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선언후공
출입기자나 특별히 언론인을 만나는 경우 우리 공무원은 늘 '先言後公'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이 먼저요 공무원은 그 다음이라는 뜻으로서 일단 이 세상사 어디에나 적용될 말입니다. 즉 모든 일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고 공무원은 독자 또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언론의 비판과 指導鞭撻(지도편달)을 따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언론에 항상 저자세를 취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업무에 자신이 있다면 언론인과 당당하게 맞서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男性(남성)은 아버지이고 女性(여성)은 어머니이듯이 언론은 評價(평가)이고 행정은 執行(집행)입니다. 행정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고 인가와 허가를 결정하여야 하는 아주 많은 가지 수의 일을 하여야 한다. 반면 언론은 자신들이 하는 사업은 적은 편이고 늘 기사를 통해 행정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공무원을 계도합니다.
그래서 언론인은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면 짚신 장사 아들이 걱정이요 날씨가 청명 쾌청하면 나막신 장사아들 장사가 안 되니 걱정인 것은 부모마음이나 공무원 생각이나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인은 비 오는 날 만난 아들이 나막신이냐 짚신이냐에 따라 그날의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즉 취재를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같은 사안도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弘報戰略(홍보전략)을 펴면 홍보기사가 되고 민원인이나 당사자인 國民(국민)이 어필하면 비판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범죄자가 늘어난 것을 보고도 문화부 기자가 보면 걱정이 되고 사회부 기자가 보면 요즘 경찰과 검찰이 열심히 일한다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며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본 사회부 기자는 요즘 소방공무원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평합니다. 반면 과학부 기자는 소방차 출동율이 현격히 낮아졌다는 자료를 바탕으로 소방 공무원의 防火(방화)활동의 성과가 높다는 주제로 特輯(특집) 기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자는 자신의 판단과 전공, 개인적 소신에 의하여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술이 반병 밖에, 술이 반병이나"라는 2개의 기사를 쓸 수 있고 편집부 기자는 이 기사를 바탕으로 "折半(절반)의 失敗(실패)"라는 제목과 "절반의 成功(성공)"이라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제목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반면 행정은 늘 90%이상의 성과를 올려야 하는 宿命(숙명)적 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6월말에는 50%를 달성해야 하고 11월말에 95%의 진도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공무원의 임무입니다.
가장 힘든 경우는 부서에서, 또는 공무원 개인이 창의적으로 새로운 업무를 발굴하여 지난 2월부터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 언론으로부터 그 일이 70%밖에 진도 나가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는 비판 기사를 맞았을 때이다. 차라리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사 날 일도 없었을 것이니 말입니다. 공무원에게 주어진 임무를 판단하는 기준을 찾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니 일하지 않으면 비판 기사도 없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기사를 올려야 하는 기자로서는 공무원의 속마음까지 다 읽어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공무원은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일을 발굴하여 국민을 행복하고 편안하고 행복하도록 힘써 勞力(노력)해야 한다. 언론도 공무원에게 走馬加鞭(주마가편)의 심정으로 크고 작은 비판을 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강원도 속초에서 출발하는 활어 수족관속에 상어새끼 한 마리를 넣어주면 활어 횟감 물고기들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에도 기압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상어를 피해 수족관 안을 빙빙 돌면서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활발하고 쌩쌩하게 달려온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 볼만 합니다.
o 신문사 편집부
신문기사의 마무리는 편집부의 몫입니다. 취재기자의 송고는 리드문(첫문장)부터 시작되며 데스크를 거쳐 편집부로 넘어오면 평소 신문 편집에 정통한 편집 전문 기자들이 제목을 정하고 기사를 배치합니다. 물론 1면 톱이나 두 번째 기사, 면 톱의 경우에는 편집회의에서 정하지만 그 외의 잘잘한 기사는 편집부 기자의 제목 작명과 적정한 위치에 배치에 의해 기사의 경중이 결정됩니다.
세로쓰기 신문시절에는 정말로 세로쓰기는 지적이나 비판기사이고 가로쓰기는 홍보성으로 보이는 듯한 시기도 있었고 홍보기사 제목의 바탕에는 비단 무늬가 있지만 지적 비판기사 제목은 그냥 흑백으로 처리하여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강력한 비판의 경우는 검은 판에 흰 글씨가 나오는데 이는 기사제목의 글씨는 흰 종이 원단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공간을 온통 검정 잉크로 인쇄를 하니 이를 일러 신문에 도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문을 펼쳐 보아도 웬만한 대문짝보다 크지 않을 것인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문기사의 전파성과 기사제목의 위용을 평가하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때로는 취재기자의 기사논조보다는 편집기자의 제목의 강도, 기사배치 등이 언론사의 의지, 사시를 반영한다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언론사에서는 취재기자 특종상 등과 함께 편집기자상을 따로 시상하고 있고 사진기자상도 별도의 파트로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신문지면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남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편집부 기자의 마술인 것이지요. 짧은 기사문이지만 내용이 크면 제목을 키우면 되는 것이고 길고 장황한 기사지만 제목은 작고 기사문이 다른 기사 틈새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틈새시장 기사도 가끔 보입니다. 특히 중앙지의 지방판 기사의 경우 밀려드는 기사를 수용하기에 면이 좁으므로 4단정도 제목이 될법한 기사도 2단 제목으로 줄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끔은 기대이상의 큰 사진이 크게 나오는데 이는 아마도 기사 원고량이 적은 경우 제목만 크게 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때 사진을 크게 배치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니다. 물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신문에서 사진의 중요성은 더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즉, 사건사고 현장을 신문 1개 면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해도 1장의 사진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현장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사진기사야 말로 신문의 힘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기관장님의 언론사 방문 할 때에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만 모시지 말고 편집부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시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편집부는 다른 기관장 방문 때 들르지 않는 부서이니 희소성도 있고 나중에 우리 기관의 기사가 올라가면 한글자라도 부드럽게 처리해 줄 것이며 아기자기하게 기사 제목으로 한 번 더 업그레이드 된 홍보효과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유를 만들어 언론사 방문은 2일로 잡아 문화체육부도 방문해야 하며, 어느 언론사를 1일차로 할 것인가는 출입기자의 파워와 위상을 사전에 검토해 볼 일인 것입니다. 정 결정하기 힘들면 언론사를 지도에 표시하고 순로를 따라 돌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o 방송인터뷰가 펑크나는 이유
방송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카메라감독 입니다. TV에 보도되는 내용은 화면으로 설명하는 작업이기에 좋은 화면을 찍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이는 마이크를 쥔 기자가 아니라 앵글을 맞추는 카메라 감독입니다.
그래서 TV인터뷰 전에 반드시 우리 편 대장님을 카메라 감독에게 인사를 하시도록 주선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카메라 감독은 신바람이 나서 4번 5번 다시 다시 촬영을 합니다. 삼각대에서 찍고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이지저리 촬영합니다.
방송에 나갈때에는 2-3초마다 화면이 바뀌어야 한답니다. 같은 화면이 길게 나가면 시청자가 지루하다 하고 자주 바뀌면 어지럽다 합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화면이 바뀌면서 기자의 리포터가 없어도 무슨 내용을 보도하는가를 시청자가 알아챌 정도로 화면을 구성해야 합니다. 시청자들이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만들어내야 하고 리포터의 핵심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방송기자들에게 아이템을 주면 화면이 있느냐, 현장에서 시연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느냐를 묻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화면 구성이 안 되는 경우에는 카메라 배정이 잘 안됩니다.
실제로 S지사님의 사모님은 아침 뉴스가 끝나면 관내 여러 기관의 여성단체장들이 오늘아침에 TV에서 지사님을 뵈었다며 경쟁적으로 전화를 받게 되는데, 지사님 잘생기셨다, 넥타이가 멋지다, 말씀을 잘 하신다 등 칭찬 일색이지만 정작 사모님이 뉴스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자세한 뉴스는 모르겠고 지사님을 뵈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즉 다소 부정적인 기사에라도 도지사님 얼굴이 비춰지면 그냥 잘 하시는구나 하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정치인은 부음란에만 아니라면 나쁜 기사든 좋은 내용이든 신문과 방송에 자주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요즘 언론에서 떠나간 얼굴들이 많은데 이분들 보면 정계를 은퇴하였거나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분들인 것입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 렌즈를 보면 우리의 대장님이 어떻게 비춰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배경장면을 잘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재를 배경으로 할 것인가, 우리 기관의 마크를 넣을 것인가, 창문을 등지고 현장감 있게 갈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정장이 필요한 인터뷰가 있고 작업복을 입어야 하는 경우, 민방위복을 착용하여야 효과적인 상황이 있는 등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송에 보도된 화면을 나중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늘 고민해야 합니다. 어렵게 보도된 내용을 통으로 떠서 다양한 기회에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간부회의나 월례조회 직전 기다리는 틈새시간을 활용하여 방영하는 방안이 있고 게시판에 주소를 올려서 구성원들이 시청하고 정책에 공감하도록 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뷰한 내용이 다음날 원하는 시각에 나오지 않고 다른 뉴스에 방송되거나 아예 취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 대형 화재, 10여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우리의 기사는 방송에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미사일을 쏘거나 대북전단을 보내는 파주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이 또한 어렵게 준비한 인터뷰 뉴스가 방송을 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더러 발생합니다.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고마운 일임을 미리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o 중앙지 가판 이야기
과거에 중앙지는 가판을 냈습니다. 가판이란 가두판매가 아니라 조간으로 나갈 신문을 전날 저녁에 미리 일부 구매자에게 판매하는 신문을 말합니다. 형태는 신문으로 나오고 서울 동아일보사 사옥 인근의 길에서 중요 고객에게 팔려 나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신문이 최종으로 인쇄되어 나갈 때에는 가판기사가 일부 부드럽게 조정되어 가정에 배달됩니다.
부드럽다는 말은 기사편집 내용과 아침 보도기사의 제목일부나 내용의 수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가판에서 "oo도 행정 식물인간"이라는 제목이 다음날 아침 "oo도 행정 일부 차질"정도로 완화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밤늦게까지 전화가 오가고 그 시각에 윗선에 보고되기도 합니다. 글자 2자를 놓고 공보관과 중앙지 데스크가 2시간 이상을 전화를 걸고 받으며 싸우는(?)장면을 목격하였고 다음날 아침 조금 부드러워진 기사제목을 들고 가서 '장'에게 보고하기에 참으로 대단한 밤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중앙지 가판제도가 주는 긍정적인 면은 혹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에 오해가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면에서는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리 전문기자라 해도 공무원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거나 자료에 대한 해석에 착오가 있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중앙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기사를 고객인 취재처의 검토를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한번은 큰 비판기사가 났다고 해서 중앙지를 열독하였지만 기사를 찾아내지 못하였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기사가 서울판에 날 수 있구나 해서 서울사무소의 신문 스크랩을 팩스로 받아 확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에도 중앙지는 서울판, 경기판, 수도권판, 경기제주판 등 1-2면을 할애하여 지방의 중요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서울판에 난 경기도 기사를 보고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경기판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중앙지의 서울판이 경기도 일부 신도시에 배달된다는 사실은 示唆(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가판은 떠나갔고 이제는 종이신문과 인터넷을 동시에 보는 공보실 직원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통신사 기사를 보아야 하고 저녁에는 석간신문, 아침 일찍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스크랩하여 보고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중앙, 지방지 신문을 스크랩하는 프로그램이 보급되어 마우스로 기사를 크릭하면 따운되어 편집된 후 이를 게시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이나 지방지가 홍보성 기사는 내일아침 종이신문에 올리기 전에도 인터넷에 올려주는 성의가 있으니 조금 비판적이거나 엄청난 바람을 몰고 올 기사는 절대 인터넷에 올리지 않고 종이신문에 먼저 보도한 후 수 시간이 지나서야 인터넷에 올리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종이신문의 위상을 살려두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인터넷 기사가 늘어나고 다양해지면서 과거보다 종이신문의 기사가 무게감과 신뢰성을 강하게 던져주는 것은 많은 분들의 공통적인 의식일 것입니다.
o 긍정과 부정의 차이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대화 중에 나오는 어휘들을 보면 50대는 긍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부정적인 표현을 쓰고 중고생의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구사가 많은 듯 보입니다. 더구나 대화의 반 이상을 욕으로 느껴지는 단어를 생각 없이 쓰는 경우도 접하게 됩니다.
청소년의 상황을 보면 반갑다 친구야! 라고 전하는 말인 듯 보이는데 대화내용은 비속어가 많이 첨가된 아주 거친 문장으로 구사됩니다. 그리고 ‘안돼요’를 남발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식당에서 "아줌마 여기 물 좀 더 주면 안돼요?" 물을 더 달라는 말인데 참 어렵게 표현합니다.
어른들의 대화 중에도 "그게 아니구요" 를 남발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상대편의 주장이나 설명에 대해 95% 공감하고 2%정도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일단은 '그게 아니구요'를 던지고 대화를 이어갑니다. 우리는 가급적 '네 공감합니다. 맞는 말씀 입니다. 그렇다마다요.'라고 말한 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합니다. 상대편의 주장에 50% 반대의 입장이어도 나머지 반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게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공무원과 언론의 인식 차이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언론의 보도에 대하여 가장 먼저 자신과 다른 주장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기사에서 기자는 그 사업이나 행사의 정황을 설명하고 그 속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나중에 대한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마음 급한 공무원은 일단 기사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지적부분에 스로 가슴을 찌릅니다. 아픕니다. 그러니 기사의 고민과 편집 데스크의 고뇌, 기사 전체의 '행간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긍정51: 부정49나 긍정 49:부정51에서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긍정으로 쓴 기사가 편집부 기자의 견해차이로 부정적 기사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술이 반병밖에 남지 않은 것이나 술이 아직도 반병이나 있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행간의 의미'란 기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 속의 진의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기자는 중앙선 침범을 안전띠 미착용으로 약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공무원은 안전띠 미착용으로 스티커를 뗀 경찰관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반대차선의 차량과 충돌위기를 모면한 것을 모르고 차선위반도 모른 채 왜 나에게 안전띠 매지 않았다고 스티커를 발부했느냐가 분노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당신은 중앙선 침범이라는 위법자인데 특별히 안전띠 미착용으로 낮은 등급의 스티커를 발부한다고 설명했다면 그 운전자는 흔쾌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언론의 경우에도 더 큰 사건으로 번질 기사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자 했고 다음날 그 부서의 장으로부터 감사의 전화를 받거나 기자실에 방문하여 고마움을 표할 줄 알았는데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온 담당자로부터 엄청 큰 반발의 어필을 받으니 오히려 당혹스러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사에 대해 보도에 대하여 우리는 일단 긍정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신문에 올랐고 인터넷에 퍼졌으며 방송으로 동네방네 전파를 탄 이후이니 말입니다. 기자에게 어필한다고 돌이킬 수 있는 화살이 아닙니다. 이미 화살은 날아갔고 과녁에 맞고 안 맞고는 금방 결정 나는 일입니다.
해서 일단 마음에 안 드는 힘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어필하기 보다는 오전 10시경 만나거나 전화를 해서 그 정도로 낮게 기사를 써주어 고맙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사소재는 풍성하고 신문지면은 매일매일 나옵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은 것처럼 기사로 쓰여 질 자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번 가볍게 예방주사 맞듯이 기사한방 맞고 다음번 홍보기사 보도 자료를 내면 그 기자가 3단짜리 4단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인맥 형성이 필요합니다. 불가근불가원 (不可近不可遠) 이라 하지만 그래도 언론인은 공직 내내 함께 해야할 공무원의 영원한 파터너이지 말입니다.
o 홍보기획과 전략
홍보기획부서에 근무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심정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보도 자료는 각과의 행사나 행정실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내놓을 자료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우리 기관에서 보도 자료를 낼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도 자료가 될 수 있으며 기자들에게는 호재가 될 것입니다.
보도 자료가 적은 이유가 기관장의 외유 때문인지 부단체장의 소극행정이 그 이유인지 아니면 간부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한 결과인지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감사기관의 강도 높은 사정방침이 행정을 위축시키고 실무자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중간 관리자의 결정을 미루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3개월 이상 지지부진 늘어진 인사작업으로 인사 온통 피로도가 쌓이고 결국 행정의 진도에 큰 걸림돌이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보도 자료가 현격히 줄어든 것은 물론 각부서 문서발송 건수도 감소하고 발간실이 파리를 날리다 못해 파리채로 파리를 잡는 등 인사지연은 공무원의 업무능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곧 인사가 있을 것이니 조금만 며칠만 미뤄보자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에 떠날 부서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겠습니다.
따라서 홍보부서 근무자는 장기근속이 필요합니다. 다른 부서 공무원이 평균 2년을 근무한다면 홍보부서는 4년 정도 근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정도 그러하고 인생도 그러하듯이 대한민국에서는 4계절을 지나야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해 새롭게 시작되는 농정에 아이디어와 개인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알려면 소금 3가마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소금 한가마는 1년을 말합니다. 소를 잘못 사면 반년 고생이고 머슴을 잘못 두면 1년 고생이며 결혼을 잘못하면 평생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언론과 잘못 사귀면 공직 내내 힘이 듭니다.
홍보업무도 6개월 정도 見習(견습)이 필요하고 언론인들을 접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소금 3가마 이상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속을 알려면 소금 3가마를 먹은 이후에 판단하라 하는데 3가마는 3년의 세월입니다. 이 소금을 다 먹는 것은 아니고 김장배추 절이기 등 간접적 사용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홍보기획안에 대한 의견입니다. 우선 정부의 중요 정책 발표시에 지자체의 의견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취락지구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정부정책이 발표되면 C공보관은 취재도 없는데 역으로 전화를 걸어 도지사의 견해를 말합니다. 중앙지 기사에 한두 줄 도지사 멘트가 실립니다. 친척집 밥 먹는 시간에 숫가락 들고가기, 이웃부서 회식장에 젓가락 품고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정부 발표 기사에 우리 대장님 이름을 올리는 것이야 말로 홍보부서 공무원들이 매진해야 할 일중 하나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전단과 1달러 지폐를 실은 풍선을 북한으로 날리는 민간단체와 주민의 충돌에 대해 파주 연천 고성군의 대응도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고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이들 지역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알려진다는 것은 장차에 관광객이나 벤치마킹, 또는 주민이 이사를 오거나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기업이 이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파주지역 상인들은 대북전단 보내기로 인해 북한군의 총격이 가해지는 등 긴장국면으로 인해 관광객이 급감하여 장사가 안 되는 실정에 있으므로 그만하라고 항의를 하고 계란을 던지는 것입니다.
홍보기획부서가 늘 부서의 동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접촉하다보면 부서에서 아주 중요한 홍보자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금인 줄 모르고 일반 자갈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옛날 숯 굽는 새신랑이 아궁이 돌로 금덩이를 썼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이 금이 든 돌을 쪼개서 한줌씩 포장하여 숯 팔러 가는 신랑을 통해 장터 대장장이에게 팔았는데 그 값으로 신랑이 지고 가는 숯의 4배 이상을 받아오더라는 옛이야기가 있지 말입니다. 하하하! 홍보기획 부서 공무원은 가끔 뻥도 치고 "구라"도 때려야 합니다.
"구라"라는 말은 손학규 경기도지사님께서 강원도 수해복구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전 작업 중 엄청나게 떠들어댄 공무원에게 "재미있는 말을 더 해보라"는 뜻으로 "구라를 더 쳐보라!"고 하신데서 연유된 말로 긍정적 의미의 거짓말을 '구라'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인줄 압니다. 김구라씨는 동현이 아버님입니다.
o 주라는 법도 말라는 법도 없으니
공무원과 언론인의 끝없는 말싸움은 자료를 달라하고 못준다 하는 것입니다. 자료를 주라는 법이 없으니 심한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합니다. 대외비가 아닌 문서라면 달라하고 내가 처리한 문서를 기자에게 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이는 닭과 계란의 문제이고 부산까지 달려도 늘 평행선인 좌측 철길과 우측 레일입니다. 숫자 2는 곱해도 4, 더해도 4이듯이 언론인과 공무원의 대화는 늘 평행선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모든 보도 자료는 공보실을 통해서 주고받자입니다. 각 부서는 공보관실이 요구한 자료를 공보관실 직원에게 전달하고 공보관실은 그 자료를 기자에게 전하니 각각의 책임부담을 조금씩 분담하는 것입니다.
공보관실 직원도 공무원이니 자료의 내용을 파악하고 나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사업부서에서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기자에게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 마음속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자들도 무턱대로 행정기관의 자료를 보도하기에는 나름 규율이 있을 것입니다. 언론이 폭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언론보도의 수위가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공익적 책임이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을 해주기도 합니다.
기사를 보도한 언론인에게 어필을 하면 '행간의 의미를 읽었느냐?'고 젊잖게 말합니다. 기자들도 취재한 후 기사를 쓸 때, 편집회의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는 말입니다. 더 강하게 나갈 수도 있는 것을 그 정도에서 완화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지만 보도를 당한 공무원으로서는 이 기사 자체가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기에 일단 보도된 내용을 기준으로 불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가 막히면 울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아주 기사가 강하게 나버리면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인데 적당한 충격으로 기사가 터지니 이에 반발할 힘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공무원은 늘 대형사건 기사의 충격을 5감당할 정신자세가 필요합니다. 언론에 대한 어필은 1:1보다는 대변인실을 통하거나 대변인실의 지원을 받거나 언론중재를 받아야 합니다. 민감한 보도의 온도차를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르므로 전문가들이 모인 언론중재위원회가 수많은 유사사례를 견주면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가 난 후 1시간쯤 지나서 아주 담백한 마음으로 기사가 정말 잘못 보도된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간 접한 기사의 대부분은 맞는 말이고 틀린 말은 아닌 듯 한데 그 표현이 가슴을 시리게 하고 내 목을 조이는 듯 느껴져서 화가 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아프게 제목을 달고 기사를 쓰는 것일까. 그리고 항상 기사속 에서 담당자를 두 번 죽이는 마지막 멘트가 정말 싫은 것입니다.
정말 화가 나는 기사는 안 해도 될 일이었는데 창의력을 동원해 열심히 해보고자 노력한 것을 단순평가로 100을 목표로 잡고 아직도 70뿐이라고 언론이 기사로 비판할 때 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나를 채찍질 하지 말고 할일도 안하고 분위기타고 눈치 보는 다른 부서를 질책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 아니겠느냐 화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走馬加鞭(주마가편)'이라 했습니다. 달리는 말에게 채찍을 날리고 날카로운 편자로 달리는말의 허리를 차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언론의 기능인 것입니다.
언론도 走馬加鞭(주마가편)만으로 달려갈 것이 아니라 복지부동을 잡아내고 복지안동을 솎아내는 행정기관 내 각 부서의 미흡함을 더 많이 지적해 주기를 바랍니다.
1년에 2번 봄가을 옷을 사오는 둘째 며느리만 칭찬하지 말고 365일을 넘어 366일 367일 열심히 일하는 첫째 며느리에게 신경을 써주기 바랍니다. 더구나 아들도 일찍 세상 떠난 첫째 며느리의 고생을 보듬어주는 심정으로 언론이 행정기관과 공무원을 격려해주는 참 좋은 기사를 많이 올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론인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o 공보관 외부채용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장과장을 역임하시고 퇴직 하신 후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심재덕 시장을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보직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웃소싱의 원조가 되셨습니다. 이후 심 시장님은 특히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셧습니다.
이후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이었으며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근무 내용은 서면접촉을 할뿐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마실 기회도 없습니다.
부서의 역할을 바꾸신 J공보관은 부임 초부터 새로운 공보관실 기능 재배치를 검토하였던 것이고 3명의 계장 중 2명이 전입되는 다음날 새로운 업무배치를 한 것입니다. 즉 보도자료 제공을 하는 언론담당이 기자실 접촉을 담당하고 보조기능인 홍보기획에서는 자료로 승부를 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외부기관으로부터 홍보컨설팅을 받게 되었고 이미지광고를 시작하였으며 각종 홍보 전략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도 공무원들이 열성적으로 일했지만 그 틀을 바탕으로 새로운 홍보 전략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기관의 컨설팅에 따라 도지사의 인터뷰부터 업그레이드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인터뷰 복장에 대해 비서실과 협의했고 필요시에는 가벼운 분장을 통해 영상을 통한 도정홍보를 강화했습니다.
도정을 대표하는 도지사의 얼굴이 화면에 밝고 멋지게 나올 필요가 있다는 컨설팅을 받은 결과입니다. 이어서 인터뷰를 행하면서 화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터뷰 직전에 카메라 감독에게 도지사가 인사를 하시도록 안내하는 세심한 운영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도민들의 수필공모를 통한 도정홍보 전략도 펼쳤고 출입 언론인들에게 E-Mail을 쓰도록 하여 신속한 자료의 전파가 가능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 우리의 삼성출신의 L공보관님은 확실한 홍보 전략과 차별화 정책으로 기자실 원로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홍보에 매진했습니다.
다음번 공보관님은 방송출신 언론인으로서 도정의 홍보전략이 TV쪽에도 다가서면서 새로운 형태의 홍보전략을 짜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TV방송의 전파력이 강했다는 점에서 시기를 잘 만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내부 공무원이 공보관에 보임되면서 원로 언론인은 물론 젊은 층에서도 옛날 문화공보담당관이나 보도계장(1988년 이전)시절로 돌아간 듯 긍정적인 분위기 전환을 맛본 이후에 2003년 3월에 가치관과 추진력이 확실한 C공보관을 맞이합니다.
C 공보관은 공보관실 사무관들의 업무패턴을 개혁하였고 언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언론관련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심심한 듯 '금단현상'이 일어난다는 말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C공보관의 추진력에 J차석이 힘을 합해 수 십 년 유지해온 기자실의 자투리 공간,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내고 기자실 구조를 바꿔서 브리핑 룸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존의 개인 책상을 철거하고 작은 취재부스를 만들어 누구든지 필요할 때 와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나가면 다른 기자가 그 자리를 쓰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기자실에는 개인 자리가 없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날 새벽 꿈속에서 어느 도인이 나타나 '그대가 추진하는 기자실 구조 개편에 무리가 있다'는 말씀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 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진행 중이던 브리핑 룸 개편작업을 크게 바꿔 원로 언론인들의 자리를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 공보관은 문관적인 역량으로 소통하는 조직문화를 이끌었습니다. 공보관 퇴임후에 국회 요직에 오른바 있습니다. L공보관은 젊은 나이에도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계층을 초월한 소통과 협력으로 다수 언론인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경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도정사건 사고에 대해 기민하게 대처하는 분으로 현안에 대한 판단과 적절한 대응력을 발휘하였고 기존 조직의 공무원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조정하고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다른 부서에서 대변인실을 바라보니 재수 삼수를 하는 공보관이 보이고 2011년 6개월 동안 근무한 언론담당관으로서 함께 근무한 C공보관은 자신의 주장이 강하지만 언론인을 예우하고 소통하는 면에서 강점을 지닌 인물이었고 후임의 C일보 출신 대변인은 실력과 인품으로 다양한 홍보 전략을 개발하고 중앙을 담당하면서도 필요시에는 지방언론과 소주잔을 마주하는 폭넓은 행보를 보였습니다. 수권의 책을 쓰신 문예창작과 출신이며 함께 근무한 여러 공보관님 중 덕장이요 지장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외부인사이면서 여성 대변인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호불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최근 만난 여성 대변인은 언론인 체육행사장에서 아주 친밀하게 대화하고 도지사 주재 회의에도 참석하여 도정의 현장상황을 파악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성차별이 가장 적고 오히려 여성이 앞선다는 기자세계에서 여성 대변인의 탁월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외부 전문가와 내부 행정공무원간의 원활한 소통과 조정이 필요해 보이며 무조건 홍보가 아니라 전후좌우를 살피는 전략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좌고우면하는 공보부서 간부의 자세도 필요하고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삼국지의 관우의 적토마 같은 돌진과 격파의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때로는 과도한 홍보가 정책에 역작용할 경우도 있습니다. 언론에 대한 대응이나 국민을 향한 기자회견은 그때 상황과 사건사고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방식을 요구하고 있으니 공보부서 근무자들은 때로는 현실주의자이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미래를 생각해 보고 혹은 과거를‘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하면서 급변하는 홍보환경에 잘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
o 사건 보도의 사례
1999년 6월 30일에 화성 C랜드 화재사고가 났습니다. 서울 자택에서 TV를 본 경기도청 J공보관은 현장으로 달려가 소방관이 촬영한 필름 입수하였습니다. 다음날 사진이 언론에 제공되었습니다. 대형 사건 현장에는 늘 비디오카메라를 든 소방관이 사건사고 현장을 촬영하는데 TV방송 기자 간에 이 필름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있었고 며칠 후에는 촬영 소방관을 불러 방송된 화면이 본인이 촬영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소방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돌아갔습니다. 사실 화재현장에서 활활 불이 타오르고 교사, 어린이 등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한편에서는 불을 끄는 상황에서 제대로 안정된 자세로 촬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화재 당시의 장면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방송국은 화재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쓰고 다른 방송국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보도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훗날 우연히 만난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카메라 감독의 말로는 당시 보도된 화면은 소방관 촬영장면이 아니었고 학부모가 홈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입수했다고 들었습니다.
사건현장에서 보다 현장에 근접하는 화면을 확보하기 위핸 카메라 감독의 모험적 활동은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까지 따라붙는 등 참으로 많은 경우에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재 등 사건관련 화면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으로 만나는 장면들을 촬영한다면 혹시 중요한 TV뉴스의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추진하는 업무가 방송뉴스나 교양프로그램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홈비디오 카메라, 스마트폰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여야 하고 의도적일 정도로 촬영할 수 있는 장면을 구성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o TV보도와 인터뷰
1988년 상반기까지 경기도내 언론시장에서 텔레비젼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처럼 아주 높았다고 봅니다. 공중파 방송국 기자가 지방단신을 보도하면 내무부에서 전화가 오고 사실 확인을 위해 감사과 직원이 현장 확인을 하였습니다. 88올림픽 당시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지방신문은 경인일보가 유일했으며 지역방송국은 케이블TV라 해서 가가호호 연결된 통신선을 이용하여 지나간 드라마를 다시 방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방송국 모 기자는 일주일에 1-2건 중요사항을 보도하였는데 경기도청의 기사꺼리가 마땅하지 않으면 농촌진흥청의 연구실적을 취재 보도하였고 어느 날 TV모니터 자료를 작성하고 이를 신문 스크랩과 함께 묶어서 도지사님 비서실에 오전 8시전에 넣기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송기자가 어제 저녁에 야생초 확대 재배에 대한 모니터가 빠졌다며 어필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기관의 성과를 보도한 것이 왜 도지사가 보시는 보고서에 들어가야 하는지 당시 7급 공무원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자신이 경기도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경기도에도 어필하고 싶었거나 보도와 관련하여 도지사님과 사전에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중앙정부와 도청 간에 긴밀한 협의가 오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신문방송 모니터 결과 스크랩은 1년이 지나면 폐지로 버려지고 기록도 남지 않는 것인데 아주 많은 공무원들이 여기에 몸이 매여서 전전긍긍하였습니다.
그래서 TV를 통한 보도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방송기자가 뉴스로 편집하기 위해서는 아이템이 화면확보가 가능한 분야 이어야 합니다. 3초마다 바뀌는 화면을 90초로 편집하려면 30개의 화면이 필요합니다. 요즘 종편을 보면 출연자가 상황을 길게 이야기하면 같은 내용의 화면이 3-4회 반복되어 나오게 됩니다. 이야기하는 사건에 대한 자료화면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다양한 각도와 세밀한 내용으로 촬영이 가능해야 수준 높은 뉴스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설명되는 경우에는 그 사업과 관련한 자료화면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방송 나기는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 전에 방송기자와 사전협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방송국의 아이템 검토, 차량과 촬영감독 배정, 방송스케줄 등 사전 조정사항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관장의 TV인터뷰 시에는 표정, 복장, 배경에 신경을 써야하고 반드시 기관장(도지사 시장 군수)이 카메라감독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무원의 시각에서 보면 방송의 생명은 아이템보다 기관장 얼굴이 방송화면에 나가야 하고 방송기자의 입장에서는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아니라 그 사업을 주관하는 공무원이나 시민을 인터뷰해야 하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1988년 당시에 얼굴을 알리는 데는 방송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기관장이 카메라 감독과 악수를 한 경우 촬영시간은 길어집니다. 인터뷰를 4-5차례 반복하게 되고 카메라를 세우고 촬영하다가 어깨에 메고 이리저리 돌면서 찍습니다. 다양하게 찍으면 같은 90초를 나가도 좋은 표정, 정확한 인터뷰 장면을 모아서 멋지게 편집할 것은 자명한 일인 것입니다.
다소 나쁜 기사라도 방송에 나가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합니다. 국민들은 기사에 나온 나쁜 지적기사는 금방 잊어버리고 방송 화면에서 본 정치인의 얼굴을 오래 기억한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본 것은 기억나지만 그당시의 보도 내용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참고로 선거유세장을 보도하는 경우 선호하는 후보는 카메라감독이 쪼그려 자세로 올려보며 촬영한 후 연사가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카메라는 청중을 화면 가득 담아주지만, 불호하는 후보의 경우에는 힘없는 대사가 나가고 기계충 먹은 시골 머슴아 뒷머리처럼 관중이 듬성듬성한 곳을 넓게 촬영하여 방송을 합니다. 공정방송의 기준은 방송에 나가는 시간이지 그 내용까지 통제하지 못합니다.
여하튼 정치인에게 있어 부고장만 아니라면(사망했다는 연락만 아니라면) 방송에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방송에 자주 나가야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방송의 힘이 가면 갈수록 강해지는 것은 이미지로 자신을 홍보하는 현실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정치든 행정이든 방송을 통해, 신문을 통해 더 많이 알리고 소개해야 하는 것이 홍보맨들의 큰 고민입니다.
o 기사작성 스타일
1989년 어느날. 중앙사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입니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난로가에서, 소파에서 머리 속으로만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플러스 펜으로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습니다. 잠시 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여부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끝입니다.
다른 중앙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아침 10시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 반에 미리 달라 하십니다. 자료를 받으시면 즉시 기사작성을 시작합니다. 우선 제공된 보도자료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봅니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 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첨삭합니다. 또다시 수정하는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 듯 복잡합니다. 글씨를 쓰시는데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참으로 바쁘고 치열합니다.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석간이므로 오후 1시경 지방판이 마감됩니다. 점심을 제때에 맞추지 못하고 늘 바쁘십니다. 수차례 수정과 가필을 거듭한 끝에 또다시 정서한 원고에 수정을 한 후 팩스기로 뛰어갑니다. 송고하러 가면 늘 팩스기는 만원입니다. 소리소리 고래고래가 따로 없습니다. 전쟁이라도 터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왜 바쁜 판에 팩스를 쓰느냐 고함을 치십니다.
기존에 보내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의 원고를 서울 본사로 보냅니다. 왜 이리도 팩스는 느리게 갈까요. 나오는 원고를 손으로 잡아 뽑습니다. 그리고 본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팩스 보냈다고 하고 있지만 지금도 마지막 페이지는 송고 중입니다. 데스크에서 그래도 잘 받아주나 봅니다. 평소 한달에 한두번 소주한잔은 하시는 사이일 것입니다. 원고를 보내고 또 전화해서 기사를 수정합니다. 오후 석간 지방판에 2단기사가 나옵니다. 어느 날은 멋진 기사가 눈에 쏙 들어오게 나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은 보면 제목은 2단이지만 기사내용은 4단 분량이니 지면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기사를 읽어야 한다. 마감시간이 지나서 들어온 기사를 지방판에 밀어 넣다보면 그리 된다고 합니다.
고인이 된 L기자를 선배님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아니 그냥 '선배'라고 불러야 극존칭이라 했으니 '선배'라 부르고 싶다. 언론인간에는 나이와 무관하게 언론에 입직 入職(입직)한 연식에 의해 선후배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비록 언론인은 아니고 전직 공무원으로서 지금도 그 언론인을 선배라 호칭하고 싶습니다.
고인이 된 그 선배가 그립습니다. 다른 기관 간부들과 언론인들이 만찬을 하던 중 상호간에 언쟁이 벌어지자 후배기자들을 질책하며 '너희들을 야단치느니 내가 벽을 차버리겠다'고 액션을 하다 발가락이 골절됐다. 당시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뼈가 아무는데 한달 반 이상 걸렸습니다. 사무실 차로 출퇴근 시켜드린 기억이 납니다. 훗날 상가에서 만난 H사의 B기자가 당시 현장에 함께 하였고 사건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반가워했습니다.
품앗이 기사도 있습니다. 좋은 기사를 작성하면 동료 기자에게 선물을 합니다. 워딩한 자료를 받아 부분 수정을 가미한 후 말미에 기사작성 기자의 이름을 올리면 됩니다. 다음날 아침에 4단기사로 보도 됩니다. 언론인들의 기사작성 방식은 언론사 수 이상으로 다양합니다. 기사작성에 전심전력하여 점심을 거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다른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여 다른 사람 밥상에 숟가락 올리고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된 두 분 선배가 그립습니다. 기사작성에 5분이면 되는 K선배가 그립고 2단 기사에 5시간이 필요한 L선배가 보고 싶습니다.
o 가차를 타고 달리는 기자의 원고지-역송
1988년 경기도청에 주재하는 중앙사 기자들은 수시로 수원역에 갑니다. 사무실에서 100자 또는 200자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기사관련 사진과 함께 봉투에 담아 본사 지방부 아무개 기자앞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팩스 전송도 용이하지 않은 시절이므로 인편에 원고와 사진을 직접 보내는 것입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기관사는 부산에서 대구 대전 천안을 거쳐 수원역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차역마다 수집한 언론사 원고를 서울역사안 각 언론사 사서함에 넣어 줍니다.
본사의 역송담당자는 오전에는 2시간에 한번 서울역에 사송을 다녀옵니다.석간신문사는 오후에 신문을 내놓아야 하므로 점심을 먹고나면 더더욱 바빠져서 매시간 단위로 서울역 사서함을 열고 자료를 받아와서 해당부 기자에게 전합니다. 그리해서 그날 저녁에 기사로 나가거나 늦으면 다음날에야 신문에 빛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팩스라는 기계가 있어서 원고를 보내기도 하고 기계실에 가면 둥근 통에 사진을 감고 기계를 돌려서 긴 선으로 사진을 보내면 본사 기계실에서 지진계 돌아가듯이 사진을 이른 바 주사선으로 돌려받으므로 오차가 나면 톱니바퀴체 잘린 듯 촛점 흐린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보면 과거의 추억이겠지만 당시에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으니 참으로 얼마전 일인데 참 오래된듯 생각됩니다.
이시대 첨단의 IT문화를 보면서 불과 30년전 이야기인데 왜 이처럼 먼 시대의 일인듯 느껴지는 것일까요. 반만년 역사속에서 보면 30년 50년은 일순간, 어느 봄날 하루나 이틀일 것인데 전화, 신문, 방송, 교통 등 우리사회의 여러 분야에서는 아주 큰 변화를 격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언론과 관련한 변화도 참으로 많은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노트북에 엔터를 치는 순간 기사고 포털사이트에 올라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 수초후에 온세상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게되는 시대인 것입니다.
컬럼브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인류역사적 사건(1492년)을 조선사람들이 1892년에 들었다면 500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1900년대에 이 사실을 안 조선인은 몇명이나 될까요. 손흥민 선수가 축구 골대에 슛팅을 하고 꼴이 들어가면 수분안에 대한민국 국민 중 몇%가 알게 될까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수분내에 대한민국 많은 국민이 알게 됩니다.
40여년전 조치훈 기사가 일본에서 개최된 아주 큰 바둑대회에서 승리하자 국내 TV방송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이원중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일본에 국제전화를 걸어 기보를 전해온다는 사실도 신기했습니다. 바둑판은 19와 十九로 표기된 모눈종이 입니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자 조치훈 기사의 착점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TV에서 중계를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열리는 대국장면을 화면으로 생중계하는 요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경입니다.
그런데 불과 40년 전에는 TV방송이 지극히 아나로그적이었습니다. 사건이 나면 기자가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어서 흑백사진으로 뽑아서 본사에 보내면 서울역 사서함에서 이를 찾아서 윤전기에 걸어 돌려 인쇄를 하면 중고생들이 흰 고무신, 검은 운동화를 신고 골목을 내달려 전했습니다. 그 신문을 읽은 국민은 100만명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방송도 지방에서 발생한 사건을 촬영한 테잎을 서울 본사에 보내 뉴스 자료화면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 신문과 방송이라는 언론의 힘이 더더욱 비중이 높았고 힘은 강력했습니다.
o 기관장 사진은 3장이 필요 합니다
기관장 사진은 보통 3장이 필요한데 1980년대 신문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문선공이 자료실에서 이름만 맞으면 편집부로 올렸나 봅니다. 이재창 도지사님은 그 전에 경기도 부지사를 하셨으므로 당시 젊고 머리를 수수하게 약간 퍼머끼가 있는 멋진 사진이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도지사로 취임하신 후 새로 찍은 말끔하게 빗어넘긴 정말로 멋지고 행정적인 사진으로 바꾸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요즘에는 사진파일을 보관하면서 필요할 때 신문에 편집합니다만 당시에는 사진을 동판으로 찍어서 관리했습니다. 도지사 사진이 필요하면 자료실에서 동판을 꺼내어 활자사이에 끼워넣어 편집하였습니다. 그 언론사의 도지사님 사진 동판을 신판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지사님 때는 아예 신문사에 가서 동판을 달라 해서 지사님께 회수결과를 보고한 일도 있었습니다.
임사빈 지사님은 사진이 잘나오는 각도가 있으시므로 공보실 사진담당 주무관은 늘 이를 신경 썼지만 신문사 사진부 기자들은 전체 구도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지사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옆모습이 게제 되고 이를 개선하라고 공보담당관에게 말씀하시니 이 또한 받자옵기 쉬운 과업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티지털 카메라가 활성화되어서 특정하게 기관장님의 사진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공보실장은 3컷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언론사에 보내야 하고 청내에서도 각종 자료에 올라가는 기관장님의 사진을 관리해야 합니다.
우선은 넥타이 매시고 정자세를 하신 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취임식 때 가져오신 사진이 가장 먼저 널리 오랫동안 배포된다는 점을 생각하고 첫 번 사진을 잘 선택하되 웃는 모습은 상중하에서 중으로 해야 합니다.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은 각종 시책의 성공적인 발표 내용을 언론이 보도할 때 활용하면 좋습니다. 중간 웃음의 사진은 일반적인 보도에 쓰이면 됩니다. 단호하거나 웃음기를 줄인 사진이 필요한 경우는 현충일 추념사의 동그라미 사진입니다.
하지만 늘 웃는 사진이 많이 쓰입니다. 도의원 사진의 변천사를 보면 웃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3층에서 만나는 1990년대 도의원 전체의 사진에서 웃는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7대, 8대에서 많은 분들이 웃습니다. 그 당시에 의회에 이주일 씨가 오신바 없는데도 모두 웃으십니다. 그리고 지금의 도의원님 명함을 받아보면 90% 이상 웃는 사진입니다. 사진이 주는 친밀감이 정치인에게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오산시의회 7대의원 7분의 사진 중 웃으시는 분이 4분, 평온한 모습이 3분입니다. 하반기 사진에는 모두 웃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웃으면 복이옵니다. 웃어야 긍정이 살아납니다. 하반기 전에 활짝 웃는 사진을 반드시 준비하셨다가 새롭게 의장단이 구성되면 그때 사진을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최근 삼성과 현대의 3세 경영인의 사진이 새롭게 출시되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CEO, 기관장은 전체 구성원의 상징입니다. 보도되는 내용에 따라 그 컨셉에 맞는 사진이 올라가도록 공보관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행정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기사의 기관장 사진은 다소 미래를 지향하는 각오를 하는듯한 사진이면 좋습니다.
노인의 날 행사 축사를 인쇄하는 판플렛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나 노인을 존경하는 분위기의 사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런 사진이 어디에 있느냐 반문하지 말고 가슴으로 진심이 전해지는 그런 표정의 기관장 사진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끔 시장님을 대신해서 상장을 전하는 경우 긴장한 간부들은 표정을 감추게 되지만, 그래도 일단은 환하게 웃으며 임해야 합니다. 무거운 표정을 지은 사진을 자신의 화장대 맨 앞줄에 세우고 싶은 시민은 거의 없고 아예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웃으면 긍정의 힘이 솟아납니다.
o 골프장 보도와 선배의 순직
언론인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니 공무원으로서 모시고 근무했던 계장님을 선배님이라 존칭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1988년 임사빈 경기도지사 재임시에 저는 세정과에서 문화공보담당관실로 발령을 받아 언론인에게 행정업무의 홍보 자료를 기사문으로 작성하여 전달하는 이른바 "아이템 담당자"로 일했습니다.
이 자리는 누구의 결재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료를 받아 자료를 작성한 후 기자실에 배포하면 다음날 석간에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사가 인쇄된 신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아주 재미있게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도지사님 주재의 간부회의시에는 상황실 뒷 편에서 오디오를 청취하던 중 의미있는 말씀이 나오면 간단히 메모한 후 지방 신문사 기자에게 전화로 알려주면 원고지 1매 이내의 가십기사가 오후 2-3시경 윤전기를 통과하는 석간신문에 실리니 이 또한 밤나무 아래서 3개 또는 2개의 초콜릿 알밤을 줍는 기분입니다. 취재와 기사 보도과정이 1:1로 마감되는 것이 공무원 초짜(공무원 11년차)로서는 얼마나 신명나는 일이겠습니까.
특히 당시의 임사빈 경기도지사로 말씀드리면 정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양주군에서도 본 양주에서 출생하시어 젊은 시절 내무부에서 일했고 야간대학을 다니고 꾸준한 노력을 거듭한 결과 30년 만에 9급에서 1급 도지사에 이른 분이고 (지금 도지사는 차관급, 부지사 1급) 민선 경기도지사 출마에서는 낙선하였지만 양주-동두천 국회의원을 하시면서 경원선 전철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신 분입니다. '임두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굵직한 일을 추진하신 분입니다.
특히 내무부 근무시절 공보관을 하신 이후 국장으로 승진하셨을때 공무원들이 한동안 공보관실은 가지 않고 임사빈 국장실에서 진을 치고 기사 아이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0년 동안에 9급에서 1급에 이르려면 3년마다 승진을 하셨다는 계산이니 이 또한 얼마나 바쁜 승진과 자리이동을 하셨을까요.
하지만 임사빈 도지사님도 공무원이니 언론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던 숙명일까요. 1989년 하반기에 정부에서 관리하던 골프장 인허가 업무를 시행령을 개정하여 시도로 위임하게 되었고 경기도청 관광과에서는 당시 중앙으로부터 진행 중인 골프장 서류를 덜렁 인계받았고 곧바로 관광과에는 사업승인을 받기 위한 회사 간부, 설계회사 직원, 기타 로비스트들이 줄을 잇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업무를 담당한 C선배는 현직 J선배와 과거 D시 부시장을 하신 선배등과 함께 이 업무를 하면서 새벽부터 늦은 시각까지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평하게 일처리를 잘 마친 결과 정년퇴직하셨고 마지막 선배도 명예퇴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 세분은 최근에도 모임을 갖고 그 당시를 회고하시며 자랑스러운 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새기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방언론에서 시작된 경기도청의 골프장 사업승인 건에 대한 비판은 중앙지와 방송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최근 수년전에도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에게 골프장 사업승인 건수가 많다는 비판을 하였습니다만, 국회에서 의결한 법에는 광역이든 기초든 자치단체장이 골프장 사업을 제한할 정책결정권은 주지 않았습니다. 서류를 준비하고 절차를 진행하면 골프장은 건설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그러했을 것입니다만, 결국 정부에서 시작한 골프장 사업승인 서류가 경기도에서 마무리되자 이 책임의 화살들이 임사빈 경기도지사에게 날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당시나 지금이나 언론사 데스크는 다른 언론 보도내용을 보고 주재기자, 출입기자의 기사보고가 없으면 이른바 새처럼 "쪼아대는" 시절이었으니 1988년 당시 출입기자 30여명이 일주일 동안 경기도가 골프장을 과다하게 허가한다는 기사를 너도나도 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중앙지 漫評(만평)란에 경기도 골프장에서 드라이버샷을 하니 그 골프공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서 도지사의 벼슬 감투를 때려 떨어트리는, 당시 공무원으로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림이 올라온 것입니다. K신문 G차장이 올린 기사를 바탕으로 화백께서 의미를 담아 붓펜으로 일갈 하시니 임사빈 도지사께서 심히 마음이 불편하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J일보 K기자가 토요일 오후에 본사로 골프장기사를 송고하려 하자 B계장님과 L차석이 팩스기를 가로막고 저지하려 하였지만 결국 송고되었고 월요일에 4단정도의 세로쓰기 기사가 난 것이 마지막인 듯합니다.
결국 "경기도 골프왕국"기사는 온통 신문을 장식하고 덕분에 방송기자도 드라이버 날리고 퍼팅으로 108번뇌(홀컵 지름이 108mm)하는 영상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에 보도되었으니 온 나라 국민들이 골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골프업계 종사자들은 신바람이 났을 것입니다.
108번뇌란 골프 퍼팅하는 홀컵의 지름이 108mm인데 이는 100여년전 영국에서 치과의사가 토끼 굴에 퍼팅하는 것으로는 심심하여 주변에서 소재를 찾던 중 짧게 잘린 수도관을 발견하고 이를 땅에 나무 심듯 묻은 후에 퍼팅을 하니 어렵지만 재미있어 이른바 시험에서 말하는 "변별력"이 커져서 그리 정했다고 합니다.
이분 치과의사가 당시에 좀 더 큰 300mm 수도관을 집어 들었다면 전 세계의 골퍼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물론 108mm에서 아놀드퍼머, 구옥희, 최경주, 타이거우즈, 박세리, 신지애, 최나연이 나타났고 오산시 7세 어린이의 홀인원이 인터넷에 크게 보도된 것이겠지요.
이렇게 낭만적인 이야기만 들으실 때가 아닌 줄 압니다. 결국 골프장 보도사건은 당시의 선배공무원이 낮으로 밤으로 언론인을 접촉하면서 이른바 '보도 막기'에 고생을 하신바 피로와 스트레스가 축적되었고 그해 12월말 출근길에 쓰러지시고 곧바로 수원시내 병원에서 긴급 조치를 받으시고 경희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으나 다음날 다시 수원 병원으로 돌아오시게 됩니다.
엠블런스에서 내린 선배를 병실로 안내하고 손을 잡고 이마를 짚어보니 냉냉하고 맥도 희미하여 가슴이 먹먹하였고 결국 12월30일에 별세하시고 다음날 종무식 참석이 아니라 도청장 영결식에 이어 성남 공원 묘원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꼭 슬픈 날에는 날씨조차 더더욱 추운가요. 아니면 춥게 느껴지는 체감온도의 차이일까요. 오전에 도청광장에서 道廳葬(도청장)을 거행하고 장지에 모시고 돌아오니 저녁 7시쯤 되었는데 당시 교육을 앞두신 공보관이 사무실에 술상을 차려놓으셨습니다. 장지에 다녀온 후배들 고생했다고 격려하시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사건이 일어납니다.
출입기자중 한분이 늦은 시각 기자실에서 공무원들에게 뭐라 하신 말씀을 제가 취중에 잘못 이해하였나 봅니다. 계장님이 순직하였는데 장지에 함께 한 출입기자는 2명뿐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리도 친밀해 보였는데 말입니다. 마음이 울컥하여 기자실에 뛰어들어 입구의 표찰을 파손하고 기자실내 원고지와 기타 서류를 마구 집어던지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책상유리가 깨지고 기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11년차 어린 공무원이 과도하다 반성을 합니다만 당시에는 소주가 25도로서 지금의 물 같은 19도와는 크게 다르므로 취하는 정도가 달랐다고 변명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공직에서 계장님은 부모님과 가족 다음으로 자주 만나고 가까이 모시는(당시에는 모신다 했음)분이니 부모 돌아가신 상주로 생각하고 주변에서 다독이고 본인도 자중해야 하였습니다.
결국 다음날 새벽잠에서 깨어나니 동료들과 마지막 소주집인 소골집(지금 수원 세무서 건너편 버스정류장 옆)에서 가로세로 섞여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12월31일과 1월1일밤 사이의 긴 시간을 소주집 식탁아래서 보낸 것입니다. 가까스로 몸을 챙겨 일어나니 안경이 오간데 없고 결국 버스타고 집에 가서 샤워만 하고 오전 10시에 사무실로 출근하여 어제 받은 부의금을 정리하였습니다.
다음번 공보관에 내정되신 H국장님이 11시경 오셨습니다. 국장님! 저는 이제 공무원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왜 그러느냐? 어제 밤에 기자실 간판, 책상, 유리, 원고지, 서류를 제가 저 지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기억이 날 듯 말듯 한데 제 짓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 네가 기자실을 저리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래 참 잘했다! 더욱 더 열심히 하자.
결국 월요일 오전에 회계과 직원들이 긴급하게 응급복구를 하였고 이후 사고뭉치 공무원은 무난하게 2년반 근무를 마치고 다음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연말이 되면 당시 고생고생하시다 별세하신 선배님의 기억이 납니다. 사모님이 L대학교 메이퀸이라 자랑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친구!!! 고통과 번뇌가 없는 그곳에서 영면 하소서"라고 영결사를 읽어가시던 또 다른 L선배님이 생각납니다. 그 L선배님의 사위가 된 K사무관과는 가끔 만나 수원 역전 순대국 집에서 소주를 함께 합니다. 역사와 세월은 힘들어도 이어지는 것이고 기뻐도 함께 하는 시간의 흐름으로서, 인간이 거스르지 못하는 대 우주의 질서인가 생각합니다.
o 나쁜 기사 대처법은 없더라
이 세상에 나쁜 기사 없고 좋기만 한 기사도 없습니다. 모든 기사는 그 속에 기승전결이 있고 生老病死(생로병사)가 존재합니다. 한건의 기사에는 그 주의 해당기관 스토리가 담기게 됩니다. 행정기관에서 나오는 보도 자료를 해석하는 경우의 수는 그 기관을 출입하는 기자의 수보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아직 얼굴을 못 본 인터넷 기자, 내근 기자들이 우리의 보도자료를 참고하여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쁜 기사로 예상되는 사안에 대한 기자의 취재가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설명하여 우리 측 의견이 기사에 반영되도록 해야합니다. 기자는 늘 양쪽의 의견을 들으려 합니다. 이른바 반론권을 인정해야 그 기사로서의 형식이 갖추어 지기 때문입니다.
가끔 방송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상대편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거나 통화는 되었지만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도 반론권을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인 것입니다.
여하튼 기자가 취재하는 것이 감지되면 여러 가지 방법과 방식으로 대응 하여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는 취재기자만 접촉하여야 한다. 큰 건이라면 그날 아침 데스크 편집회의에서 사회면 면 톱으로 잡고 취재지시를 한 것이겠지만 잘잘한 경우에는 출입기자가 한건 올리고 싶어 이러 저리 탐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본사의 부장, 차장을 상대로 취재를 막으려 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데스크도 모르게 출입기자가 시작한 일을 이쪽에서 언론사에 스스로 알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취재기자는 본의 아니게 상세한 취재를 계속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단 출입기자나 사회부 기자의 취재가 마무리된 듯 하고 그 취재가 데스크의 지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면 취재기자의 양해를 얻어 본사 인맥을 통해 연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스크 차장이나 부장과 대화하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하는 것이 평소의 敦篤(돈독)한 유대관계 입니다. 언론 보도는 때로 보험에도 비유됩니다. 즉 사고가 나기를 바라며 보험을 드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사고가 발생하면 그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평소 작은 돈으로 보험에 가입하여 매월 불입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30만원 미만의 수리는 보험처리하지 말고 자비로 지불하라 하던데 작은 사고에 보험을 쓰면 혜택도 없이 보험료만 올라간다고 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 데스크 지인은 큰 사건에 쓰는 것이고 잘잘한 취재 건은 그냥 맞아버리는 것도 전략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조간에 기사가 터지면 더 이상 어필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사 나고 인터넷에 올라가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필하고자 한다면 오전 9시 반 이후 10시경에 전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9시 이전에 전화를 하여도 통화가 어렵고 어제 늦은 시간까지 기사 쓰고 편집하고 교정을 보느라 늦게 퇴근한 우리의 기자가 전화를 쉽게 받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9시 10시 까지는 본사에서 편지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가 나면 그 건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노력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건에 대한 보도내용을 차분히 냉철한 가슴으로 분석해 보면 무조건 나쁜 기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기사의 行間(행간)을 읽어보고 취재기자가 제기한 지적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맞는 부분이 상당하거나 아주 큰 틀에서 좋은 방향을 잡아준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더러 감정적 기사가 있겠지만 이는 그 기자가 평생 감당해야 할 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의 기사라면 그냥 맞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 기사 건으로 담당기자와 친밀해지면 다음번에는 우리부서의 좋은 행사를 크게 홍보하는 기회를 얻는 수업료, 보험료로 생각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기자의 세계도 사람 사는 곳이니 상호 접촉하고 만나고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친밀해 지고 싸운 후에 친구가 되고 작은 기사가 예방주사가 되어 더 큰 병을 막아주는 소득을 얻게 되는 일, 참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공무원이여 기자와 친해지라.‘불가근 불가원’이 아니라 멀어도 좋고 가까워도 좋은 그런 기자를 2-3명 사귀어 둘 필요가 있음을 권고하는 바입니다. 그것이 공직 발전의 지름길이고 언론을 이해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이제야 깨닫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나쁜 기사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o 사회부 기자
기자하면 뭐니 뭐니 해도 사회부에 근무를 해야 합니다. 사스마리 기자라는 호칭은 아마도 현장을 뛰는 초임기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오바리’란 자신의 취재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나오바리를 도는 것은 사건사고가 빈번한 역파(역전파출소)나 북파(북쪽에 사건 많은 파출소를 지칭)를 다니면서 심야에 발생한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지역 경찰과 친해지고 그러다가 대형 사건을 '특종'하게 됩니다. 특종의 반대말은 '낙종'입니다. 특종보다 더 아픈 사건이 낙종이며 특종과 낙종사이에서 고독한 밤을 보내는 삶이 사회부 기자들의 숙명입니다.
[빌려온 글] 이번 인사에서 편집부장이 바뀌었다. 손 아무개 편집부국장은 사회부 선임기자로 발령이 났다. 임무가 막중한 그 자리는 여자 선배가 대신했다. 여자 부장은 회사 역사상 2번재란다. 남녀 차별이 없다고 하긴 그렇지만, 차이를 크게 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보기 좋다.
남녀 사이에 선을 긋지 않은 일만큼 멋진 일이 또 있다. 손 아무개 부국장이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 신문편집을 20년 넘게 해온 분이다. 그 분이 사회부 선임지라로 다음 주부터 사스마리 기자를 맡는다.
보통 편집 기자를 오래한 사람이면 기껏해야 온라인 편집 쪽으로 방향을 잡는게 보통인데 이분은 용감하게 취재를 선택했다. 그것도 사스마리. 이런 선택을 한 선배도, 이런 선택을 믿고 받아준 편집국장과 회사도 대단할 뿐이다. 모쪼록 새로운 길을 가는 멋쟁이 선배, 건필하시고 건강하시라.
편집부 근무하는 후배가 선배 기자가 사회부로 발령 난 상황을 어떤 언론인이 자신의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50세 가까운 나이에 이른바 사스마리 기자로 근무지가 바뀐 것을 걱정하고 여자 선배기자가 편집부장으로 온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남녀평등을 지나 여성이 우위를 점하는 기자사회 참모습을 리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방과 졸업하고 곧바로 기자에 들어오면 같은 과 동기 남학생들은 2-3년 후에 기자가 되니 여성 기자가 더 빠르고 선배로서 자리를 잡는다는 말입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사회부 사스마리 기자 자리에 여성 기자들도 배치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성 기자들이 심야에 비번의 파출소장하고 소주도 한잔 하면서 안면을 익히고 어느 날에는 반드시 대형 특종을 올릴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나 경찰청을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라면 대낮에 소주 2병 먹고 경찰서장 방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가 차 한 잔 마시고 나와야 선배들이 사스마리 사회부 기자로 인정해 주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요즘에는 決行(결행)하기 어려운 미션으로 보입니다.
과거 기자 사회에서 젊은 기자를 호기 있게 키우려는 노력으로 보이며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 밀어버리고 기어 올라오는 녀석만을 키운다는 말과 통하는 바입니다. 절벽에 올라오지 못한 새끼는 어미가 키울 수 없습니다. 절벽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하면 그 아래서 물에 떨어져 익사하거나 다른 동물의 세계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일반 회사나 조직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언론만의 생존법입니다.
현재의 사스마리 기자도 그렇게 밤을 낮 삼아 돌고 도는지는 확인해 볼 일이겠으나 그만큼 사회부 기자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것입니다. 그리고 거친 과정을 이겨내고 정치부 경제부 문화부 체육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자신의 적성과 역량을 발휘하게 됩니다. 다만 영원한 사회부 기자도 있다고 하니 이 또한 그 기자의 숙명인 것으로 이해해 두고자 합니다.
o 기자의 선후배 기준
기자들의 선후배는 나이보다 학교보다 언론에 입문한 연식을 기준으로 합니다. 언론인 간 선배는 참으로 중요 위계로서 군대의 계급 이상으로 그 위력이 강합니다. 언론인은 편집국장조차 "先輩(선배)"라고 부릅니다. 만약에 국장이나 부국장에게 '선배!'하지 않고 국장님이라 부른다면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고 보면 맞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취기가 오르면 자신들의 내부 선배는 물론 동석한 공무원이나 다른 기관 부서장에게도 "선배, 선배!!!"하면서 이런저런 고충을 이야기 합니다. 사실 기자만큼 고충이 큰 직업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밖에서 보면 기자는 기사 쓰면 쓰고 말면 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저녁으로 아침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건이 없다고 신문 3면이 백지로 나가는 것 아니고 큰 사건이 많아도 지면이 늘지는 않습니다. 지면이 잠시 늘어나는 경우라면 대부분 창간 기념일 일 것입니다. 즉 늘 18면 신문 32면에 기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면별로 기사를 채우고 기사가 부족하면 사진을 늘리고 기사 넘치면 사진을 조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기사 몇 개를 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제공하는 보도자료가 잘나고 못 나가는 것은 그날의 운수입니다. 사건사고가 적고 정치권 기사가 약하면 행정기관의 보도자료가 크게 나가는 것이고 반대이면 우리 기사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2단 指摘(지적)기사 정도로 약하게 보도될 것이 4단으로 커지거나 때로는 면 톱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행정홍보성 기사 보도 자료는 일요일 오후에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신문을 만들어 월요일 아침에 가정에 배달해야 하는데 사실 일요일에는 사건사고 이외에는 기사될 재료가 없겠지요. 그런 날 출입처에서 좋은 기사 하나 들어오면 우리의 출입 기자님은 곧바로 기사를 키우고 늘려서 일요일 오후 편집을 마감하고 퇴근하려 할 것입니다.
가장 바보스러운 일은 금요일에 행사를 잡는 것이고 월화수라도 오후 5시, 6시에 보도자료 내는 것입니다. 낮 2시에 행사를 잘 마치고도 정작 보도 자료를 사무실에 돌아와 저녁 5시에 낸다면 참으로 잘 못하는 행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행사를 한다면 미리 이런저런 계획이 있다고 자료 내고 행사했다고 사진과 함께 자료를 언론사에 보내고 며칠 후 그 일들이 잘 되고 주변의 반응이 좋다고 또 한 번 홍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多多益善(다다익선). 오늘 흐르는 강물은 어제의 그 물이 아니듯이 오늘 신문을 보는 독자,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네티즌은 늘 그분들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1980년대 대부분의 회사나 공직에서는 후배가 선배나 고참에게 밥을 산다고 하던데 언론은 늘 선배가 후배를 챙깁니다. 후배에게 무한 리필 맥주 소주 안주를 사는 대신에 선배는 선배로서의 무한의 권력을 행사합니다. 모두가 그러하지 않겠지만 몇 번 마주한 언론인 내부의 선후배 모습은 그러했습니다.
정말로 틀림없이 선배 여기자에게 '선배선배!'하면서 모시고 동갑의 여기자는 그런 선배대우가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때로는 강하게 '해병조교'같은 카리스마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언론인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언론인 조직 안에서 대우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계질서가 때로는 창의력을 말살하거나 조직 내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작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o 기자의 책상
아침 출근한 기자는 무슨 일을 할까요. 우선 출근하여 부장, 차장에게 인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복도에 나가 담배도 피웁니다. 과거 한참 시절에는 기자 책상위에 대형 유리 재털이가 있어서 오전에 한 웅큼 채운 후 비우고 오후에 출입처에서 돌아온 3-4시부터 6시까지 한 번 더 채워준 후 오늘 밤에도 한 번 더 피울 요량이었습니다.
끽연자의 천국이랄 수 있는 1980년대에는 공무원 책상위에도 재떨이가 있고 기자 책상위에도 재떨이가 있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라면 저녁 8시 이후 공무원 책상위에는 전화기만 달랑 남아있는 반면 기자님 책상 위 자료는 3년4년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기자 책상위의 자료들은 정치부에서 사회부, 경제부에서 문화부로 발령 나야 잠시 정리되었다가 후임자가 와서 1개월 쯤 지나면 본모습 그대로 자료가 쌓이게 마련입니다.
이는 출입처 기자실에도 마찬가지인데요 10년 이상 한 기관에 출입한 기자의 책상 위 자료가 쌓인 모습을 보면 마치 지질학자가 쌓이고 싸인 모래 퇴적층에서 고생대 중생대를 구분해 내듯이 갱지와 복사지가 연대별로 쌓이면서 태양열에 의한 숙성 정도에 따라 그 자료 단면의 색이 초코렛 색에서 연한 홍차색으로 변하는 이른바 컴퓨터 문서편집의 '그라데이션 "같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돌탑처럼 그냥 차곡차곡 쌓여있는 자료이지만 본인이 던져둔 자료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5년 후에 판교 환풍구 사건 보고서를 찾는다하면 사회부 기자 10년차이면 3분안에 그 자료 탑에서 원하는 자료를 가져옵니다. 물론 요즘 젊은 기자들은 크라우드 등 각각의 사이버 공간에 자료를 저장할 것입니다만 1990년대 기자들은 책상위에, 그리고 출입처 책상 위와 주변에 이삿집 같은 자료속에서 필요한 책자를 금방 집어 올리는 신기술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와 담배는 소설가의 끽연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1980년대 오른손 펜대를 들고 원고지를 잡으면 왼손에 담배가 있어야 기사가 써집니다. 눈을 찡그리며 자신의 담배연기를 피하면서 그 작은 시야로 넓은 광야의 기사를 이어나갑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눈 크다고 다 보는 것 아니고 실눈 속으로도 이 세상의 정의와 불의가 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책상에는 책, 자료, 사진, 재떨이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지만 요즘 젊은 기자들은 아주 얇은 노트북과 램선으로 모든 기사, 사진, 정보를 주고 받으며 신문을 완성하고 그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옆에 대형 재떨이가 자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을 회상하는 부장급 선배들이 맘 편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30대 시절이 그리울 것입니다.
o 기자, 사진기자, 편집기자
언론인의 하루는 아침 출근은 평온하나 밤늦게 찬란합니다. 조간신문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석간신문이 많았지만 이제는 석간 신문은 줄었고 대부분 조간입니다.
그러므로 기자의 출퇴근 시간은 아침 늦게, 저녁 늦게 입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일찍 퇴근하기를 바라겠지만 기자는 취재하고 편집하고 교정보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밤까지 이어지므로 저녁시간 이른 퇴근을 기대할 수는 없는 운명입니다.
더구나 편집기자는 기사가 들어오는 오후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신문제작 작업을 할 것이고 사진기자는 행사가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가지 현장을 누벼야 할 것이고 그 중간에 대형 화재, 교통사고, 사건사고, 검찰 출두 등이 있을 때 시각에 맞추어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 재미있지만 힘든 직업입니다. 사진 기자들이 재미있어 하는지는 모르지만 행사장에서 수십 번 이상 셔터를 눌러대는 것을 보면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는 것은 확실합니다.
편집기자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편집 또한 묘미와 재미와 자부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편집기자상을 받으신 분들이 그 성과를 보면 참으로 예능작가, 예능PD가 탐낼만한 재치와 시사성을 끌어가는 예리한 눈맵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참쯤 된 간부급 기자들은 후배기자들이 써올린 기사에 취약한 점을 잡아서 보충 취재시키는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가끔 배당되는 데스크 컬럼이나 논설위원실의 자료 요청에 응하려면 귀찮거나 조금 힘이 들겠지만요.
원로 논설위원들은 젊은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평생 언론에서 단련한 탄탄한 어휘 구사력과 적절한 사자성어의 배치를 통해 멋진 원고지 5-6매 사설을 완성하고 이를 넘긴 후 느긋하게 오후의 여유를 즐기시는 맛도 있으실 것입니다. 사설이란 조금 타이밍이 늦어도 되고 때론 늦은 타이밍이 사설의 묘미라고 할 수도 있으며 일단 바글거리던 기사속의 혼란 이후 연기가 걷힐 즈음에 슬며시 던지는 사설은 走馬加鞭(주마가편)입니다. 언론이 이 사회에 공통적으로 던지는 달리는 말을 향한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언론인들을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신문방송의 취재와 편집과 보도의 과정을 조금 곁눈질하면 그리 힘든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론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언론의 속성과 그 기능성에 공감한다면 결코 공무원에게 있어서 언론은 무서워할 상대가 아니고 불편한 존재도 아닙니다. 오히려 상호 도움을 주는 관계입니다.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를 소비자인 국민에게 적기에 소상히 알리는데 언론을 활용할 수 있고 기자는 행정의 업무를 비판하고 바른 방향으로 집행되도록 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 언론 소비자인 독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적기에 전하는 것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입니다. 다만 누가 악어인지 누가 악어새인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o 언론사 1도1사
1988년 7월까지는 기존의 경인일보가 중앙지, 중앙방송과 함께 경기도 언론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연합뉴스는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언론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른바 '1도1사'라 해서 경기도와 인천지역에는 경인일보가 대표 지방언론이었습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들이 당시 '1도1사'의 시도별 대표언론사입니다.
그리고 1988년 경기도에 본사를 둔 경기일보가 창간되었고 인천광역시에는 기호일보와 인천일보 본사가 문을 열었습니다. 1988년 9월부터는 1도1사에서 1도다사의 지방언론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1988년 말까지도 공무원들은 언론사가 매일매일 선의의 기사 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기사가 오늘 나가도 되고 내일 나가도 되는 월간지나 계간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이다.
그리하여 공무원의 실수로 하루 늦게 기사를 쓴 언론사 출입기자가 해당 부서에 엄중 항의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번민을 거쳐서 이제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지방사끼리 경쟁하고 중앙사끼리 경쟁하면서 때로는 상호 보완하고 협력하면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합뉴스는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속의 언론기관으로서 속보성과 상세한 보도, 그리고 전체 지역을 총괄 종합하는 광역성에 힘쓰고 있고 그래야만 언론과 취재원 틈새에서 존재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고 취재원에서도 이를 알고 상호 협력하면서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
o 언론은 나의 편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은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정은 늘상 예산을 집행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분야에서는 사회적 동향이나 행정의 운용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정가들이 어찌 일하고 있는지 어느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를 관찰한다 할 수 있습니다.
군은 국방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역 주민과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주변 주민 국민들의 협력과 참여가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민군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행정은 나중입니다. 국민, 즉 주민이 중요하고 경찰과 군인이 소중하며 행정(관)은 나중이라는 의미입니다.
행정은 그래서 넓게 보는 망원경입니다. 어버이 親자처럼 나무위에 올라가 아들이 오는가 바라보는 심정으로 행정을 합니다.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생각해 보고 판단하고자 합니다. 한가지 법만으로 이 사안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다양한 줄기속에서 이 사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새벽을 맞이하기까지 함께 고생하신 이웃을 생각해 봅니다. 국방을 책임지는 군이 전후방에서 경계를 하고 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경찰관이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소방관은 119를 누르면 달려오고 112는 늘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더욱 치열합니다. 한전의 전기량 조절, 가스회사의 압력관리, 통신사의 밤샘 등 우리의 주변을 둘러싼 필수적인 기관이 이리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든 상황은 지구처럼 둥글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행정만이 존재하는 듯 우리사회를 평면으로 보곤 합니다만 이같이 다양한 분야가 한덩어리되고 지구본처럼 뭉쳐져서 하루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을 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각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패의 균은 폐렴을 이기는 페니실린이 되고 적정한 발효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빵이나 피자나 모두가 효소에 의한 가치의 상승이라고 보는데 이외에도 미세한 균의 활동이나 활약상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을 현실에서 필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서 각각의 기능을 다하도록 판을 잘 짜야 하고 무대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침일찍 만난 참새의 지저귐으로 해서 아이들의 머리가 더더욱 영특해 진다고 생각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가을 단풍이 인간에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하는 능력을 키운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우리모두의 삶이 조물주의 무대위에 올려진 종이인형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거나 태평양을 항해하는 항공모함조차도 2차세계대전 전황실에서 여군부사관들이 이리저리 옮겨보는 종이배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니 깊어가는 가을날에 이르러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조금은 여유로운 자세로 청춘 장년 다음의 시대를 즐겁게 맞이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능이 각각의 위치와 시기가 있음을 알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구와 우주와 인류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언론의 길이 어디인가를 관조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