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식물 딸기, 익숙한 맛을 찾아서.

세상 어디보다 맛없는 딸기의 나라에서 한국 딸기 맛을 구하다.

by 민영

한국은 세계 제일의 먹거리 나라다.

각 끼니와 디저트까지 어느 하나 어설픈 맛이 없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한국의 것'은 일정 수준의 맛이 바닥값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 기준이 너무 높은 탓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어디를 가서 어떤 음식이나 과일을 먹어도 비교 대상이 '한국 것'이 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준이 너무 높은 탓에 해외에서 먹는 먹거리들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갖은양념이나 조리법을 거쳐야 하는 음식들은 차치하고, 특히나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과일이다.


복숭아, 참외, 자두와 딸기, 수박과 배는 외국 어느 나라 것을 먹어도 한국 것 만큼 맛있지 않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국뽕이 차오른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면, 외국에서 먹는 과일의 맛과 향이 한국의 것보다 약한 탓에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는 나는 '그것'들이 '과일'이라는 느낌보다 아삭한 식감만 남은 '무 (Radish)'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국에서 먹는 제철 과일의 색감과 진한 향기, 큼직한 크기와 달콤한 과육을 흉내 낼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 만세다.



딸기를 심었다.


참깨 크기의 딸기 씨앗을 키우기 시작했다.


화분을 따로 할애하기 애매해서 봄동배추 화분의 가장자리에 딸기를 심어두었는데, 봄동배추가 너무 잘 자라던 시기라 온 신경이 배추에 쏠려서 작디작은 딸기 싹이 자라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길을 줄만 하면 딸기잎이 누렇게 변하며 시들기를 반복한 탓에, 도무지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듯 해 관심 밖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딸기를 심고 몇 개월간 화분텃밭의 살림이 늘어났고, 대대적인 분갈이와 새 식구 맞이에 분주했던 덕에 딸기가 자라나는 동안 사진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부추, 배추, 참나물 같은 채소들을 부직포 화분으로 옮기는 분갈이를 하게 되었고, 봄동배추를 옮기는 중에 함께 있던 딸기를 분리해야 했다.

한 뼘 크기로 자라난 딸기

큼직하게 잎을 펼치던 봄동배추의 등살에 관심을 받지 못했던 딸기는, 어느새 한 뼘 크기의 폭으로 자라나 있었다.


이 정도 크기로 자라나면 열매를 열려 낼 만한 힘이 있다는 의미였기에, 10리터들이 부직포 화분의 가장자리에 딸기를 하나씩 심어 주었다.


화분 가장자리에 딸기를 옮겨 심어주었다.


진작 옮겨줄 걸


화분의 정 가운데 식재해야 하는 일반적인 식물들과 다르게, 딸기는 화분의 가장자리에 심어야 한다.


딸기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면 그 무게 때문에 딸기 꽃봉오리 부분이 아래로 축 처지며 자라나는데, 이때 딸기 열매가 흙에 닿지 않고 공중에 매달려있게 하려면 화분 가장자리가 가장 적합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초록잎이 푸르기만 한 딸기가 언제 꽃대를 올려줄지 알 수 없었지만, '식집사의 삶'이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7할이므로, 열리지도 않은 딸기 열매를 상상하며 화분 가장자리에 딸기를 옮겨 심었다.


분갈이의 영향으로 다시 잎사귀가 누렇게 변할지 몰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느 정도 크기로 자라난 딸기는 어릴 적의 못 된 버릇을 이어가지는 않았다.

같은 Berry류의 식물인 라즈베리처럼 엉망진창으로 자라나며 나약할 줄 알았는데, 이 녀석, 제법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식물로 성장해 있었다.


강한 생명력을 보이던 딸기는 부직포 화분에 옮겨 심어준 뒤 일주일가량 지나자 줄기 가운데서 새 잎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내 꽃봉오리도 따라 올라왔다.

딸기 꽃대가 고개를 드밀고 올라오는 중이다.


다시 하루가 지나 잎사귀들 사이에서 딸기 꽃받침이 솟아오르더니 이내 하얗고 동그란 꽃이 피어났다.


이 작은 꽃이 자라나서 딸기가 되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하얗게 핀 딸기 꽃


척 보면 압니다.


자그맣고 하얀 딸기꽃은 암술과 수술이 오밀조밀 함께 있다.


딸기는 꽃 모양만 보아도 이 녀석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날지 짐작이 가능한데, 딸기꽃 가운데 암술 부분이 수정에 성공하면 우리가 아는 딸기 모양으로 봉긋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암술 부분이 빈약한 녀석은 산딸기만한 크기의 작은 열매를 열려내거나, 자라는 동안 모양이 이상하게 형성된다.


단편적인 겉모습으로 전체를 지레짐작하는 것은 편견이라지만, 식물에 관해서는 대부분 잘 들어 맞는 편이다.

딸기 꽃이 진 자리에 자그마한 딸기 열매가 자라났다.


시간이 필요해.


호박이나 오이처럼 인간의 손을 빌려 수정시킬 필요는 없지만, 곤충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퍽이나 난감하기에 처음 피어난 꽃을 보자 조바심이 났다.


그렇지만 생업에 쫒기는 식집사가 꽃이 펴있는 낮시간에 찾아와 붓으로 수정 시키줄 수도 없는 노릇.

낮 동안에 여러 종류의 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기를 바라며 희망 회로를 돌려야했다.


꽃이 지고, 수정에 성공한 초록의 열매가 촘촘하게 씨앗을 채우고 커져갔다.

이때 물을 말리면 열매 농사는 산으로 간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충분히 주어 한낮의 타는듯한 기온을 견디게 해 준다.


수분을 가득 머금고 과육이 살을 찌우면서 내가 아는 '딸기' 모양으로 자라났다.


초록의 과육은 흰빛으로 연해지다 이내 붉게 물들었는데, 이때 벌레들의 공격을 대비해 과일망을 씌워주었다.


성질 사나운 검은 새가 마당을 헤집는 일이 잦으므로, 이 예쁜 딸기를 탐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 수록 딸기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씨는 도드러졌다.


시간이 키워내고 햇빛이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

다른 모든 식물들이 그렇듯 딸기에게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수확할 적기를 붉은 낯빛으로 알려주니 식집사에게는 다분히 친절한 식물이다.


붉게 익어가는 딸기


고대하던 딸기가 익어가기를 매일 보고 또 봤다.

초록의 딸기는 수채화처럼 천천히 색을 더해가더니 일주일이 지나니 진한 붉은 색을 올려냈다.


겉보기에는 탐스러운 열매지만, 내가 사는 이곳의 딸기인 것을 감안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딸기를 똑! 따내는 순간만을 즐겨야지.


정말 정말 맛없는 딸기의 나라에서 키워낸 것이니, 그 맛이야 뻔하겠지만 내가 키운 딸기를 수확하는 것이 근 10년 만의 일이었기에 콩 한쪽도 나눠먹는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냉큼 손을 뻗어 버렸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딸기가 탐스럽다.


빨갛게 익은 두 개의 딸기 중 못 생긴 녀석을 내가 맛보기로 했다.

먹어보고 맛이 너무 없으면 나머지 딸기들도 다 내 몫이 될 테니 괜찮은 양보다.


손톱으로 딸기를 끊어내어 손에 쥐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조심스럽던지, 혹시나 급한 마음에 떨어트려서 첫 딸기를 망칠까 겁이 났던 것 같다.


'갓'처럼 생긴 꼭지를 떼어내고 처음 수확한 딸기를 입에 넣었다.


'어휴, 얼마나 시큼하려나?'

시고 딱딱한 가짜(?) 딸기맛을 기대한 내 혀에 달큼한 한국 딸기 맛이 느껴졌다.

포도를 키워서 처음 수확했던 날의 놀라움만큼 딸기 맛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니 왜?'

분명 이 나라 딸기를 심었는데, 왜?


식물을 키우는 일은 미스터리 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기대하지도 않은 딸기맛에 화분텃밭의 외톨이였던 딸기가 '나의 관심도 1위'로 올라섰다.


'화분텃밭 딸기가 모두 이 맛이라면 잘 챙겨줘야지!'


기대도 안 했던 화분 딸기가 이리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 녀석을 키우는 동안 식집사가 딱히 챙겨준 것이 없으니, 내 정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영향을 미쳤을 텐데, 아마도 마트에서 사 먹는 딸기보다 익을 시간을 충분히 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농가에서는 마트까지 오는 유통과정을 감안해서 덜 익은 딸기를 딸 수밖에 없을 테니 그 맛이 채 꽉 채워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기는 단감이나 토마토처럼 후숙이 가능한 과일이 아니기에, 수확과 동시에 익는 것이 멈추고 시간이 갈수록 상하기만 한다.

화분텃밭에서 키운 딸기는 강한 햇볕 샤워를 충분히 했고, 과육도 붉게 익었으니 당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좋아하는 과일은 키워서 먹어야 하나 보다.

이 타국 땅에서 맛있는 딸기를 먹게 될 줄이야.


한국에서 파는 딸기처럼 커다랗지는 않지만, 장담컨대 최근 15년간 이곳에서 먹은 딸기 중에 가장 맛있었다.


이러니 화분텃밭에서 하는 흙놀이를 그만둘 수가 없지..


지루해질 만하면 '이래도 안 해?'라는 듯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하니, 까맣게 변한 손톱으로 흙놀이를 멈추지 못한다.


이렇게 손이 바쁘고 어깨가 무거운 날들이 쌓이면 입이 즐거운 날을 맞이하는 루틴.

매 주말마다 또 '어떤 식물이 나를 놀라게 할 지' 기대가 되는 나날이다.


완벽한 취미생활이다.


https://www.youtube.com/shorts/80PQYOR1Z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