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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Jun 18. 2023

#6 2023 May 한국방문 Part 4

에드먼턴, 캐나다

내가 이렇게 뻔뻔할 수도 있나 보다. 고민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지인이라고 자신 있게 언급 가능한 제주도민의 초청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최저가 항공권을 구매하고, 오후 늦게 제주도 도착하고 이틀 후 아침 일찍 나오는 개떡 같은 스케줄이지만 어쨌든 생애 첫 나 홀로 여행이다.


공항 픽업부터 시작해 맛집 탐방에 관광지 가이드까지 자처해 주신 지인 찬스덕에, 빈 방에 신세 지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닐까 했는데 이렇게 호사스럽게 제주도를 맛보고 눈에 담을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져 버렸다. 소중한 제주도 첫 끼니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 라면에 신선한 해물이 잔뜩 들어 있는 해물라면! 생각만으로도 또 침이 고인다.


날씨요정 보우하사 용머리 해안을 허락받았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절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스타워즈 촬영지로도 손색없을 만큼 이국적인 지형에 우주식민지를 거니는 히치하이커가 된 기분을 만끽하다가 마주친 단체 수학여행단 학생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오른쪽 시야는 바다로 채우고 왼쪽은 절벽, 정면은 우거진 숲이라니 자연경관 3종세트 절찬리 판매 중인 제주 용머리 해안을 뒤로하고 역시나 오른쪽 절벽 왼쪽 바다 환상적인 입지의 자본의 힘이 팍팍 느껴지는 세련된 카페에서 고급스럽게 카페인 재충전 후 동문시장으로 향한다.

어렸을 때 도시락 반찬으로 제일 좋아했던 것 중에 하나가 작은 게를 튀겨 양념에 버무린 것이었는데 눈앞에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게 튀김에 정신이 혼미하다. 시장 모퉁이에서 마파람 게눈 감추듯 폭풍흡입의 정석을 시전 하며 다음에는 뭘 또 먹어볼까 심각히 고민한다. 먹으면서 먹는 얘기, 놀면서 놀 얘기하는 극강의 즐거움을 만끽하니 이 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다.

제주도 지인이 아니라 제주도 귀인인 것이었다. 드넓은 킹사이즈 침대에 스펀지밥 친구 뚱이처럼 사지를 활짝 다 뻗어 불가사리처럼 누워도 침대에 자리가 남는 믿기지 않는 잠자리를 기꺼워하며 창밖으로 헐벗은 차림새의 신혼여행족일 수도 있는 젊은 남녀들을 내려다보니 차마 저 틈에 제대로 된 수영복도 없이 인피니티 풀에 끼어들 엄두는 나지 않는다.  수영장이지만 수영하는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고 동행인들이 인증샷 찍어 주느라 욕보고 있는 듯하다.

 귀인에게서 너무나 귀한 대접을 받아 어울리지 않은 옷을 빌려 입은 듯한 기분에 어색하면서도 추가금을 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바에서 쓰읍 챙겨 온 맥주 두 병과 감자칩을 안주 삼아 혼술모드에 들어간다. 뒷주머니에 맥주 한 병 꽂고 양손에 한 병씩 들었으면 세 병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 후회하다가 두 병 연달아 마시고 알딸딸해지니 두 병이 딱 좋구나 싶다.


혼자라서 좋았는데 혼자라서 싫어졌다. 좋다가 싫다가 기분이 널을 뛴다. 이제 캐나다로 돌아갈 시간, 다시 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렬한 승부처로 복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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