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이상 되어야 수확 가능한 아스파라거스와의 동거.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욕심을 내지 않았던 삶을 살아서일까?
평소 나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 없는 편이다.
그런 내가 친정 엄마의 화단에서 만난 아스파라거스를 보고 오랜만에 무언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늦여름.
오랜만에 휴가를 온 딸을 위해 전라도식 푸짐한 상을 차려내시던 엄마는 갑자기 뒷마당으로 향하셨다.
몇번의 손놀림.
톡! 소리와 함께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들이 엄마 손에 쥐어져있었다.
구워 먹거나 데쳐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아스파라거스를 오리엔탈 소스 느낌으로 만든 샐러드드레싱과 함께 버무려서 주셨는데, 감칠맛 나는 요리보다도 텃밭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아무렇지 않게 가져오시는 그 모든 동작과 상황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천국
신선한 야채를 직접 키워드시는 엄마를 보면서 나의 노후가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그마한 시골집 앞마당에는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돌로 쌓아 올린 담장이 있는 뒷마당에는 과일이며 채소가 가득하다.
고향 땅에 내려오셔서 10년이 안 된 시간 동안 키워오신 수많은 채소들과 과일들이 엄마의 밥상과 일상을 채우고 있었다.
단감나무, 사과대추나무, 복숭아나무, 아세로라와 비파나무, 토마토, 상추, 아스파라거스, 무화과..
식집사의 천국이 거기 있었다.
욕심
나도 아스파라거스를 키워서 먹고 싶었다.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스파라거스 씨앗을 사서 작은 화분에 파종했다.
며칠이 걸려서 발아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발아율도 보증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한참을 텅 비어있던 화분.
어느 날 삐죽삐죽 아스파라거스 싹이 올라왔다.
싹이 오른 후 아스파라거스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더니 키가 한 뼘 가량으로 커지는데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함초와 유사해서 아스파라거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일반적으로 사 먹는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하지 않고 키우면, 상단에 오므려져 있던 잎 부분이 펴지면서 이렇게 이색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성장과 기다림
볼펜 심지보다도 얇은 줄기는 대나무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리듬을 타며 키를 키워갔다.
가느다란 잎들이 산발을 하고 자라나는 시기에 식집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기가 넘어지지 않게 테두리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다.
뿌리가 구근처럼 자라나는 아스파라거스는 토마토나 다른 식물들처럼 줄기에 바짝 붙여서 지주대를 대어 줄 수 없으므로 화분 테두리를 아우르는 지지대를 설치해 주었다.
처음 키워본 탓에 아스파라거스의 성장 속도를 알지 못해, 열무를 키우던 작은 화분에 파종했더니 5개월 만에 화분을 꽉 차도록 자라나 버렸다.
줄기의 길이도 2미터 남짓 자라나서 더는 작은 화분에서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분갈이를 감행해야 했다.
식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화분이라면 단연 부직포 화분이라 할 수 있다.
(플라스틱 화분은 딱딱한 소재로 인한 뿌리 엉킴의 문제가 크다.)
부직포 화분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보관이 용이하고 물 빠짐도 좋으며, 무엇보다 뿌리들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천 소재라서 생장에도 용이하다.
이번에도 큰 사이즈의 부직포 화분을 꺼내 들고 5개월간 비대하게 자라난 아스파라거스들을 옮겨 심어 주었다.
성장, 그리고 또 성장
뿌리내림에 성공한 아스파라거스는 부직포 화분에서 매일 다른 모습으로 자라났다.
키는 더 안 자라도 될 것 같은데, 2m가 훌쩍 넘기고 쉽게 담장을 넘는다.
가느다란 잎들이 사방으로 펼쳐진 장대 같은 아스파라거스.
이 난잡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식집사의 또 다른 어려움이다.
다른 식물들이 이렇게 자라난다면 가위질을 면치 못 하겠지만, 최소 1년간은 광합성을 통해서 뿌리를 키워내야 다음 해부터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할 수 있으니 마음속에서 '참을 인'자를 수백 번 고쳐 써야 한다.
(아스파라거스와 생강을 같은 시기에 심으면 스트레스가 절정에 다다른다.)
무성한 아스파라거스잎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잎이 누렇게 떠서 가루 날리듯 날리는 광경을 몇 개월 지켜보다 보면 식집사가 소망하던 가위질의 날이 찾아온다.
잎과 줄기가 누렇게 변하며 마르면, 비로소 청소 작업을 감행할 수 있다.
수확
해가 바뀌고 누렇게 변한 줄기들을 모두 제거한 아스파라거스 화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들을 밀어내고 전년보다 굵직한 아스파라거스 새 싹이 올라왔다.
한번 흙 위로 올라온 아스파라거스는 분 단위로 그 크기가 다르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수확시기를 하루 늦어버리면 고사리보다 길게 자라나고 이내 잎사귀를 펼쳐버린다.
덕분에 요즘의 식집사는 퇴근과 동시에 아스파라거스 화분으로 직행해서 싹이 올라왔는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엄마의 텃밭이 부러워 파종한 아스파라거스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수확하기 시작했다.
욕심이 만든 수확이라고 해야 할까?
2년 차에 접어든 아스파라거스는 굵은 줄기 몇 개를 다시 키워서 햇빛을 받게 해야 한다.
사이드에서 자라나는 아스파라거스는 채취해서 먹는데, 한 해를 잘 견뎌내면 3년 차부터의 수확량이 월등히 늘어난다.
내년부터는 지인들과 나눌 정도의 수확량을 기대하며 매일 화분텃밭의 아스파라거스를 살핀다.
새 순이 돋아나고 다시 잎을 펼쳐내면, 평년보다 무더울 것이라는 올 해의 여름을 견딘 아스파라거스가 튼튼한 뿌리를 키워 낼 것이다.
굵은 뿌리에 저장한 한 해의 빛을, 내년 이맘때쯤 먹음직스러운 아스파라거스로 돌려주리라 기대해 본다.
매일 퇴근 후 똑똑 끊어 모은 나의 아스파라거스들.
한 주간 모아놓은 아스파라거스들을 버터에 볶아서 맛을 봐야지.
내가 키운 햇빛과 시간의 맛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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