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채소 근대, 크고, 맛좋은 채소.

큼직한 잎과 굵은 줄기를 가졌지만 어떤 채소보다 부드러운 채소.

by 민영

Acelga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한국에서는 '근대'라는 친숙한 이름의 채소.


주로 국과 나물로 식탁에 오르는 식물인데, 내가 사는 이곳에서는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4~5장의 잎사귀를 하나하나 떼 내어 끈으로 묶어서 판매한다.


커다란 잎사귀의 기세에 눌리고 어릴 적 먹어 본 기억이 없는 채소라 마트에서 볼 때마다 기피했었던 녀석이다.

그러다 지난겨울 우연히 구입한 씨앗을 파종하였고, 지금은 나의 '화분텃밭' 한 자리를 꾀차고 있다.



파종과 성장


별사탕처럼 생긴 큼직한 씨앗을 가진 '근대'는

한 뼘가량의 간격을 두고 한 구멍당 두 알의 씨앗을 파종해 준다.

다른 채소들보다 발아율이 높은 편이니 한 번의 재배 경험이 생기면 구멍당 한알씩 심어도 무관할 듯싶다.


발아 때까지 매일 물을 주었고 특별히 온도 관리를 해 주지는 않았다.

파종 후 열흘가량 지나니 시금치와 비슷한 모양의 새싹이 돋고 이내 키를 키웠다.


시금치 잎을 닮은 본잎이 올라오면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는데 첫 주에는 손가락 하나 굵기로, 두 번째 주에는 손가락 두세 개 굵기로 자란다.

새싹이 오르고 대략 45일가량 지난 시점부터 수확할만한 사이즈의 잎사귀로 자라는데, 잎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전까지는 김밥용 시금치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식집사 첫 해부터 지금까지 성공한 적 없던 '시금치' 재배.

그 한을 '근대'를 키우며 푸는 기분이다.



파종 후 45~50일 경과한 근대. 성인 여성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난 근대 사이즈로 자라났다.



어릴 적 모습은 '시금치'와 유사하지만 성격만은 훨씬 유순한 것인지, '근대'는 자라는 동안에도 큰 병충해나 잎마름 없이 매일 눈에 띄게 성장했다.


파종 후 60일 이상이 경과하자 잎 사이즈가 다이어리 크기로 자라났고, 더러는 성인 여성 얼굴 크기로 자라나기도 했다.


가정에서 재배한 채소의 크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현실감 없는 성장력이다.


아마도 화학비료를 추가해 주었다면 마트에서 판매하는 거대한 사이즈로 키우는 것도 가능했을 법 싶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키우는 화분 텃밭 식물들에게 무분별한 화학비료를 제공하지 않고, 자라난 몬디 모습 그대로 가꾸고 취한다.


파종 후 60일 이상 경과하여 폭풍 성장한 근대


수확


이렇게 잘 자라난 근대는 밑동을 가위로 자르거나 손으로 꺾어내어 수확하는데, 튼실하게 자라난 근대잎을 수확하는 재미에 빠지면 정신을 놓고야 만다.


신이 나서 한참을 부엌 가위로 싹둑싹둑.

트레이 가득 근대잎이 쌓인다.

완벽한 모양의 근대잎
큼직하게 자라난 근대잎


커다랗게 자라난 근대잎은 부엌으로 가기 전에 마당 한편에 자리한 수돗가에서 1차 세척을 한다.

다행히도 벌레가 좋아하지 않는 식물인지 흔한 진딧물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흙먼지를 제거하려면 여러 번의 세척은 필수이다.


이곳처럼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세척이 덜 된 야채를 먹고 탈이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고통스러운 시간을 '아메바 감염이나 장염인가 봐.'라는 막연한 진단과 의미 없는 수액을 맞으며 견뎌야 한다.


타국에서 아프면..

정말 서럽다.




이렇게 멋진 근대를 요리하기 위해 번잡스러운 세척 과정을 여러 번 거친 후에 물기를 툴툴 털어 준다.

칼질이 어려울 만큼 커다란 근대잎을 서걱서걱 썰어 두고 짭짤한 된장 세 스푼과 다진 마늘 한 스푼, 약간의 소금과 코인 육수로만 간을 하여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낸 두부와 함께 맑은 된장국을 끓여낸다.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마당에서 키운 매운 고추를 쫑쫑 썰어 매운맛을 더해주면 목 넘김이 부드러운 근대 된장국이 완성된다.


고봉밥을 듬뿍 담아 화분에서 키운 부추로 무침을 해 내어 오고 조촐한 반찬 몇 개와 함께 구수하고도 칼칼한 근대 된장국을 곁들인 상을 차린다.


매일 물과 양분을 챙기며 키워낸 채소들로 차려낸 식탁에 마주 앉아, 월화수목금요일 간 쌓여있던 각자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털어낸다.



식물에 관심 없던 남편도 매일의 루틴이 된 물 주기를 통해 아내의 중노동 취미를 돕는다.


귀찮고 무거운 취미.


은근히 시간과 돈이 드는 취미이지만 근대처럼 존재감이 확실한 채소를 키우고 수확할 때에는 그간의 힘든 노동은 재미가 된다.


식물 키우기는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식물들은 언제고 식집사의 챙김을 튼실한 결과물로 보답한다.

식물에게 쏟은 그간의 정성을 다시 오물오물 씹어 내 몸으로 만들고 다시 기운을 내어 살아가게 해 준다.


이렇게 유익한 관계라니. 이렇게 해피엔딩이라니.


너무나 완벽한 취미생활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w4gQUvIrS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