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호적메이트라고도 부른다는데 학창 시절 10년 넘게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고 소 닭 보듯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두 살 차이 여동생과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엄마가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겨우 내디뎠다.
여동생의 첫 아이는 은근 나를 많이 닮았다. 내가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다면 조카와 비슷한 생김새가 아닐까 싶어 마음이 더 간다. 손재주 좋고 영민해 여기저기 상도 많이 받아 온다. 너무 티 내서 언급하면 동갑이면서 그런 거 관심 없는 척하는 망둥이 같은 내 둘째 딸이 비교당한다 싶어 할까 봐 속으로만 뿌듯해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몇 년을 얼굴 못 보고 있다가 오랜만에 만났지만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대화를 끌어 가고자 굳이 애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묵직한 정적이 가벼이 채워지는 건 아무 사이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공통 관심사와 영어 교육 방향성에 대한 고민 상담뿐만 아니라 오늘은 또 뭐 해 먹지 등등 대화 주제는 끊임없이 샘솟았다. 걸어서 20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살았으면서 몇 년을 못 보고 살다가 캐나다로 이주하곤 더 자주 보는 듯하다고 농담하며, 덕분에 장녀의 지위를 내려놓고 책임감과 부채감을 덜 수 있음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부모님 집 자그마한 거실이 거대한 안마의자로 채워진 걸 보며, 속으로 내 동생이 장녀의 위치를 돈으로 사버렸군 생각한걸 동생에게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환불은 불허한다. 돈 잘 쓰면 언니다.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타인을 통해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님이 오래전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 어떤 애완동물도 들이지 않았는데 내 동생은 결혼 후 고양이를 다섯 마리를 동시에 키웠었다. 두 마리가 열다섯 해를 넘기며 수명을 다 하고 이젠 노인 고양이 세 마리만 남았다. 아주 살갑고 손님에게 관심받는 걸 즐기는 두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내 무릎을 차지했다.
너무나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나를 쳐다 봐 주는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 동영상을 찍으려니, 이 녀석이 유전병으로 시력을 상실했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되묻는 몇 초 영상을 공유했다가 인스타 조회수가 폭발하고 있다. 고양이의 귀여움은 반칙이다. 해시태그하나 없는데 온갖 나라 사람들이 나를 따른다. 딸은 커다란 개를 키우고 싶어 하고 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짐승이 하나 더 생기는 건 부담스럽다. 아들의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사라지는 날이 올까? 챙겨주지 않아도 자기 앞가림하는, 진짜 고양이나 고양이 같은 동거인들과 사는 삶을 가끔 상상한다.
반려동물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없이 일단 입양하고 보는 성급한 행동에 대해 토로하고 병원비 때문에 유기하거나 포기하는 사태를 성토하며 자연사할 때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애완동물 입양은 함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동생을 떠올리며, 요즘 열성적으로 쌀 씻은 물, 국수 헹군 물 버리지 않고 진상하고 있는 뒷마당 상추 네 포기를 반려식물로 들이기로 했다. 키워서 잡아먹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