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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장 3인의 수다

by 이강석

책한권을 편집하여 출간하자는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식사 후반에 나온 말씀이어서 이전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바이므로 앞으로 식사중에는 대화내용중 소재가 되는 쪽으로 힘을 써어 대화의 갈피를 잡아주실 것이고 그 내용을 듣는 이들도 이를 글로 써서 책으로 옮겨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경청할 것이므로 이후에 나오는 스토리는 좀더 급이 높은 내용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식사중에 거론된 이야기를 대략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대화 소재, 주제와 출발점, 마무리 등에 대한 사전 준비에 각별한 노력을 경주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오늘 식당에서는 장시간 자리하였고 단체예약손님이 왔으니 자리를 비워달라는 청탁을 받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평소 30분이내에 식사를 하는 스타일이지만 6분이 모이면 시간은 빨라지고 대화소재는 화수분처럼 늘어갑니다. 그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집 아들 군대2년은 길고 남의집 아들 2년은 짧은듯 여겨진다고 합니다만 대화의 스피드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 아주 크게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공무원으로 40년을 근무한 것이 공통점이고 부인들도 공직을 남편이상으로 잘안다는 특징을 자랑하는 공직자 부부 6인의 모임이 격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부시장에 이른 공직 부부이니 모이면 공무원 이야기입니다만 퇴직날이 멀어질 수록 점차 공무원이 아닌 사회인이 되어가고 후배공무원들은 열정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게되더니 어느해 부터는 공직에 대한 평점이 자꾸만 낮아지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선배 공직자로서 "나때는 그리하자 않았다"는 말에 힘을 주더니 최근에는 아예 도청도 잘못되었고 시청도 틀렸으며 요즘의 주무관들에게는 "나때의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모든 공직사회의 업무처리 방식이나 추진, 의전 등에 있어서 1980년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위험스럽게도 퇴직하더니 "시의원, 도의원의 갑질이 심했다"는 말을 이제서야 설파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식당에 모이면 남자셋, 여성셋이 자리를 잡고 각자의 이야기에 열을 올립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2시간 대화의 속리록을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전달하여 6인의 오찬 대화내용을 소통합니다. 그래서 2번 부부의 남편이 6번째 만남에서 출간을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그냥 식당의 소음, 승용차 CCTV에 한달간 녹음되었다가 재생조차 없이 사라지는 소리로 사라지게 하기에는 아깝다는 의견입니다.


즉시 3인이 동의하고 세분의 부인이 묵인하는 가운데 출간을 위한 이야기의 기본틀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식사중 2시간의 대화이면 300쪽 책한권이 나올 것입니다. 남편들의 이야기로 100쪽, 사모님 3분의 대화를 적으면 200쪽을 넘길 수 있습니다. 최소 150과 150쪽으로 책한권 300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나눈 이야기에다 앞으로는 출간을 위해 의도된 대화를 도모하기로 하였으니 곧바로 빠르게 출간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지역신문에 연애시절을 공개한 분도 있고 출간을 통해서 공직생활중의 소감을 오픈 한 바가 있으며 삶의 현장, 노인회, 이장, 현장 농사꾼으로서의 경험을 담아 적어낸 바가 있으시므로 서둘러 달리면 올 연말에는 어떤 제목의 책한권이 편집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두분은 남성 합창단으로 활동하시면서 현장에서의 감성을 모아둔 글이 서재 한편에 수북하거나 노트북을 뒤지면 여기저기 홀더에서 키보드의 깨알같은 기록을 검생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어 옥석을 가리고 반짝이는 은색돌은 물론 빛나지 않는 투박한 자갈같은 글도 꺼내어 모래주머니에 넣고 썩썩 비벼내면 그 속에 숨겨진 반짝이는 글과 원고를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오늘부터 6분의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형식, 격식, 틀 없이 큰 무대위에 올리고 이리저리 부드럽게 편집하고 각색하여 원고지에 올리면 세상에 없는 새로운 형식과 컨셉을 담은 어떤 책 한권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고 이를 주변에 전해서 선후배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이 모임 작명을 하였는데 <남#성#교#화>라고 했습니다. 남자 3명에 이름에 성자가 들어가는 사모님, 교자가 들어가는 사모님, 화자가 들어가는 사모님이라 해서 작명을 3남3녀가 모두 들어가는 모임 이름입니다. 그럼 책쓰기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시제품으로 <김태한 부시장님의 동네 이장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김태한 부시장 출신 이장님 이야기 ]


과거 중앙정치인이 중학교 교장을 하셔서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만 김태한 부시장은 공직자로 일하고 퇴직하여 동네 이장을 하시는 분입니다. 노인회에서 총무를 하시다가 원로들의 권고에 따라 최근에는 노인회장이 되었습니다. 옆에서 늘 뵙고 함께 일했던 선배인데 노인회장이 되셨다니 당혹스러운 바가 있었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인생칠십고래희, 고희를 맞으셨으니 총무급 노인회장이 되신 것을 자연스러운 세월의 나이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장을 하시다보니 기초생활수급자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청렴한 공직자로 살아온 김태한 부시장으로서는 복지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유형의 속보이는 복지수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재산이 없고 직업도 없어서 살기 힘들다는 분이 굽어지는 최신 스마트폰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몇만원이 없어서 돈을 빌리러 다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람이 노랑머리 염색을 하고 손톱에는 각종 장식을 하고 다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항변아닌 하소연입니다. 기초생활 수급과 화장, 분장, 손톱손질, 머리염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금전 10만원을 빌리러 다닌 분이 손자손녀에게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요즘 배달음식 몇개 주문하면 5~6만원이 넘어가는데 그 돈으로 각종 식재료와 쌀을 사면 수일의 생활비가 되는데 이처럼 쉽게 돈을 쓰면서 돈이 없다고 빌리러 다니는 생활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민들도 외식을 하려면 한달에 몇번 다짐하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한다는 셈치고 카드를 긁는 것인데 조석을 걱정하면서 치장을 하고 배달음식 주문에 마음편한 듯 보이는 분들의 삶의 방식에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시장 출신 학교 운영위원장님 솔선수범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는 <임봉재 부시장님의 솔선수범> 이야기입니다. 손자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위원장이 되었는데 과거 정치적인 위원장이 아니라 실무적이고 현장 중심으로 학교를 돕고 학업을 지원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등교길 교통안전 지킴이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신다고 합니다. 봉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행복의 무대에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등교시간에 깃발을 들고 자녀들의 안전한 등교를돕고 함께한 학부모들과 화합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 더 없이 행복하다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는데도 즐겁고 일도 잘 풀린다 하십니다. 그런 이야기를 식사하면서 꺼내시므로 다른 참석자들도 나름의 봉사할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부시장 출신 이강석의 복지에 대한 견해]


<이강석 부시장이 복지기고문>을 이야기합니다. 복지기고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화성시 복지의 역사와 미래


<옛날 이야기와 세금>


옛날에 어떤 노인이 70세를 부자로 살다가 저승에 가서 배정된 방에 들어가 보니 되지죽 한 그릇이 덩그라니 놓여있으므로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생각하면서 바로 옆방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옆방에는 16세에 요절한 규수가 들어갔는데 쌀과 과일이 수북하게 쌓여있었습니다. 노인으로서는 대단히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을 데리고 온 저승사자를 만나서 따져 물었습니다.


“내가 이승에 살 때에 땅땅거리며 부자로 살았는데 내방에는 달랑 돼지죽 한 그릇뿐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차별이 심한 것 아니요?”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영감님이 어찌 사신 것은 알 길이 없고 이승에 살면서 남에게 베풀어준 공덕내용대로 배정된 물품을 저승방에 가져다 놓을 뿐이오.”


저승사자가 가져온 내역서에는 달랑 2가지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노인이 70년을 살면서 딱 2번 남에게 베푼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른 아침에 돼지에게 죽을 주기위해 대문을 나서서 돼지우리로 가려는데 스님이 탁발을 왔습니다. 독경을 하면서 장시간 탁발을 기다렸지만 노인은 쌀이나 밥을 내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스님이 탁발을 기다리자 들고있던 돼지죽을 스님에게 뿌려대면서 더 이상 내집 대문에 머물지 말고 다른 집으로 가라고 소리쳤습니다. 내용은 불량하지만 누군가에게(스님에게) 무엇인가를(돼지죽을) 건네준(뿌려서 쫓아내려 한)것으로 보고 이를 저승의 노인방에 가져다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옆방의 규수방에 쌀이 한가득 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규수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딸에게 차분하게 일렀습니다. 스님이 탁발을 오시거나 걸인이 구걸을 오는 경우에는 쌀독의 쌀을 표주박에 한가득 퍼서 자루에 부어드려라. 점심이나 저녁에 오시는 경우에는 밥솥에 들어있는 밥을 내어 드려라.


소녀는 집을 보다가 걸인이 오면 밥을 내어주고 스님이 탁발을 오시면 쌀을 퍼 드렸습니다. 5살부터 시작한 이웃을 위한 쌀과 밥을 내어 드린 공덕이 십수년동안 쌓이고 모여서 복리로 늘어났고 그 내용이 그대로 복제되어 저승방으로 전해졌던 것입니다.


저승사자 목록중 다른 하나는 어떤 행인이 잠자리를 청하자 방은 안되니 허름한 창고에서 볏집을 깔고 잠을 자고 가라 했다고 합니다. 이것도 배려라 해서 목록에 올라갔던 것이고 두가지 이외에는 누군가에게 선을 베푼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선진국의 복지제도에는 젊은 시절에 국가에 낸 세금액에 따라서 노후에 지원되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본인이 낸 연금을 바탕으로 지원되는 제도는 있지만 세금을 낸 금액을 기록했다가 노후, 퇴직 후에 지원하는 법령이나 복지시스템은 없는 줄 압니다.


그래서 탈세가 더 많이 자행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금의 일정액, 일정 비율을 노후에, 퇴직후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납세에 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1977년 면사무소 복지>


1977년에 9급 공무원이 되어서 화성군 비봉면사무소에 근무할 당시에 면장님의 직원회의 때 훈시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복지전달체계의 불합리점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보리쌀 받으러 면사무소에 올 때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지 마시도록 하라.”


사회복지제도가 취약했던 당시의 복지는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면사무소에서 보리쌀을 한 두바가지 자루에 퍼담아 드리는 복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6.25전쟁 중 아들을 잃고 홀로 사시는 다른 할머니는 이 보리쌀 마저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실종된 아들의 호적을 삭제하면 자식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서 행방불명된지 27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호적상 아들의 이름을 지우지 못하여 구호대상에 올리지 못한다 했습니다.

사실은 이분에게 보리쌀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서류가 맞지 않으니 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장사도 하고 물려받은 재산도 있는 할머니가 당연한 듯 쌀자루를 받아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면장님의 지적이었습니다.


나이어린 초임 공직자로서는 당시 배급하던 보리쌀, 밀가루가 막연한 복지의 한 분야로 이해하기는 하였지만 이후 40여년 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복지가 체계적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업무도 감당하던 면사무소 사회담당 한 명과 소사 아저씨의 조력으로 운영했던 면사무소는 이제‘행정복지센터’가 되었고 복지직 공무원 다수가 복지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행정파트보다 복지분야의 업무가 늘어났습니다.


<미래의 복지시스템>


이처럼 길지 않은 세월동안에 축적된 대한민국의 복지, 경기도의 복지, 화성시의 복지시스템이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되고 노하우를 축적해서 촘촘한 복지를 구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복지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시 공무원, 읍면동 공무원, 복지단체 임직원, 복지시설의 종사자, 그리고 모든 복지사가 사랑과 정성을 모아야 합니다. 동시에 복지공무원, 복지종사자의 처우 개선에도 정부가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화성시의 복지는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모델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할 준비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화성시에는 전통적인 서부지역의 농촌과 어촌, 산촌이 있고 신흥 신도시 동탄을 비롯해서 태안, 병점이 있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봉담지구가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시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복지는 『맞춤형』이어야 하고 지역별로는 일부 『다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농어촌 주민에게 필요한 복지와 도시와 도농지역의 복지정책은 전달방식이나 집행방향이 다소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농어촌 지역에는 “천원택시”라는 교통복지가 필요하고 도시지역에서는 “급식복지”가 긴요한 것입니다. 국내외의 사례중 도시지역의 우수사례와 농촌지역에서 적응된 복지전략을 발췌하고 화성시의 복지시스템에 융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전문가, 공무원, 의회, 학계가 함께 나서서 추진해야 할 과제입니다.


다음으로 화성시의 복지가 선진국형, 미래형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도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와 기부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을 구별하고 확인하는 방법 중에 가정 정확한 것은 국민이 참여하는 복지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 아니면 낮은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복지는 국민적 참여로 큰 재원이 마련되고 집행된다는 점도 우리나라 국민이 마음에 새겨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부자로 살아도 남을 위해 베풀지 않으면 저승에서 돼지죽 한 그릇을 받아들고 안타까워하는 노인의 입장이 되는 것이고 비록 가난하지만 작은 정성으로 이웃을 위해 베푼 소녀는 쌀이 가득한 방에서 행복해했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화성형 복지는 시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행복의 나라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복지를 통해서 『내삶을 바꾸는 희망화성』을 이룩하는 과제가 화성시, 화성시복지재단, 화성시 의원, 공무원, 그리고 시민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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