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채소 부추, 그 알싸한 강인함에 대하여.

오래도록 수확 가능한 기특한 채소 부추.

by 민영

일반적으로 우리가 식재료로 사용하는 채소들은 대부분 단기간 재배해서 수확하지만, 부추의 경우 한 번 심으면 큰 수고 없이 10여 년간 재배가 가능한 채소다.


마치 도시전설처럼 한 번 심으면 죽이기가 더 어렵다는 부추.

채소계의 산세베리아 같은 녀석이다.


나의 화분텃밭에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하고 있는 부추가 있다.


당연히 그 긴 시간동안 좋은 날만 있었을리 만무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은 겪는다는 암흑같은 시기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 거렸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날들을 극복해 내는 동안에는 식물들을 알뜰히 챙길 정신적 여유도, 지식도 없었던 무지한 식집사였다.


덕분에 많은 식물들을 떠나보냈지만, 부추만큼은 거름기 없는 좁디좁은 화분에서 홀로 새 잎을 올리고, 꽃을 피우며 그 지난한 시간을 함께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다 지나간다.


매일의 갑갑함 속에서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래도록 팽개쳐있던 흙 뭍은 화분들을 꺼내와 빗속에서 화분 설거지를 했다.


너덜 해진 수세미를 들고 온몸에 비를 맞으며 빈 화분의 흙먼지를 닦아냈다.

세제 한 방울 안 썼지만 내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화분들이 제 색을 띄었다.


세척이 끝난 화분들을 크기에 맞춰 착착 포개던 그 순간에는, 엉망진창인 현실도 이렇게 정돈되는 것만 같아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현실의 문제들은 꼬리 잡기를 하듯 주위를 떠나지 않았지만, 화분을 만지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비워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한동안 챙기지 못해 말라죽은 나뭇가지와 병든 잎들을 제거했고, 벌레가 꼬인 흙들을 비워 내었다.


구석에서 혼자 살아남았던 부추 화분도 뽀얗게 닦아 냈다.

푸석한 흙을 뚫고 올라온 초록의 부추 줄기 사이로 뽀얗고 하얀 부추꽃들이 '이제 괜찮아졌냐?'라고 묻는 듯 곱게 피어나 있었다.

부추꽃이 단정하게 피어나있었다.


나도 꽃


가냘프게 피어오르는 하얀 부추꽃은 부추를 질기게 하고, 부추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바로 제거해 버리는 대상이기에 일반적으로 부추를 구입해서 먹는 소비자들은 만나기 힘든 꽃이다.


부추 줄기 사이로 총총 고개를 내민 부추꽃대를 여럿 따다가 작은 컵에 꽂아두면, 화원에서 사 온 꽃 부럽지 않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려나..


밥반찬으로 익숙한 채소가 이리 고운 꽃을 피워내는데,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꽃을 볼 기회조차 없다니..

이것 말고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본다.



관심을 원하는 채소.


우리 집에서 고생을 해서 그렇지 본래 부추는 물도, 햇빛도, 거름도 좋아하는 욕심쟁이 식물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긴 터널을 뚫고 나온 후 이사를 가자마자 가장 먼저 부추 분갈이를 했다.


힘겹게 버텨준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40리터 큰 화분 2개에 부추 뿌리를 나눠 심어 두고, 빛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매일 물을 챙기고 혹시나 화분에서 영양분이 모자랄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분기에 한 번은 넉넉히 거름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진 세월을 견뎌냈으니 새 화분에서 영양을 충분히 흡수하고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살뜰히 챙겼다.

새로 옮긴 화분과 새 흙에서 삐죽삐죽 초록 부추싹들이 연이어 올라오며 몸집을 키워냈다.


금새 자라나는 부추



큰 화분으로 옮겨줬을 뿐인데, 부추는 분갈이 몸살 한 번 없이 더 많은 것을 되돌려 주었다.


그날 이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먹기에 넘치도록 많은 부추를 2주마다 수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풍성한 부추들은 우리 부부가 소비하기도 하고, 깨끗하게 세척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기도 한다.


이민생활에서 한식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무농약의 신선한 식재료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기쁠 수밖에 없기에, 나의 부추는 지인들에게도 환영 받는 텃밭 채소다.


벌써 몇년을 화분에서 키운 부추가 나와 지인들의 식탁을 채워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힘든 시기를 함께 지나온 동지이자 반려식물, 부추.


간단한 밥 반찬이 되기도 하고, 식집사의 게으른 느린 걸음에는 고운 꽃을 선물하기도 하는 녀석.


지금도 수 많은 식물들과 채소들이 나의 화분텃밭에 가득하지만, 어떤 채소도 부추보다 애틋한 마음을 같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


가볍게 여길 수 있는 풀 한 포기에 지나지 않지만, 부추 특유의 따뜻한 성질 탓인지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모를 따뜻한 충만함이 내가 기른 부추를 먹을 때마다 느껴진다.


얼마전 화분을 늘려 심어 둔 부추들을 챙기러 가야겠다.

모두 잘 자라주길. 오래 함께 해 주길 바라본다.



https://youtube.com/shorts/GLsnRacGnDA?si=Tbbxii2ZZHEsHlLn

#부추 #식집사 #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