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일기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내가 12살 때까지만 남아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12살 때 음주 운전하던 장의차에 치여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당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하나도 실감 나지 않았지만 지금, 서른 후반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느끼고 있다.
20년 넘게 아버지 없는 아이로,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살아보니 아버지가 없다는 건 단순히 늦은 저녁 하굣길에 데리러 와줄 사람이 없다든가, 결혼식장에 나의 손을 잡고 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도 어릴 적 나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셨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가 고민하는 바를 같이 상의할 수 있는 분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 어머니와 이혼했기 때문에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건 친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데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명절에 뭘 했느냐고 물을 때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외가는 멀리 살고 있어 명절 때 본 적이 거의 없기에 우리 가족은 명절을 조용하고 쓸쓸히 보낸다. 여러 친척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이웃집의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게 이제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다. 엄마와 나는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 별다를 것 없이 긴 연휴를 보내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그런 것처럼 행동할 뿐 사실 아무렇지 않지 않다.
학생인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굳이 주눅 들 필요도 없었지만 친구들에겐 다 있는 것 같은 존재가 나에게 없다는 건 항상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대학입시 원서를 쓸 때도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은 아버지와의 상의로 별 걱정 없이 결정하는 일을 나는 몇 날 며칠을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겨우 결정하곤 했다.
대학교 졸업 후 사회인이 되었을 때도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고, 내가 선택한 직장이 힘들어서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조언할 때에도 이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기에 나는 스스로 감내하는 편을 택했다. 나에게는 삶을 먼저 살아본 인생선배의 조언이 절실했지만 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부딪혀 알아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때때로 누군가 주변에서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도움을 주면 나는 너무 고마워서 눈물부터 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줬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남자친구와 결혼 혼수문제로 한참을 얘기하다가 답이 안 나와 먼저 결혼한 친구에게 전화해서 너는 어떻게 했는지 묻는데 자기는 부모님들끼리 알아서 정해줘서 별로 결정할 게 없었단다. 그 말을 듣는데 다시 눈물이 핑 돋는다. 아 아빠가 있었으면 빨리 해결될 일이었구나, 30대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느낀다.
아이에게 아빠가 없다는 건 사랑받을 존재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아빠가 없다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으며,
어떤 날은 아빠가 없다는 게 세상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