이었다고 합니다.
이생을 살면서 남을 위해 베푼 바가 그대로 복제되어 저승의 그사람의 방에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린딸은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줌, 두줌 쌀을 나눴기에 이자가 붙은 쌀이 한가득 방에 전해졌던 것입니다.
반면 평생을 부자로 산 이 노인은 평생에 두번 남에게 베푼 바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낳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에 마굿간에서 낳으라며 짚 한단을 던져준 일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일찍 탁발을 온 스님에게 아침부터 재수없다며 들고있던 돼지죽을 머리에 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래도 스님에게 던진 것이니 신과 사자는 이를 저승에 배달하였고 그 방에 그대로 전해졌더랍니다.
해서 그간 살면서 상가에 보낸 조의금은 그럭저럭 하겠지만 시가 10만원 상당의 조화나 결혼식장 화환을 보낸 숫자를 대략 기억하는 바이니 그동안 다녀온 상가에서 본 조화수만큼 받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하는 바입니다.
실제로 어느 유력인사의 부친상에서 8줄로 늘어선 조화틈새로 빈소를 찾아갔던 기억이 있고 다른 유명인사의 빙모상에서도 마찬가지로 건물 밖에까지 밀려나온 조화의 물결을 목도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분의 부친상에는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의 국화가 동이나서 인근 2개 시의 물량을 급히 공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고 실제로 방문하였을때 상가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으므로 속으로 하나, 둘 세어 200쯤에서 멈춘바가 있음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과거 정부의 혼식정책, 가족계획, 반상회 등은 성공했나 몰라고 가정의례준칙은 절대로 실패한 정책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됩니다.
고인이나 지인에게 이정도의 조화를 몇개나 보냈나 생각하면서 보낸만큼 조화가 온다해도 빈청이 참으로 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상가는 조의금을 보내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시간을 내서 늦은 밤에라도 방문하여 조문한다는 기본 원칙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1949년생 전유성 님이 2025년 9월25일 별세했습니다. 코미디계의 대부, 개그맨 용어 창시자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28일 영면에 들었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른 연예인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시작했습니다. 평소 자주 들어가는 SNS에 전유성의 별세에 대한 글이 아주아주 많이 올라옵니다.
인터넷 뉴스에서도 상세한 기사가 올라오고 연예인 후배들은 과거, 최근에 있었던 활동이나 만남의 사진과 글을 올려서 그를 추모합니다. 오늘날 사회적 소통의 대세로 자리잡은 YOUTUBE에는 더 많은 자료가 올라옵니다. 방송에서 자주 본 연예인들이 민낮으로 보입니다.
전유성 선생이 부부의 연을 맺게 했다는 최양락, 팽연숙 부부가 보입니다. 나이든 개그맨들이 다수 조문하고 마술사 등 분야가 다른 유명인도 화면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사에서 한가지 흐름을 발견했습니다. 사금을 걸러내는 둥근 쟁반을 물속에서 여러분 같은 방향으로 흔들면 모래는 밖으로 나가고 원뿔형 바닥에 미세하게 쌓이는 아주 작은 사금과같이 고 전유성 선생에 대한 공통적인 평가는 배려와 양보와 여유인가 생각됩니다.
그는 방송작가로 출발하여 연기를 했지만 프로그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고 하는데도 그 프로그램이나 참여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답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필요한 사람에게 흔쾌히 내주는 선배였다고 합니다. 그냥 평범할 수 있는 일인데 재치와 기지로 분위기를 살리고 슬쩍 뒤로 빠지는 예능인, 개그맨이었답니다. 요즘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미국 축구 로스엔젤레스 FC의 손흥민과 부앙카를 연상하게 합니다.
축구단 이적 초기의 경기에서 손흥민은 부앙카의 득점경쟁을 응원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배려를 합니다. 그 결과 부앙카도 여러번 슛팅기회를 손흥민에게 넘깁니다. 얼마전 손흥민의 Hat-trick 경기를 보면 부앙카의 적극적인 도움이 보입니다.
그래서 후배들은 전유성의 영전에 빈소에 구름처럼 몰려오는가 봅니다. 전유성의 도움과 격려를 받은 후배가 여러명인듯 보입니다. 진정으로 90도 인사를 하면서 엉엉 울고있는 요즘 뜨고있는 유명 연예인도 보입니다. 자신의 오늘을 돕고 응원해준 선배 전유성 선배에게 감사와 애도를 표하는 것입니다.
연명치료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짧은 기간 병상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은 조금 먼저 떠나는 것이니 크게 슬퍼말라고 말했답니다. 방송국에서 그를 추모하는 후배들은 그와 함께한 자신들의 개그 장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개그는 슬픔보다는 웃음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니 상가에서 적합할까 생각하겠지만 슬픔을 가슴에 녹이는 후배들의 애틋한 몸짓을 탓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엄용수의 프로그램 광고주 이름대기, 김정열의 숭그리당당 등 깊이있는 슬픔을 표하는 애절한 몸짓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는 젊은시절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카페랄까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후배가 가게에 찾아와 부산에 갈일이 있는데 차비가 없다고 하니 카운터에서 필요한만큼 가져가라 했습니다.
일주일 후 전유성도 부산행사에 참석했는데 후배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왔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그날 카운터에 돈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운영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을 관리하지 못한 행정기관의 일화도 떠오릅니다. 철가방을 모티브로 한 공연장을 지어서 매년 수십만명 관객이 왔다고 하는데 훗날에 실무부서의 무성의한 대처로 전유성 선생이 강원도로 이사를 간 후에 공연장은 폐허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직자의 단견과 공직사회의 일회성 정책이 야기한 안타까운 사건으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다시한번 1인 언론의 보도내용이 YouTube를 통해 보여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공무원은 아마도 퇴직했을 것입니다만 전유성 선생의 별세를 계기로 당시의 행정적 실수를 다시금 되새기고 있을 것입니다.
정치분야이든 경제문화, 역사에서도 오늘 우리 곁을 떠난 전유성 선생의 모습이 투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양보하고 배려하고 서로 돕는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사회를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전유성스러운 리더, 전유성스러운 간부, 전유성스러운 소통으로 우리사회를 "전부가 유머러스한 성지"로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