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채소 근대, 크고, 부드러운 채소.

큼직한 잎과 굵은 줄기를 가졌지만 어떤 채소보다 부드러운 채소.

by 민영

주로 국과 나물로 식탁에 오르는 채소 '근대'.

이곳에서는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낱장으로 떼어낸 근대잎 4~5장을 끈으로 묶어서 4천 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이곳 마트에서야 흔하게 보는 채소이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한국에서 근대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먹어 본 적은 없는데 이름만 알고 있는 채소.


낯선 채소이며, 조리하기 부담스럽게 커다란 잎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번도 우리집 식탁에 오른 적이 없던 녀석이다.



파종과 성장


마당에 뿌릴 여러 종류의 씨앗을 사러 들른 가게에서 근대 씨앗을 발견했다.

키워본 적 없는 채소지만 다른 씨앗을 구매하는 김에 곁달이로 함께 구매한 것이 근대와 나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손바닥만한 씨앗 봉투에서 마르고 건조한 덩어리들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씨앗이 큼직한가본데?'

봉투를 열자 별사탕이 커다란 근대 씨앗이 얼굴을 보였다.



근대는 처음 시도하는 식물이였기에 씨앗마다 한 뼘가량의 간격을 두고 한 구멍당 두 알의 씨앗을 파종해 주었다.


2주쯤 지나니 파종한 거의 대부분의 씨앗이 발아했다.

다른 채소들보다 발아율이 높은 편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후에는 한알씩 심어도 무관할 듯 싶었다.


근대는 떡잎과 본잎 모두 시금치 잎을 닮았는데 본잎이 올라온 이후부터는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파종 후 대략 45일가량 지난 시점부터 수확할만한 사이즈의 잎사귀로 커져서 초반의 지루함을 상쇄시켜준다.

아마도 시금치 재배를 성공했다면 근대와 비슷한 성장 속도와 모양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식집사 첫 해부터 지금까지 10년을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던 시금치 재배의 한을 근대를 키우며 풀어내는 듯 했다.


파종 후 45~50일 경과한 근대. 성인 여성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난 근대 사이즈로 자라났다.


근대는 큰 병충해나 잎마름 없이 빠르게 성장했다.

마트마다 커다란 크기의 근대가 흔했던던 이유는 이렇게 성장이 빠르고, 잔병치레가 적기 때문이었다.


파종 후 2개월 남짓 지나니 성인 남성 손보다도 크게 자라난 근대잎에 화분이 복닥거렸다.


가장 겉잎부터 차례차례,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내 수확을 했다.

손으로 줄기를 끊어내도 되지만, 섬유질의 단단함에 잘리는 단면이 영 거칠고 난잡스러워서 가위를 추천한다.


큰 정성 안 들이고 키워낸 채소중에는 수확의 결과물이 가장 근사한 녀석이다.


근대는 장마철과 한겨울을 제외하면 한국에서도 쉽게 키울 수 있는 채소라고하니, 베란다에서 화분텃밭을 일구는 식집사들도 쉽게 도전해 볼만하다.


큼직하게 자라난 근대잎


튼실하게 자라난 근대잎을 주말마다 수확했다.


커다란 초록잎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몰래 신이 올라 부엌가위를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의 가위질을 마치고나면 다 먹지도 못 할 만큼의 양이 트레이 가득 쌓이기 일쑤였다.


수확한 근대잎은 부엌으로 가기 전에 마당 한켠 수돗가에서 1차 세척을 한다.

다행히도 벌레가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라 흔한 진딧물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래도 튼실한 줄기의 골마다 흙먼지가 쌓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손톱을 세워 세척해 주어야 조리 후에 서걱거리는 이물감도 없고, 배앓이의 걱정도 없앨 수 있다.


이곳처럼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세척이 덜 된 야채를 먹고 탈이 나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한 고통스러운 시간을 막연한 진단과 의미 없는 수액을 맞으며 견뎌야 한다.


병원비는 왜이리 비싼지, 타국에서 아프면 정말 서럽다.


그러니 내가 키워낸 채소들이라도 2중, 3중의 세척 과정은 필수다.



완벽한 모양의 근대잎


맛 보는 시간.


열심히 키워낸 근대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 만만한 된장국으로 메뉴를 결정했다.


칼질이 어려울 만큼 커다란 근대잎을 서걱서걱 썰어 두고 짭짤한 된장 세 스푼과 다진 마늘 한 스푼, 약간의 소금과 코인 육수로만 간을 하여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낸 두부를 더해 맑은 된장국을 끓여냈다.


칼칼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마당에서 키운 매운 고추를 쫑쫑 썰어 매운맛을 더해주면, 부드러우면서도 얼큰한 근대 된장국 완성!


고봉밥을 듬북 담아 화분에서 키운 부추로 만든 부추 무침과 조촐한 반찬 몇 개를 함께 내어 구수하고도 칼칼한 근대 된장국을 곁들인 상을 차린다.


매일 물과 양분을 챙기며 키워낸 채소들로 차려낸 식탁에 마주 앉아, 월화수목금요일간 쌓여있던 각자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털어내는 시간.


식물에 관심 없던 남편도 매일의 루틴이 된 물 주기로 키워낸 채소 반찬을 먹으며 아내의 중노동 취미를 돕는다.


귀찮고 무거운 취미 = 완벽한 취미.


식물을 가꾼다는 것은 은근히 시간과 돈이 드는 취미이지만 근대처럼 존재감이 확실한 채소를 키우고 수확할 때에는 그간의 힘든 노동은 재미가 된다.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식물들은 언제고 식집사의 챙김을 기억하고 튼실한 결과물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전문 농사꾼처럼 대량 재배를 할 자신은 없지만 소소하게 화분텃밭을 일구며 내 식구의 먹걸이를 생산해내는 나날들.

타국만리에서 한국의 맛을 즐기기 위해 키워낸 식물들을 챙기는 동안 번잡하고도 외로운 일상을 다독인다.


식물에게 쏟은 그간의 정성을 수확해 요리한다.

내가 차린 식탁의 음식들을 오물오물 씹어 다시 내 몸으로 만들고, 또 기운을 얻어 살아간다.


이렇게 유익한 공생관계가 또 있을까?

정말 너무나도 완벽한 취미생활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w4gQUvIrS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