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채소 갓, 기억이 만들었던 편견.

오 마이 갓.

by 민영

가끔 남편 혼자 장을 보러 가는 날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주말 세차를 하는 날.

세차 이후에 별도의 약속이 없는 날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과 한인마트를 들러주기를 부탁한다.


필요한 품목들을 메시지로 보내주지만, 나보다 손이 큰 남편이 사 오는 먹거리들은 늘 목록에 있는 것들보다 다양하고, 양이 많다.


아내는 음식량 조절이 안 돼서 항상 6인분 이상을 만들고, 남편은 손이 커서 집이 잡화점이 돼 가는 일상.

언제든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말 그대로 수저 한벌만 추가하면 되는 곳이 우리집이다.




트렁크 가득 찬 물건들 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지 대충 상상할 수 있다.

목록에 있던 물건들과 남편의 기호를 반영한 물건들이 6:4 비중으로 뒤섞여있다.


주로 남편이 먹고 싶은 주전부리들과 무용한 플라스틱 용품들인데, 그 사이에서 '장'을 봤다는 것의 어필을 위한 여러 김치 종류들이 추가로 딸려온다.


그중 가장 애물단지가 되는 것이 갓김치인데, 전라도 여자를 위한 배려인 듯 하지만, 나는 갓김치를 먹지 않는다.


15년간 아내가 갓김치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을 텐데, 무의식 중의 배려로 다양한 김치를 사다 주는 듯하다.


그 마음이 기특하니 별 내색하지 않는다.


다만 내 고향은 갓으로 유명한 지역도 아닐뿐더러, 몇 개월을 묵혔는지 알 수 없는 듯한 비주얼의 한인슈퍼 갓김치는 정말 처지 곤란이다.


잘게 썰어 볶음밥도 해 보고, 양념을 물로 씻어내어 쌈채소와 함께 먹어도 봤지만 커다란 갓으로 만든 질긴 식감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맛은 갓에 대한 선입견을 더 확고하게 해 주었다.



씨를 샀으니 뿌려는 볼게.


평소 들르지 않는 마트에서 '청갓'과 '돌산갓' 씨앗이 입고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입해서 파종해 봤자 '고수'처럼 먹지 않고 뽑아버릴 것 같았지만, 키워주면 갓김치를 담가서 먹겠다는 지인의 메시지가 생각나 겁 없이 씨앗을 구매했다.

내가 먹지 않더라도 갓을 키우는 경험을 할 수 있을테니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였다.


불확실한 발아율을 감안해 줄뿌림으로 여러 개의 씨앗을 뿌렸는데, 생각보다 발아율이 높았다.


일조량이 풍부해야 한다길래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키웠는데, 이 나라의 일조량은 한국과는 다를 것이 뻔하니 걱정이 앞섰다.

겨우 발아한 새싹들이 버티려나? 청벌레나 진딧물은 얼마나 많으려나?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는 채소이니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게 하면 모두 뽑아버릴 심산이었다.


돌산갓과 청갓을 파종했다.


푸르게 푸르게.


돌산갓과 청갓은 이름처럼 각각 다르게 자라났다.

솔직히 두 종류의 갓이 무엇이 다른지 전혀 몰랐기에, 둘 다 일반적인 갓처럼 까슬하게 자랄 줄 알았는데, 돌산갓은 잎사귀가 더 넓적하고 잎이 맨질했다.


청갓은 돌산갓보다 성장이 느렸고, 잎 표면에 자잘한 가시들이 돋아있어 만지기가 꺼려졌다.

'인간도 만지기 싫은데, 벌레들이라고 좋아하겠어?'

벌레 걱정은 덜어도 되겠다 싶어 화분 전체를 덮었던 방충망을 거둬주었다.


벌레와 병충해로 귀찮아지면 모두 뽑아버리려던 생각과는 다르게, 방충망을 거둔 후로 갓들은 더 왕성하게 성장했다.


멀리서도 존재감이 확실하던 초록잎들이 키를 높여가며 잘 자라주니, 욕심을 내어 액비를 주기도 하고, 웃거름도 추가해 주었다.

본잎들이 자라기 시작한 청갓과 돌산갓이 푸르다.


언제나 문제는 욕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갓의 성질을 간과했다.

과한 양분에 푸르던 잎사귀들이 누렇게 변하더니 절반 이상의 갓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누렇게 변한 잎들을 급하게 제거하고 매일 물을 흠뻑 주어 비료 성분을 흘려보내야 했다.

과습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물 빠짐이 좋은 화분에 심은 것을 믿고 4일 이상을 물로 비료를 씻어냈다.


식집사의 안절부절에 갓들도 감복한 것인지 일주일을 꼬박 앓던 갓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당분간 비료는 없다.'


화분텃밭 식물들의 영상을 보던 친구가 비료를 많이 주냐고 물어왔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라고 답했다.


갓뿐만 아니라 화분텃밭의 다른 식물들 모두 추비는 1년에 두세 번으로 제한적이다.

얼마의 양을 주어야 적정한지까지는 학습하지 못한 식집사인지라, 영양이 부족한 듯 키우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배웠다.


간헐적 단식이 좋다고 하니, 식물들에게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기를 바라본다.


청갓과 돌산갓의 어린잎들이 제법 자라났다.


부드러울 때 채취하는 재미.


갓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커다란 잎사귀와 잎들이 시작되는 뭉뚝한 부분의 질긴 식감 때문이었다.

다 큰 갓잎은 크고 질기니 이래저래 입안 촉각이 예민한 내가 좋아하기 쉽지 않은 채소였다.


날이 갈수록 화분에서 키우는 갓은 점점 커지고 많아졌는데, 갓김치를 이야기했던 지인분이 갑작스레 한국에 가시게 됐다.


'그럼 이걸 누가 먹나?'

날이 갈수록 내가 싫어하던 갓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자라날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이 아직 어린 갓잎들의 수확을 감행했다.


손바닥만 하게 자라난 갓잎이 푸르다.


수확은 즐거워.


어린 갓잎들을 수확하는 데는 바구니 외에 별다른 장비는 필요 없다.


어릴 적 소꿉놀이 가방이 생각나서 동네 잡화점에서 구입해 왔던 바구니에 막 채취한 갓잎들을 모았다.


내가 키운 채소를 수확하는 소리는 가장 듣기 좋은 ASMR이다.

손톱을 새워서 똑똑.


까슬한 갓잎들을 수확했다.


조용하던 '화분텃밭'에 갓 소리가 더해진다.


부드럽고 잎이 넓은 돌산갓은 키울 때도 순하더니 수확하는 날에도 손에 부드럽게 쥐어졌다.

가시가 성성한 청갓은 맨살이 따가울 정도로 자기주장이 확실했다.


한 잎 한 잎 끊어낼 때마다 알싸한 갓 냄새가 은은하게 마당에 퍼졌다.

향기에 민감한 식집사라면 갓을 채취하는 재미가 더 좋았을 것 같다.



먹잘알 식집사의 주말 메뉴가 되다.


바구니 가득 채취한 갓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옆에서 자라고 있던 파와 상추를 함께 수확했다.

갓과 파를 넣어 겉절이를 무쳐내고, 간단하게 차돌박이를 구워 갓김치 비빔밥을 했다.


뜨끈한 밥에 막 버무린 겉절이를 가위로 뚝뚝 썰어 넣고, 참기름 한 바퀴 휘휘.

고소하게 구운 차돌박이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고추장 양념으로 싹싹 비벼냈다.


남은 고기는 함께 수확했던 상추에 싸서 곁들여 먹었는데, 밥 한 공기 양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항상 비빔밥은 부지런히 먹었음에도 점점 양이 더 늘어나는 기분이다.


말로만 하는 다이어터인 우리 부부 나름의 건강식은 언제나 과식으로 끝이 난다.


햇살 좋은 주말 아침, 화분에서 키워낸 채소들을 바구니 가득 수확했다.


지인을 위해 키우기 시작한 '갓'을 다 자라기 전에 채취해서 가볍게 겉절이로 버무리니 맛이 좋았다.

어린잎이지만 알싸한 맛이 가득해 제법 '갓'다운 맛을 보인다.


몇 번 먹어본 적도 없던 갓김치가 남긴 거부감의 기억이, 40년 넘는 세월이 지나 이제야 사라졌다.

내 손으로 키워낸 채소를,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먹으니 그간 싫어하기만 하던 것의 이미지가 이리 달라 보인다.


싫어하는 무언가를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식물을 키우며 다시 배운다.

화분텃밭에서 키워낸 식물들이 미숙한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 이리 많다.


이러니 새로운 식물을 계속 집에 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 주말도 '화분텃밭'에 새로운 식구를 들일 준비를 한다.



https://youtube.com/shorts/hT7_GzLS1bg?si=MIz3dr-X21TYs_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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